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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코 동영상'으로 시작한 민간인 사찰…檢, 8년만에 MB 겨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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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막음용 '관봉 5000만원' 미스터리 풀릴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1.17/ 오종택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1.17/ 오종택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특활비 중 일부가 민간인 불법 사찰 폭로를 막기 위한 로비 자금으로 쓰인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검찰 관계자는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직 시기 모두 청와대에 특활비가 넘어간 흔적이 있다. 이 돈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도 중요한 수사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집중 규명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게시자 내사·압색으로 시작된 논란 #2010·2012년 ‘꼬리 자르기’ 수사 비판 # ‘관봉 5000만원’ 미스터리 풀릴까 #청와대 참모·MB 검찰 수사 본격화

특히 검찰은 2012년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 및 관련 증거 은폐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입막음용 5000만원’의 출처가 국정원 특활비였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사실상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 지시 및 은폐 의혹’에 대한 재수사 성격을 띠는 동시에 이를 발판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검찰은 2010년과 2012년 각각 민간인 불법 사찰과 민간인 불법 사찰 은폐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개입 여부는 물론,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5000만원의 출처 또한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두 번에 걸친 수사에 대해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거셌던 만큼 검찰은 이 전 대통령 등 윗선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MB정부 '민간인 사찰', 이번엔 윗선 밝힐까

2011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며 당시 민주당은 민간인사찰 규탄대회를 열며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한 규명을 촉구했다. [사진=중앙포토]

2011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며 당시 민주당은 민간인사찰 규탄대회를 열며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한 규명을 촉구했다. [사진=중앙포토]

국무총리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은 2010년 처음 불거졌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차의 일이었다. 당시 민주당 신건·이성남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일명 쥐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 시민을 내사하고 사무실을 불법 압수수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활동만 실시할 수 있고, 일반인의 경우 공직자 비위와 관련된 경우에만 조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한 ‘공직윤리업무규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총리실은 2010년 7월 대검찰청에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검찰이 약 2달간 수사한 결과는 초라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비서관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검찰은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을 구속기소하는데 그쳤다. 민간인 사찰 자체가 사실 국무총리실 소속 지원관 한 명이 단독으로 지시했다는 수사 결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당시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이유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청와대가 지시"

2010년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BH 하명'이라고 적힌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의 수첩 사본을 공개하는 박영선 의원 [사진=중앙포토]

2010년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BH 하명'이라고 적힌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의 수첩 사본을 공개하는 박영선 의원 [사진=중앙포토]

사건의 양상이 달라진 건 2010년 10월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직접 지시했다는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나오면서다. 당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내부 직원의 수첩 사본을 공개했다. 민간인 사찰을 담당했던 이 직원의 수첩엔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민주당은 특검 도입과 국정조사를 촉구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추가로 입증할 수 있는 진술과 정황 증거가 부족했다.
당시 이귀남 법무부장관 역시 “검찰에서도 청와대 하명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묵비하고 증거를 인멸·훼손하는 바람에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선을 그으며 사건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민간인 사찰 논란이 재점화한 건 2012년 3월 5일이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으로 민간인 사찰을 이행하고 관련 증거를 은폐했던 장진수 전 주무관은 사건의 진상을 폭로했다. 그는 민간인 불법 사찰은 물론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것 역시 청와대의 지시였다고 주장하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더욱 논란이 된 건 장진수 전 주무관이 민간인 불법 사찰을 폭로하려 하자 청와대가 입막음용으로 5000만원을 건네며 은폐를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장 전 주무관의 주장대로라면 민간인 사찰은 물론 증거인멸, 입막음까지 모든 일의 ‘몸통’은 청와대였다. 당시 장 전 주무관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와 녹취록 등을 통해 폭로한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청와대가 차원에서 민간인 사찰과 관련 증거자료 인멸을 지시했다.
▲2011년 4월엔 총리실 별관 근처 식당에서 류충렬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만나 ‘폭로 입막음용’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
▲류 관리관은 이 돈의 출처를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주는 돈’이라고 말했다.
▲관련 내용이 VIP(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입막음용 5000만원, '진짜 몸통' 규명이 핵심 과제 

당시 장 전 주무관의 폭로를 통해 드러난 5000만원의 이동 경로는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류충렬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장 전 주무관’ 순. 전달 경로를 역추적하면 배후에 있는 ‘윗선’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장석명 민정수석실 비서관의 직속상관이었던 권재진 민정수석과 임태희 비서실장 등이 ‘윗선’으로 지목됐다.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지난해 4월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5,000만원 돈뭉치를 촬영한 사진. 5,000만원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관봉'으로 묶인 5만원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로 구성되었다.  [사진 오마이뉴스]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지난해 4월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5,000만원 돈뭉치를 촬영한 사진. 5,000만원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관봉'으로 묶인 5만원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로 구성되었다. [사진 오마이뉴스]

