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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심사서 꼴찌인 응시자, 부정청탁으로 208대 1 경쟁 뚫고 교사 채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의 한 사립고는 영어교사를 공개채용하며 서류심사 15위로 최하위인 응시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전형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심사 기준을 바꾸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 해당 응시자는 208대 1의 경쟁을 뚫고 정교사로 채용돼 현제 이 학교에 근무중이다.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서울의 한 사립고는 영어교사를 공개채용하며 서류심사 15위로 최하위인 응시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전형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심사 기준을 바꾸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 해당 응시자는 208대 1의 경쟁을 뚫고 정교사로 채용돼 현제 이 학교에 근무중이다.삽화=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지난해 서울 노원구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영어 과목 정교사 1명을 공개 채용하는데 208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208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교사는 전임 교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학교 기간제 교사 A씨였다. 학교 측은 교사 임용 채용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서류 심사 기준을 바꾸는 등 A씨를 부적정하게 채용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다.

서울교육청 16일 사립고 채용비리 감사 결과 발표 #현직 교장·행정실장, 영어교사들 상대로 부정청탁 #교사 채용 시 A씨에게 유리하도록 채용 기준 변경 #채용 기준 바뀌자 A씨 서류 평가 점수 꼴찌→2위 #최종 평가 시엔 1위로 208대 1 경쟁 뚫고 임용 #시교육청, 교장·행정실장에 대한 해임·파면 요구 #"사학 채용비리에 대해 더욱 엄중히 대응할 것"

16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의 한 사립고는 영어 과목 정교사 공개채용을 실시하며, 특정 응시자인 A씨를 선발할 목적으로 전형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서류 심사 기준을 바꿨다. 당시 교무부장이던 B씨(현재 교장)와 행정실장 C씨는 채용 심사를 맡은 영어 교사들의 집까지 찾아가 “A씨가 채용될 수 있게 도와달라” “A씨를 임용하는 데 바리게이트를 치는 심사 기준을 변경해달라”고 지속적으로 회유·협박하며 부정청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학교의 정교사 공개채용 절차는 4차 전형으로 이뤄진다. 필기시험과 서류심사를 거쳐 수업 시연, 면접 순서다. 지난해 영어교사 임용 공개채용에서 1차 필기시험에는 208명이 응시했고, 이를 통과한 서류심사 대상자는 15명이었다. 서류 심사에서는 6명만 합격해 수업 시연을 하게 된다.

B교장과 C씨에게 부정청탁을 받은 영어 교사들은 원서 접수가 진행 중인 시점에 채용 절차가 이미 시작됐음에도 갑작스럽게 2차 전형인 서류심사 기준을 바꿨다. 서류심사 항목은 ‘공통기준’과 ‘교과기준’으로 나뉘는데, ‘교과기준’의 세부 평가 요소를 바꾼 것이다.

교과기준의 세부 평가 요소는 원래대로라면, 어학성적과 함께 대학성적과 전공학과 등을 학교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정량평가해 점수로 산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형 절차 도중에 심사 기준이 바뀌면서, 대학성적과 전공학과 항목이 빠지고 대신 인성과 업무적합도가 평가 요소로 추가됐다. 추가된 항목은 채점 기준도 정해지지 않아 임의 평가가 가능하다.

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영어 교사 공개채용에 응시한 A씨는 영어교육학과가 아닌 교육학과 출신인데다 학점도 낮았다. 기존의 서류심사 기준을 적용하면 ‘대학성적’과 ‘전공학과’ 항목에서 모두 0점(각각 2점 만점)을 받게 된다. 이때 점수는 심사 대상 15명 중 15위로 꼴찌다.

하지만 A교사는 달라진 평가요소로 인해 인성 부분에서 1점(2점 만점)을, 업무적합도에서는 지원자 중 유일하게 만점인 4점을 받았다. 기존 심사 방식보다 무려 5점이 높아졌고, 서류 심사 점수도 기존 15등에서 2등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3차 전형인 수업 시연과 4차 시험인 면접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응시자 208명 중 유일하게 임용됐다.

이 학교는 2차 서류 심사는 6등까지만 통과할 수 있다. 학교 측이 부적정하게 심사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면 A씨는 이 전형에서 15위로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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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의 원래 서류심사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A씨는 전체 15명 중 15위로 꼴찌다. 하지만 학교측이 임의로 심사 기준을 바꿔 2위로 뛰어 올랐다.[자료: 서울시교육청]

이 학교의 원래 서류심사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A씨는 전체 15명 중 15위로 꼴찌다. 하지만 학교측이 임의로 심사 기준을 바꿔 2위로 뛰어 올랐다.[자료: 서울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해당 학교 교사들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제보 받고 4일간 민원감사를 실시해 교사 채용 과정에서 부정청탁이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A씨를 합격시키기 위해 서류 심사 기준을 바꿔달라고 영어 교사들에게 부정청탁한 B교장에게 해임 처분을, 행정실장 C씨에게는 파면 처분을 내리도록 학교 법인에 요구했다. 또한 이들의 청탁을 받아 서류 심사 기준을 변경하고 수업 시연과 면접 심사에도 참여해 채용 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난 이 학교 영어교사 D씨에게도 해임 처분을 내리도록 요청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또 시교육청은 감사를 통해 적발한 사실들을 근거로 B교장과 C씨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의정부지법에 고발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사립학교 교원 채용과 관련해 금품 수수 없이 단지 청탁만으로 처벌을 받는 최초 사례가 된다.

B교장과 C씨의 청탁을 받고 A교사의 채용을 도운 이 학교 영어과 대표교사 D씨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D씨의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불구속공판 처분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은 "채용 비리를 통해 입사한 A교사의 임용 취소에 대해 법률 자문을 구하는 등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은 "채용 비리를 통해 입사한 A교사의 임용 취소에 대해 법률 자문을 구하는 등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부적정한 채용 과정을 거쳐 임용된 A교사에 대해서는 시교육청이 이례적으로 ‘임용 취소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감사 과정에서 A씨 본인의 부정행위가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A를 채용하기 위해 임용 시험의 절차와 내용상 객관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법률 자문을 받아 임용 취소가 가능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B교장과 행정실장 C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사립학교 교사 채용 비리와 관련해 부정청탁법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가 된다”며 “앞으로 사학 채용 비리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하게 대응할 방침”이라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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