ADVERTISEMENT
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흥미 추구는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언론인 친구에게 물었다. 탐사보도가 급격히 줄고, 음식·패션과 정치인 신변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것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고. 내가 요즘 보도는 깊이가 없다고 하자 그는 독자들, 특히 젊은층이 긴 뉴스를 읽거나 보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대꾸했다. 뉴스 소비자들이 재미가 있으면서도 길지 않은 것을 좋아하며 세세한 설명에는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는 얘기였다.

독자가 재미만 요구한다는 것은 #현실일 수는 있어도 진리는 아냐 #언론은 반지성주의에 동조 말고 #중요한 이슈로 이끄는 역할 해야

그런데 그의 생각은 틀렸다. 시민들이 긴 기사를 읽거나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지금은 사실일지라도 영원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시민, 특히 젊은이들이 그 정도의 인내력도 없다면 이는 우리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가 병들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급선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시민들이 복잡한 이슈에 집중력을 발휘하며 사려 깊은 생각을 하는 능력을 다시 갖도록해야 한다. 시민들이 심각한 사안에 대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미디어의 퇴보,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지적 능력의 쇠퇴는 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어렵게 한다.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계속 가면 국가 운영에도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언론도 생산품을 만드는 생산 활동에 속하며, 소비자들이 사도록 마케팅을 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언론이 추구하는 목표가 미디어 생산물을 사람들이 사도록 해 이득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뉴스 전달로 인한 이득은 언론이 추구하는 목표 중 맨 마지막에 놓여야 한다. 언론은 지역 사회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뉴스는 유명한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주요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관련 기관들의 구조와 성격에 대해 말하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낯선 용어들을 설명해 다양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해야 한다.

임마누엘 칼럼 1/26

임마누엘 칼럼 1/26

언론은 당면한 사회 문제의 뒤에 있는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야 한다. 또 심각하게 토론하는 데 필요한 인내력과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시민들을 이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는 세계은행과 유엔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직한 저널리즘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기구의 역할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안다.

시민들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읽고 생각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오락적 가치보다 설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도 있다. 언론은 독자들이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는 어려움에 스스로 도전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반(反)지성주의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복잡한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정신적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정치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무관심한 태도와 결부된 시민들의 무분별함에 의해 만들어진다. 미디어의 정치·경제 이슈에 대한 즉흥적 대응은 시민들이 사회 변화와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미묘한 요소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언론을 위해 ‘드라마’를 연출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면 정책 수립과 이행도 보여주기를 위한 쇼가 된다.

문제는 어떻게 시민들이 중요한 이슈들에 집중하도록 하느냐다. 첫 단계는 시민들에게 좋은 교육의 영향으로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윤리적 질문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좇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인내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포스터는 “삶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은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다”고 썼다.

사람들이 깊이 있게 무언가를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소셜 미디어의 역할을 줄여야만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 한국이 스마트폰 판매 시장에서 앞서는 것보다 한국인들이 복잡한 사회적 이슈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언론이 독자를 지적으로 덜 성숙한 어린이로 취급하지 않으면서 정교하고 지적인 대화에 참여하도록 하는, 건강한 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순간의 재미에 현혹돼 이 시대의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교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