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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복권 한 장을 사는 깊은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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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9)

로또복권 용지. [중앙포토]

로또복권 용지. [중앙포토]

에잇, 역시 꽝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다. ‘내 복에 무슨…’하면서도 쪼금 섭섭하긴 하다. 1000원짜리는 커녕 어떻게 맞는 숫자가 하나도 없는지 신기하기조차 하다.

잘해야 한달에 한번 사는 복권 #인생 한 방 기대하는 건 아니나 #품고 다니는 동안은 마음이 푸근

맞다. 복권 이야기다. 연말연시를 기해 새해 운을 시험할 겸 로또 복권에 연금복권까지 사 봤는데 이 모양이다.

복권을 매주 사는 건 아니다. 물론 복권을 사면 그 돈이 좋은 데 쓰인다는 거창한 선의가 작용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복권에 인생 한 방을 걸 정도로 목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쩌다 생각날 때, 한 주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때 산다. 그럴 때도 나름의 원칙을 지킨다.

없다고 여길 만한 돈이 생겨, 마침 주초에 복권 판매점이 눈에 띄어야 산다. 이런 소심한 행보니 복권 사기란 한 달에 한 번도 생기고, 두 달에 한 번도 생기는 정도다.

복권의 중독성

연금복권520 제242회차 1등 당첨자 소감 [사진 나눔로또 블로그 캡처]

연금복권520 제242회차 1등 당첨자 소감 [사진 나눔로또 블로그 캡처]

그런데도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다. “야동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데 복권이 딱 그렇다. 한 번도 안 산 이는 있을지 몰라도 한 번만 산 이는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지갑에 복권 한장 딱 품고 다니면 이런저런 행복한 상상에 마음이 절로 푸근해져서다.

왜 있잖은가. 월급쟁이 시절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를 만나 미칠 것 같았는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사표를 품에 넣고 다닐 때 기분. 당첨금을 어디다 누구에게 쓸까 하고 ‘병아리 셈’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복권을 살 때 모양은 좀 빠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젊은 시절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였다. 넥타이 차림의 중년 직장인이 가판점에서 주택복권을 사서는 정성스레 지갑에 챙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택복권 교환권. [중앙포토]

주택복권 교환권. [중앙포토]

여름이었는지 저녁인데도 어슴푸레한 빛을 등진 그의 뒷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주택복권 상금이 1억 원이었던가, 그때 이미 ‘전세복권’으로 불리던 복권 한장에 삶의 희망을 온통 거는 모습으로 비쳐서였다.

그걸 보며 ‘저렇게 궁색해지지는 말자’고 다짐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딱 그 짝이다. 복권 한장이 유일한 삶의 동아줄은 아니지만, 거기에 거는 간절함은 해가 갈수록 커지는 듯하니 말이다. 그게 늙어가는, 꼰대가 되어가는 한 증표인지 모른다.

매달 또박또박 고정 수입이 들어올 때도 술김에 복권을 사긴 했다. 하지만 그럴 때는 큰소리를 치는 맛이라도 있었다. “월요일에 출근 안 하면 카리브 해 유람선에서 메스티소랑 즐기고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내 퇴직금은 부 회식비로 쓰라고.” 이렇게 말이다.

이제 모두 한바탕 꿈이다. 당첨될 리도 없지만, 이제는 퇴직금을 희사할 동료 후배도 없다. 메스티소는 무슨? 기운이 있어야 카리브해까지 가지. 게다가 “그럴 돈 생기면 은행대출이나 갚아야지”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딴죽을 거는 분(?)이 지켜보는 신세니 말이다. 어휴!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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