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의 역설] 비강남 초등생 5445명 줄고 강남 910명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1.22 11:23

업데이트 2018.01.23 14:57

지면보기

종합 05면

①8학군 대체재 자사고·외고 폐지의 역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급격하게 심화된 이상 과열 현상으로, 서울 강남을 비롯해 도심권 요지의 아파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으며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14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 연합뉴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급격하게 심화된 이상 과열 현상으로, 서울 강남을 비롯해 도심권 요지의 아파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으며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14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 연합뉴스]

김정연(40·여)씨는 서울 성북구에 살다가 2년 전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왔다. 올 봄 초등 4학년에 올라가는 딸이 강남에서 중·고교를 나왔으면 해서다.

정부, 지난해 자사고·외고 우선선발권 폐지
"고교 서열화 폐지, 교육 기회 균등"

학부모 "자사고 등 폐지=강남8학군 부활"
"강남 우수 고교에 진학하려면 이사 가야"

김씨는 성북구에 살 때 사귄 지인들로부터 "서울에서 자사고가 곧 없어진다고 하는데 지금 강남으로 이사 가는 게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다. 김씨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 중엔 중학교 1~2학년 학부모가 많다. 김씨는 "정말 친한 사람에겐 '어떻게든 강남으로 건너오라'고 솔직하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 집값이 들썩이는 데는 이른바 '강남 8학군'이 독립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 한달새 강남 대치동과 역삼동, 개포동 일대 아파트 전셋값은 1억원가량 급등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이 취지와는 달리 강남 8학군 부활에 대한 비강남 학부모의 공포를 자극해 강남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여러 곳에 자사고와 외고가 세워져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가 분산됐다. 정부가 이들 학교를 폐지한다고 하니, 학군 프리미엄이 다시 강남으로 집중돼 이 지역 전세와 매매가가 덩달아 뛰어오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집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정부가 부동산 정책으로는 공급을 줄이고,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등 교육 정책으로 수요를 늘렸다. 강남 집값 상승에 불이 붙은 건 당연한 결과”라 덧붙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데이터 시각화=배여운 분석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데이터 시각화=배여운 분석가

최근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는 강남 안에서도 유명한 초등·중학교가 있으며 학원가가 밀집된 대치동·도곡동 일대에 집중해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21일 현재 대치동에서 78건, 도곡동은 92건의 아파트 거래가 이뤄졌다. 같은 기간 신사동 4건, 세곡동 8건, 율현동 1건임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높다.

자사고·외고를 폐지할 경우 강남8학군이 패권이 현재보다 강해질 것이라는 것은 지난해부터 예견돼 왔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정부의 자사고 등 폐지 추진에 반대하며 "자사고가 폐지되면 강남8학군이 부활한다"고 우려했다. 김상곤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의식해 "어떻게든 강남8학군 부활은 막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 가운데 강남권 초·중·고교에선 자녀가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려는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강남구에 있는 학교는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자사고는 물론 일반고에도 전·입학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자사고인 세화고 원유신 교장은 "지난해 12월 전·편입생 모집 공고를 냈더니 1학년은 2명 모집에 20명이 지원했다"며 "비강남 지역 자사고·외고로 진학하려던 학생들이 강남지역 자사고는 물론 일반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 교장은 "교육당국이 자사고·외고를 '특권학교'로 몰아가며 폐지하려는 것이 강남8학군을 부활 시킨 셈"이라고 덧붙였다. 일반고인 중대부고의 공현구 교감도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부터 입학 문의가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입시 전문가들도 자사고·외고 폐지가 강남 8학군 부활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동의한다. 교육 컨설팅 업체인 스터디홀릭의 강명규 대표는 “자사고·외고·국제고는 거주지와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었다. 이들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학군에 맞춰 이사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재 일반고 중 명문고는 죄다 강남 8학군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종로학원하늘교육의 분석에 따르면 2017학년도 서울대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위 10개 고교 중 9개가 강남·서초구에 몰려 있다. 휘문고(강남구·34명), 세화고(서초구·27명), 단대부고(강남구·25명), 서울고(서초구·21명), 현대고(강남구·19명), 숙명여고(강남구·17명), 중산고(강남구·16명), 중동고(강남구·14명), 세화여고(서초구·14명), 양정고(양천구·13명) 순이다.

이 중 휘문고·세화고·현대고·중동고·세화여고 등은 강남권에 위치한 자사고다. 서울 지역 거주자라면 강남·서초구에 살지 않아도 이들 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실제로 휘문고는 지난해 신입생이 나온 중학교를 따져 보니 80개나 됐다. 하지만 휘문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남 지역 중학교 졸업자 위주로 신입생이 배정된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휘문고 입학설명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의 모습. 김경빈 기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휘문고 입학설명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의 모습. 김경빈 기자

서울 용산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42)씨는 “용산에 계속 살며 올해 중학교 들어가는 아들을 강남 자사고에 보낼 생각이었다. 자사고가 폐지된다고 하면 강남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대책 없이 정책을 추진해 학군을 부활시켜 학부모들을 강남으로 등 떠밀고 있다”고 불만스러워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