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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나무 잘라내고 들어서는 태양광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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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 9일 눈이 발목까지 쌓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雪花山). 이름처럼 설경이 아름다웠지만 산자락에는 커다란 굴삭기 옆에 나무 수십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호서대 식품가공학과 이기영 교수는 “2만6000㎡ 부지에 1.65㎿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려고 벌목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인 환경운동가다.

공사 현장은 이 교수의 집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경치에 반해 지난여름 집을 짓고 들어왔는데, 12월 초 공사가 시작됐다. 그는 “반핵운동에도 참여했고 신재생에너지 보급도 지지해왔지만, 나무를 잘라내면서까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를 진행한 회사 측은 “이미 훼손된 곳이어서 나무를 많이 잘라내지는 않았다”며 “경관 보호를 위해 부지면적을 줄이면 사업성이 없다”고 말했다. 아산시의 담당 공무원은 “아산시에는 태양광 시설 설치 관련 조례가 없어 이번 허가가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태양광 보급은 정부에서 권장하는 일이고, 다른 경우에 비춰 이 교수 집 앞 사례는 특별히 심각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태양광 허가 관련 조례를 없앤 지자체에 정부 지원을 늘리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코사이언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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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이 전국 곳곳에서는 주민과 사업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수백 곳의 태양광 시설이 새로 들어서는 것은 정부가 2012년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RPS)를 도입한 때문이다. 500㎿ 이상의 설비를 가진 발전사는 발전량의 일부(2018년 기준 5%)를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대형 발전사는 의무량을 채우기 위해 소규모 태양광 발전회사로부터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구매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이 장사가 되는 것이다.

태양광 난개발이 우려되자 환경부도 환경영향평가 협의 때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딜레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태양광 발전 시장 자체를 깰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녹색(환경)을 위해 녹색(자연)을 파괴하는 모순은 없어야 한다. 가이드라인이 너무 엄격해서도 안 되겠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