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총리 내정된 류허 … 베일 벗는 시진핑 경제 오른팔

중앙일보

입력 2018.01.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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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다보스포럼 참석, 주목 받는 중국 정치국 위원 
류허(劉鶴·66)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류허(劉鶴·66)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지난 15일 중국 외교부 정례 브리핑.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류허(劉鶴·66)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참석한다”고 발표했다. 다보스포럼은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참석했던 국제 행사다.

시 주석과 절친한 중·고등학교 동창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서 석사 학위
미국식 금융 시스템에 이해 깊어

막후 인물서 지난해 권력 전면 등장
사실상 통화정책·재정개혁 총괄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 경제의 실력자가 마침내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류 주임은 시진핑 주석의 경제 정책 책사로 통하는 인사다.

중국 외교부 발표로 류 주임은 세계 주요 정치·경제 지도자가 모이는 다보스포럼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류 주임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각국 정상들과 만남이 성사될지도 관심거리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분열된 세계에서 공유의 미래 만들기’라는 의제로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주최 측은 포럼 참석자를 담은 보도자료에서 류 주임을 브라질·아르헨티나·스위스 대통령, 스페인 국왕과 나란히 소개했다.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국가 정상급 예우를 받는 셈이다.

시 주석을 대신해 류 주임이 다보스에서 내놓을 메시지도 벌써 관심이 쏠린다.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시장은 언제나 열려 있다. 글로벌 지도자들은 개방과 협력에 힘써야 한다”며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당시)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류 주임이 오는 3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금융 담당 부총리로 선임될 것으로 관측했다. 현 마카이(馬凱) 부총리의 후임으로 사실상 류 주임이 내정됐다는 뜻이다. 류 주임은 지난해 출범한 중국 금융감독발전위원회도 총괄할 예정이다.

홍콩에 있는 미즈호증권의 아시아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 선장광은 “류 주임이 부총리가 되면 통화정책과 금융감독 분야는 물론 재정개혁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으로 치면 재무장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합친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장 시찰에 배석한 류허(맨 왼쪽)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중앙포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장 시찰에 배석한 류허(맨 왼쪽)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중앙포토]

시 주석과 류 주임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 다 베이징 명문 중·고등학교인 101중학교를 나왔고, 학창 시절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서적인 공감대도 깊다. 이들의 학창 시절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기간과 겹친다. 당시 수많은 ‘지식청년’들처럼 시 주석과 류 주임은 가난한 농촌에 내려가 재교육을 받는 ‘하방(下放)’에 동참했다. 류 주임은 군인과 농민, 공장 노동자를 모두 경험했다.

류 주임은 미국식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깊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 가운데 보기 드문 하버드대 유학파다.

중국에 돌아온 류 주임은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등 3명의 국가주석 밑에서 경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최일선에서 일했다. 8차부터 12차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참여했다.

2003년에는 국무원 총리 직속인 중앙재경영도소조의 판공실 주임에 임명됐다. ‘영도소조(領導小組)’는 중국식 정치 시스템의 독특한 의사결정 기구다. 부처를 초월해서 포괄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정부 내 태스크포스(TF)와 비슷하다. 지난 15년 동안 중국의 경제·재정 정책에서 류 주임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그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부주임도 맡고 있다.

류 주임은 오랫동안 권력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은 대단했다. 블룸버그는 “많은 전문가가 2016년 5월 인민일보에 부채의 과도한 증가와 부실자산의 문제를 지적했던 ‘당국자’는 류 주임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말한 21세기 중국 주도의 ‘뉴노멀(新常態)’이란 개념도 류 주임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노멀’은 말 그대로 ‘낡은’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이행에 주목한다. 과거와 같은 두 자릿수 고속성장이 아니라 6~7%대의 중속 성장으로 질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경제 구조는 수출에서 내수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무게 중심을 옮겨간다. 구조개혁과 기술혁신을 통해 경쟁력의 획기적인 제고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 등 전통적인 선진국의 목소리는 약해지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국제경제의 새로운 질서가 떠오르게 된다.

류 주임이 마침내 권력의 핵심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발탁됐다.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은 중국 공산당의 최고 핵심기구다.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선 류 주임이 추진할 중국의 금융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지난해 11월 중국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을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한 조치도 류 주임의 작품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 민생은행과 광대은행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제임스 스텐트는 “금융 시스템에 불필요한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시스템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류허
1952년 중국 허베이(河北)성에서 출생. 시진핑 주석의 경제 정책 책사로 통한다. 시 주석과 같은 베이징 101중학교를 나왔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농촌에 보내져 군인과 농민, 공장 노동자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베이징의 중국인민대에서 산업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뉴저지주 시턴홀대에서 유학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했고, 행정학석사(MPA)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국무원 총리 직속인 중앙재경영도소조의 판공실 주임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발탁됐다.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의 경제·금융·재정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로 선임될 전망이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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