무엇보다 장 전 주무관이 받은 5000만원이 ‘관봉(官封·조폐공사가 한국은행에 돈을 보낼 때 정부 도장을 찍은 뒤 가로 세로 띠지를 달아 묶는 방식)’ 형태였기 때문에 자금의 출처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관봉’은 해당 현금이 시중에 유통된 적이 없다는 의미다. 5만원권을 최초로 수령한 사람이 바로 입막음용 자금의 최초 전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꼬리 자르기' 비판받은 검찰 수사 

2012년 2차 수사 당시 민간인 사찰 수사 경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대검찰청 채동욱 차장검사. [사진=중앙포토]

2012년 2차 수사 당시 민간인 사찰 수사 경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대검찰청 채동욱 차장검사. [사진=중앙포토]

의혹이 확산하자 검찰은 2012년 3월 16일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꾸려 민간인 불법 사찰사건과 입막음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2차 수사 역시 ‘부실수사’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당시 수사팀의 팀장(박윤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이 2010년 1차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노환균 법무연수원장과 동향(경북 상주)였고, 민정2비서관이었던 김진모 검사와는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였기 때문이다.

일단 특별수사팀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사찰을 벌였고, 당시 이인규 총리실 지원관→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이어지는 비선 보고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불법사찰 대상이 대기업 총수, 언론사 사장, 국회의원 등으로 무척 광범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찰 대상이 된 대표적인 인물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경석 선진화시민연대 대표, 보선 스님, 엄기영 전 MBC 사장 등이 있었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송찬엽 제1차장 검사가. [사진=중앙포토]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송찬엽 제1차장 검사가.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검찰은 두 번째 수사에서도 윗선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특별수사팀은 “내가 이번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등을 기소하는데 그쳤다.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없이 수사하겠다”던 당시 채동욱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공언이 무색해진 결과였다.

<민간인 사찰 사건 일지>

2008년 6월

한 민간인(김종익 KB한마음 대표)이 이명박 전 대통령
비하 동영상(일명 쥐코   동영상) 블로그에 업로드

2008년 9월

총리실, 국민은행 통해 블로그 운영자 추적. 김 대표 사임

2008년 11월

총리실, 명예훼손 혐의로 김 전 대표 수사 의뢰

2009년 10월

검찰, 김 대표 기소유예

2010년 6월

민주당, 국회 정무위에서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

2010년 7월

총리실,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

2010년 8월

검찰,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기소(직권남용 혐의)

2012년 3월 5일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은 청와대 지시" 폭로

2012년 3월 16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꾸려 민간인 사찰 사건 재조사 시작

2012년 3월 19일

장진수 전 주무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입막음용으로
5000만원 건네" 폭로

2012년 5월 

검찰, 민간인 사찰 의심사례 400여건 추가 포착

2012년 6월 13일

검찰, 민간인 사찰 재수사 결과 발표. 박영준 전 차관 및
이영호 전 비서관 등 기소

2018년 1월 12일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가 국정원 특활비 활용해
민간인 사찰 입막음 나섰다는 언론 보도

특히 검찰은 입막음용 자금 5000만원이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부장관 등에 대해선 서면으로 사실확인서만 요청했을 뿐 “추가조사가 필요없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윗선 규명의 키맨은 권재진·임태희…검찰 수사 박차 

이번 수사는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은폐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3번째 수사다. 지난 두 차례의 수사에서 윗선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데 실패한 것과 달리 이번엔 검찰 칼끝이 청와대 참모진과 이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 [연합뉴스]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 [연합뉴스]

검찰은 지난 12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소환조사한 데 이어 14일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17일엔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비공개 소환 조사했다. 2012년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에 따르면 최 전 행정관은 2010년 7월 7일 "민정수석실과 검찰도 알고 있고 7월 8일경 압수수색이 이뤄질 것 같다. (민간인 사찰 자료가 있는) 컴퓨터를 강물에 다 갖다버리든지 부숴버리든지 하라"고 지시한 인물이다. 민간인 사찰 및 관련 증거를 은폐한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만큼 검찰이 최 전 행정관을 소환한 것은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사진=중앙포토]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사진=중앙포토]

검찰 안팎에선 이 전 대통령을 포함 진짜 윗선이 누구였는지 규명하기 위한 1차 관문으로 권재진 전 장관(민간인 사찰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 전 장관은 민간인 사찰 당시엔 김진모 전 비서관의 직속상관인 민정수석이었고, 2012년 검찰 수사가 진행될 땐 법무부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중앙포토]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중앙포토]

2011년 민간인 사찰 사건 관련자들에게 입막음용 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윗선 규명을 위한 ‘키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최종 윗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드러나는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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