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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쓸모없는 돌덩어리도 믿으면 화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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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경제부 기자

태평양 한가운데 얍(Yap)이라는 섬마을이 있다. 섬사람들이 사용하는 화폐는 페이(Fei)다. 얍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섬에서 발견되는 석회석을 돌 바퀴 모양으로 다듬어 만들었다. 크기가 사람만 하다.

여럿이서도 들기 힘든 이 돌을 어떻게 화폐로 사용했을까. 얍 사람들은 거래나 교환을 위해 굳이 돌덩어리를 운반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어떤 돌의 주인이지만 알면 됐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 번은 마을의 부자가 뗏목으로 페이를 운반하다 폭풍우를 만나 페이가 바다에 빠졌다. 인부들은 그 돌이 아주 컸고, 돌이 바다에 빠진 건 부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언했다. 섬사람들은 바다에 빠진 돌도 부자의 돈으로 인정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화폐 경제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개인과 개인이 아무 쓸모 없는 돌덩어리를 놓고 좋은 거니까 사라고 하고, 샀다고 해도 그걸 막을 순 없지만,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위험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소 폐쇄 방침을 밝혔다. 2200만원에 육박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140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

얍 주민들은 박 장관이 ‘쓸모없는’이라고 표현한 돌덩어리를 화폐로 썼다. 화폐를 가치 있게 만드는 건 그 모양이나 재료가 아니라 ‘믿음’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돌을 화폐라고 믿으면, 심지어 바다에 빠져 눈에 보이지 않는 돌조차 화폐다.

암호화폐의 가치 역시 참여자들의 신뢰에서 나온다. 비트코인을 통해 처음으로 실물(피자) 거래를 한 날이 2010년 5월 22일이다. 한 프로그래머가 1만 비트코인을 주고 피자 2판을 샀다. 시세(현재 1비트코인은 대략 1500만원 안팎이다.)로 환산하면 피자 한 판에 750억원이다. 지금 보면 미친 짓이지만 당시엔 그랬다. 그때 1비트코인은 약 3.2원에 불과했다. 비트코인에 신뢰를 부여한 참여자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화폐가 신뢰에 기반을 둔다는 건 믿음이 깨지면 가치가 0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짐바브웨 정부가 발행한 화폐는 짐바브웨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가치가 0으로 수렴했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에 대한 참여자들의 신뢰가 깨지면 비트코인의 가치 역시 0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트코인이 상징하는 블록체인 혁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이 있다. 암호화폐를 쓸모없는 돌덩어리라고 할 수 있을까.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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