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쿄 한복판 첫 미사일 대피훈련..."휴가 내고 참가, 미사일 언제 날아올지 몰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훈련, 훈련”

도심 놀이공원서 미사일 상정 훈련 #3분여 만에 시민 200명 건물 속 대피 #"미사일 불안, 지진처럼 대비해야" #"전쟁 훈련 멈춰라" 시민단체 반대도

22일 오전 10시 3분. 도쿄 분쿄(文京)구 코라쿠엔(後楽園)에 있는 놀이공원 ‘도쿄돔 시티 어트랙션’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시민들 약 200명은 즉시 하던 일을 멈췄다.

“이것은 훈련방송입니다.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건물 안이나 지하로 피난해주십시오”

운영요원들이 “이쪽으로 이동하십시오. 건물 안으로 들어가주세요”라고 외치며 머리 위로 손을 휘휘 저었다. 시민들은 지시에 따라 놀이기구에서 내려와 줄을 지어 이동했다. 대부분 종종걸음을 하거나 뛰면서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지진이나 화재 대피 훈련에 익숙한 시민들은 미사일 발사를 상정한 대피 훈련에도 큰 거부감이 없는 듯 했다.

10시 7분. 방금 전까지 시민들로 가득찼던 놀이공원이 텅 비었다. 5분도 안돼 야외에 있던 시민 200여명이 모두 대피를 완료한 것. 주최 측에선 미사일 발사가 감지된 지 5분내에 시민들을 대피시킨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날 훈련에선 계획보다 1분 가량 빨리 대피를 마쳤다.

10시 8분. “미사일 통과. 방금 전 미사일은 간토(関東)지방에서 태평양으로 통과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수상한 물건을 발견했을 경우 절대 만지지 말고 경찰이나 소방 등에 연락해주십시오” 훈련은 순식간에 끝났다.

"휴가 내고 참석...미사일 언제 날아올지 몰라"

같은 시각 도쿄도 분쿄구 시민회관에서도 시민과 직장인 등 150여명이 훈련에 참여했다. ‘에엥~~~~’ 사이렌이 울리자 수십 명이 건물 지하로 이동하거나, 건물과 연결된 지하철 입구로 몸을 숨겼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머리가 하얗거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도 눈에 띄었다.

분쿄구 주민인 하야시 유지는 “회사에 오전 휴가를 내고 훈련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사일 발사는 지진과 마찬가지로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 비상 상황을 상정해 훈련을 하면 실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순조롭게 대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자치회의 요청으로 훈련에 참석했다는 야베 쓰나오(80)는 “어릴 때 전쟁의 경험이 있는데, 그 때 겪었던 걸 또 겪어야 한다니 정말 싫다. 북한이 언제 무슨 일을 할지 몰라 무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상황을 상정한 시민들의 대피훈련이 실시됐다. 지난해 3월 아키타(秋田)현을 시작으로 26차례(정부ㆍ지자체 주관) 의 미사일 대피 훈련이 있었지만, 도쿄도심 한복판에서 훈련이 실시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도심에서의 미사일 훈련은 “국민들의 위기감을 필요 이상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8, 9월 두 차례 북한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일본의 상공을 통과하자 일본 내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급기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11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대도심에서도 미사일 대피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답변했고, 그로부터 약 3개월만에 도심 내에서 훈련이 이뤄진 것이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22일 도쿄에서 처음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에 있는 '도쿄돔시티 어트랙션'에서 시민들이 안내방송에 따라 건물 내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시민 350명 2곳서 시범 실시... 일 정부 "인구밀집지역 훈련 계속"

훈련은 내각관방과 도쿄도, 분쿄구, 소방청 등의 주관으로 2곳에서 진행됐다.  시민 350명과 운영요원 150명이 참가해 시범적으로 이뤄졌다. 일본 정부는 이날 훈련을 시작으로 대도심에서 미사일 대피 훈련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내각부 스에나가 히로유키(末永 洋之) 참사관은 “훈련은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해진 훈련 계획은 없지만 인구 밀집지역에서의 훈련은 계속해서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도 측은 사전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훈련은 ‘X국에서 탄도미사일이 발사돼 일본으로 날아올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훈련은 미사일이 도쿄도심을 향하거나 미사일 파편의 일부가 떨어지는 상황까지도 고려됐다. 도쿄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미사일이 통과했을 때를 상정한 것으로 미사일에 따른 돌풍이나 파편으로부터 신변을 지키기 위한 훈련”이라고 말했다. 이날 훈련에 자위대는 참가하지 않았다.

 일본 도쿄도(東京都) 분쿄(文京) 구 고라쿠엔(後樂園)역 인근 놀이공원 주변에서 시민들이 22일 실시된 미사일 대피훈련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도쿄도(東京都) 분쿄(文京) 구 고라쿠엔(後樂園)역 인근 놀이공원 주변에서 시민들이 22일 실시된 미사일 대피훈련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훈련이 실시된 곳 주변에선 훈련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렸다. ‘전쟁, 치안, 개헌 NO! 총행동’ 등 8개 시민단체는 “미사일 대피 훈련은 전쟁훈련이나 다름없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훈련을 한다고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게 아니다. 재일 외국인에 대한 적의(敵意), 차별,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전쟁 동원 훈련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