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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중국 탓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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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고 서울의 대중교통이 무료로 풀리던 날, 전 세계 대기 질 지수 지도를 보여주는 AQI(Ari Quality Index) 사이트에서 중국과 인도, 터키의 일부 지역은 서울 수준의 적색경보를 넘어 보라색, 갈색으로 물들었다.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주범이 중국인데 우리가 이런저런 애를 써 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푸념이 나온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 공기청정기를 사야 할 형편이라 짜증도 난다. 그런데 모든 게 중국 탓일까.

중국이 지난해 말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자 매년 폐플라스틱 50만t을 중국에 수출하던 영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소각이나 매립을 선택하면 환경오염이 불가피하고, 쌓아놓자니 양이 너무 많아서다. 결국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5년 안에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환경운동계에선 25년이 아니라 25개월짜리 비상 계획이 필요하다고 면박을 줬다.

선진국들이 깨끗한 공기와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중국이나 인도처럼 경제성장을 갈망하는 아시아 국가에 오염을 떠넘긴 덕분이었을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는 국내 원청과 하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글로벌 단위에서도 일어난다.

물류와 운송을 치밀하게 분석한 책 『배송 추적』에 따르면 아이폰을 하나 만들기 위해 애플은 3개 대륙에서 재료와 부품을 수급한다. 하나의 부품은 다른 나라로 건너가 다른 부품과 모듈로 조립된 뒤 다시 중국의 완제품 조립 공장으로 공급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재료 채굴부터 소비자에게 완제품을 배송하는 과정에까지 드는 운송 족적은 총 38만6000㎞에 달한다. 지구와 달을 왕복하는 거리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나 먼지, 오염물질의 양을 상상해 보라.

수많은 글로벌 기업은 이런 식으로 물류 관리를 최적화해 재고 부담을 덜며, 저개발 국가의 토지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해 이윤은 극대화하고 제품 단가는 떨어뜨린다. 소비자들은 덕분에 가성비 높은 상품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에는 세계 각국 기업과 글로벌 소비자들이 얽히고 물려 있는 셈이다.

쓰레기 수입 중단에서 보듯 중국은 성장을 위해 오염과 위험까지 떠안던 전략에서 차츰 벗어나려는 듯하다. 산시성 시안(西安)에 100m 높이의 세계 최대 공기청정탑도 세웠다. 중국이 자국의 공기 질을 걱정하기 시작한 건 우리 국민의 숨 쉴 권리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의 공장이 좀 더 먼 나라로 옮겨가길 마냥 기다리며 중국만 쳐다봐야 할까. 우리 역시 얼마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