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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 “이탈리아제 조명 바꿀 수 있나, 음악 틀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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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송월 단장 등 북한 점검단이 서울과 강릉의 공연 시설물을 둘러본 뒤 22일 오후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현 단장이 강릉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배지가 보인다. [뉴시스]

현송월 단장 등 북한 점검단이 서울과 강릉의 공연 시설물을 둘러본 뒤 22일 오후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현 단장이 강릉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배지가 보인다. [뉴시스]

북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방문은 철저한 실무형이었다. 지난 21일 오전 8시57분 경의선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현송월은 22일 밤 늦게 같은 경로로 북으로 돌아갔다. 남측에 머문 1박2일 동안 현송월의 동선과 공개된 발언은 예술단 공연을 위한 현황 파악에만 집중됐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나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국립극장 등 공연 후보지 찾아 #조명·음향까지 꼼꼼히 체크 #장충체육관선 일부 시민 반북 구호 #현송월 듣고도 별다른 항의 없어 #‘환영’ 문구 보곤 손들어 화답도

현송월의 실무형 방문의 면모는 2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잘 드러났다. 현송월이 공연장을 점검하는 현장을 비공개로 해 왔던 우리 정부가 유일하게 약 3분간 공동취재단에 공개한 장면이다. 현송월은 오후 2시14분 국립국장에 도착한 뒤 바로 주요 공연장인 해오름극장 무대로 향해 음향과 조명부터 체크했다. 공연장에 들어선 그는 “조명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으며, 이후엔 저음과 고음의 강도를 각각 조절할 수 있는 장치인 음향 컨트롤박스를 찾아 그 뒤에 섰다. 현송월은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뒤 “관현악 음악으로…”라는 상세 요청도 했다. 극장 관계자가 “아리랑을 틀겠다”고 답했고, 현송월은 1분30초 가까이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아리랑에 귀를 기울였다. 음량과 객석에 소리가 반향되는 정도를 세세히 감지하려는 듯했다.

지난해 12월 476억원을 들여 개관한 강릉아트센터의 조명과 음향시설에 대해선 불만도 토로했다고 한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는 “현 단장은 이탈리아제 조명(클레이파키)과 음향(마이어 사운드)을 교체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를 통해 시설을 교체할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송월은 전체 규모(연면적 1만4642㎡, 지하 1층~지상 4층)에 비해 공연장 관객석이 998석이라는 점에 아쉬움을 보였다고 한다. 올림픽위 관계자는 “현 단장이 ‘왜 이렇게 객석수를 적게 만들었느냐. 우리(북)는 더 큰(많은) 객석을 만들수 있었을 것’이라며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강릉시 관계자는 “아트센터는 쾌적한 공연환경을 위해 앞뒤 좌석 간 거리가 다른 공연장보다 넓게 설계됐다”며 “그렇다보니 면적에 비해 좌석수가 적다”고 말했다. 소위 ‘화선공연’이라 불리는 지방 군부대 강당을 찾아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연을 하곤 했던 현 단장이 신축 강릉아트센터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남북은 점검단의 의견을 토대로 공연 장소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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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은 그러나 남측 언론엔 입을 닫았다. 공연장 상태에 대한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실무형 질문에도 미소만 살짝 띤 채 침묵했다. 현 단장이 1박2일간 남측 취재진에게 건넨 말은 “안녕하십네까” 정도였다.

현송월의 22일 서울 방문은 환영과 반대 인파가 전날보다 더 큰 대조를 보였다. 현송월이 강릉에서 KTX 특별편으로 서울역에 도착한 후엔 보수단체가 역 광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사진과 북한 인공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했다. 우리 측 경찰의 철저한 통제로 현송월이 이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서울의 두 번째 공연장 방문지였던 장충체육관 인근에선 일부 시민들이 현송월이 탄 버스가 들어서자 반북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현송월은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항의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장충체육관 앞에서 한 남성이 “민족의 이름으로 환영한다”는 문구를 쓴 종이를 들어 보이자 웃으며 손을 들어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날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인공기를 불태우고 있다. [오종택 기자]

같은 날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인공기를 불태우고 있다. [오종택 기자]

현송월은 남측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드러냈다. 특히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KTX 기차 안에서 “왜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으냐”고 물었고, 우리 측 관계자가 “미세먼지 때문이다”고 답하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강릉=전수진 기자, 공동취재단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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