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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88올림픽과 호텔 나이트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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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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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인트, 오킴스, 파라오, 바비 런던.

이 정체불명의 외국어들을 단박에 알아채신다면 당신은 굴렁쇠 소년의 감동을 기억하는 세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제이제이 마호니스는 어떠한가? 그래, 이 단어들은 특급호텔 나이트클럽의 이름이다. 더 포인트는 신라호텔, 오킴스는 조선호텔, 파라오는 힐튼호텔, 바비 런던은 롯데호텔의 나이트클럽이었다. 지금은 다들 문을 닫았고 딱 한 곳, 그랜드 하얏트호텔의 제이제이 마호니스만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들 호텔 클럽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뜻밖에도 이들은 88올림픽이 남긴 유산, 다시 말해 올림픽 레거시(Legacy)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방한하는 이벤트를 앞두고 노태우 정부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에 다급한 지시를 내린다. ‘외국인 손님이 밤에 즐길 수 있는 명소를 만들어라.’ 나라의 명령을 받들어 호텔들은 지하에 클럽을 들이거나 식당을 클럽으로 개조했다.

30년이 흘러 이 땅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이번 정부도 ‘평창 관광올림픽’을 선언할 정도로 올림픽을 관광 활성화를 위한 호기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경기장 시설, 개최도시 명성 등 유·무형의 올림픽 유산을 활용해 평창을 동계스포츠 관광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 남아서 올림픽을 추억하게 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개·폐막식장도 철거될 테고, 경기장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다른 시설로 바뀔 예정이다. 퍼뜩 경강선 고속철도가 떠오르긴 한다. 하나 교통 인프라는 교통 인프라일 뿐이다. 88올림픽도 길은 남겼다. 이름도 아예 ‘올림픽도로’라고 박았다.

실익도 따져봐야 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전 5시 32분 첫차를 타면 강릉역에 오전 7시 8분 도착한다. 청량리역행 막차는 오후 10시 30분 출발한다. 강릉에서 15시간 이상을 머물 수 있다. 그럼 강릉은 서울·수도권 시민의 당일여행지가 된다. 강원도의 허다한 숙박시설이 외려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이 2013년부터 주도했던 ‘올림픽 관광배후도시’ 사업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김이 빠졌고, 정부가 개발했다는 ‘올림픽 특선메뉴’는 정체가 불분명하다. 외국인 손님을 위해 새로 만든 메뉴에 한우불고기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10월 올림픽이 열리는 세 고장을 잇는 걷기여행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개장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정부는 33억원을 들여 길을 내놓고도 운영방안은 마련하지 않았다.

제이제이 마호니스는 놀랍게도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클럽 구조는 물론이고, 아일랜드풍 커튼도 그대로다. 클럽 입구의 석조 사자상도 고스란하다. 미국 수영선수가 훔쳤던 그 사자상 말이다. 그 선수는 서울지검에서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추억은 이렇게 무언가에 젖어드는 일이다.

아무리 바빠도 누군가는 잔치가 끝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는 당연히 올림픽 유산이어야 한다. 유산을 남기는 것은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지금으로선 강릉역 앞의 아침 국밥집만 남을 것 같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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