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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차이로 가드 뚫고 3득점 빅샷'...의성시골 김씨 소녀들, 최강 캐나다 꺾었다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여자컬링대표팀 김민정 감독과 김초희·김경애·김선영·김영미·김은정. [중앙포토]

왼쪽부터 여자컬링대표팀 김민정 감독과 김초희·김경애·김선영·김영미·김은정. [중앙포토]

"판타스틱샷! 빅샷!"
캐나다 TSN스포츠 중계진이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에 보낸 찬사다.

21일 캐나다 앨버타주 캠로즈에서 열린 한국과 캐나다의 '메리디안 캐나다 오픈 그랜드슬램 오브 컬링' 플레이오프 8강전 6엔드. 스킵(주장) 김은정이 오밀조밀한 4개 가드 사이로 스톤을 밀어넣었다. 이 스톤은 중앙에 있던 상대팀 스톤을 쳐내 3득점에 성공했다. 한 캐나다 언론은 "손톱 하나 차이를 지나 성공시켰다"고 극찬했다.

한국은 이날 캐나다 호먼팀을 7-4로 꺾었다. 호먼 팀은 2017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를 13전 전승으로 우승한 현 세계챔피언이다. 컬링 강국인 캐나다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돼 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팀이다. 한국의 평창올림픽 첫 경기인 다음 달 15일 예선전 상대이기도하다.

호먼 팀은 이번대회에서 전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 8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반면 첫 2경기에서 패해 탈락 위기에 몰렸던 한국은 3연승을 거둬 플레이오프에 8강 합류했다. 한국은 이날 호먼 팀을 맞아 5엔드까지 4-3으로 앞섰다. 6엔드에서 3점을 뽑아내며 쐐기를 박았다.

그랜드슬램 대회는 월드컬링투어 대회 중에서도 상금 규모와 출전자 수준이 높은 메이저대회다. 대표팀은 이번대회 4강에서 캐나다의 첼시 케리 팀과 맞붙는다.

 컬링 여자대표팀은 전원 김씨로 구성돼 팀 킴(Team Kim)이라 불린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와 은정, 경애와 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중앙포토]

컬링 여자대표팀은 전원 김씨로 구성돼 팀 킴(Team Kim)이라 불린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와 은정, 경애와 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중앙포토]

"한국 대표는 김(金)씨 가문의 아버지와 딸 6명으로 이뤄진 팀인가?".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은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스킵 김은정(28)을 비롯해 김영미(27)·김선영(25)·김경애(24)·김초희(22) 등 선수 5명의 성(姓)이 모두 김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민정(37) 감독과 김경두(62)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까지도 모두 김씨다. 컬링은 보통 스킵의 성을 따서 팀명을 붙인다. 그래서 한국팀의 이름은 ‘팀 킴(Team Kim)’이다. 모두 한 가족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만, 김영미와 김경애 두 사람만 친자매다.

왼쪽부터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김민정 감독과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은정. 중앙포토

왼쪽부터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김민정 감독과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은정. 중앙포토

김경애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김씨라고 하면 외국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모두 성이 같기에 지난 2013년 아침식사를 하다가 각자 음식이름에서 따온 애칭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경애의 애칭은 ‘스테이크’, 김영미는 ‘팬케이크’, 김선영은 계란요리 서니 사이드 업에서 따온 ‘써니’다. 또 김은정은 요거트 이름에서 따온 ‘애니’, 막내 김초희는 과자이름인 ‘쵸쵸’다.

팀워크가 중요한 컬링은 대표팀 구성이 팀 단위로 이뤄진다. 한 명씩 따로 뽑는 게 아니라 1개 팀을 대표로 정하는 방식이다. 여자대표팀은 모두 경북체육회 소속이다.

이들이 컬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경북 의성군에 국내 최초의 컬링전용경기장이 생기고 난 뒤다. '한국 컬링 개척자'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은 “1990년대 초반엔 컬링은 ‘얼음판에 요강을 굴려 빗자루로 쓰는 이상한 놀이’라고 취급받았다. 빙상장에 페인트로 하우스를 그렸다가 쫓겨날뻔한 적도 있다. 가족과 친구들을 다 끌어 모았다. 2006년 경북과 경북컬링협회의 도움을 받아 고향 의성에 국내 최초의 컬링전용경기장을 지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의성여중·고에 다니던 소녀들은 취미 삼아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는 “친구 (김)은정이와 함께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동생 경애는 컬링장에 물건을 건네주러왔다가 얼떨결에 따라하게 됐다. 그러다 경애 친구 선영이도 가세했다. 여기에 경기도 고교 유망주 초희가 2015년에 가세해 팀이 완성됐다”고 전했다.

여자대표팀 친자매인 김영미(오른쪽)와 김경애. [중앙포토]

여자대표팀 친자매인 김영미(오른쪽)와 김경애. [중앙포토]

컬링은 빙판 위에서 스톤(돌)을 던져 브룸(브러시)으로 빙면을 닦아 하우스(동그란 표적) 중앙에 가깝게 붙이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팀당 4명씩 출전해 엔드당 스톤 8개씩을 던져 10엔드로 승부를 가린다. ‘팀 킴’ 선수 5명은 숙소로 사용하는 같은 아파트에서 이층침대를 나눠쓰며 동고동락한다. 김은정은 “서로의 연애사를 다 알고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컬링은 소치 올림픽에서 10팀 중 8위(3승6패)를 차지했다. 당시엔 경기도청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이 출전했다. 이들은 당시 걸그룹 이름을 딴 ‘컬스데이(컬링+걸스데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김민정 감독은 “7차례나 이겼던 경기도청 팀에 소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딱 한 번 패해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다. 선수들과 사흘간 집에 틀어박혀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아쉬움을 달랬다”고 털어놨다. 김은정은 “당시엔 컬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TV로 소치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절치부심한 팀 킴은 지난해 5월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고,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 [중앙포토]

왼쪽부터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 [중앙포토]

사실 컬링대표팀은 올림픽을 앞두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집행부 내분으로 대한컬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홈 어드밴티지가 중요한 종목인데 경기장 시멘트 바닥이 개·보수를 하면서 강릉컬링센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김경두 전 부회장이 2014 소치올림픽 컬링 남자 금메달리스트 라이언 프라이(캐나다)를 초빙했다. 선수들은 올림픽금메달리스트와 훈련하며 자신감이 붙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진천선수촌 대신 아이스가 더 나은 의성컬링센터로 내려가 훈련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뮬레이션 대회를 열지 못하니 그랜드슬램에 나서는 결정을 내렸다. 김선영은 “우리는 모두 ‘김(金)씨’로 이뤄진 팀이다. 평창 올림픽에서도 ‘금(金)’메달을 따고 싶다”고 다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컬링 김은정의 빅샷 장면

http://www.sportsnet.ca/curling/kim-nails-shot-narrow-port-score-three-h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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