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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내 마음에만 쏙 들면 그만이지 이젠 '가심비(價心比)' 높아야 지갑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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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中 제로(0) 라이프
빼면(-) 행복해지고, 바꾸면(0) 만족스럽고, 더하면(+) 편리해지는 시대가 왔다. 본지는 새해 라이프 트렌드를 마이너스·제로(0)·플러스로 3회 연속 전망한다. 그 두 번째는 ‘제로 라이프’다. 올해는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價心比)’가 소비 트렌드를 이끌 전망이다. 지난해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 성비’가 키워드였다면 올해는 자기만족을 위해 지갑을 여는 소비 행태가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만족 크면 비싸도 사 #기분·취향·안전 고려한 소비 #아이돌 캐릭터 굿즈 대표적

최근 유통업계에서 내놓은 올해 소비시장 전망 자료를 살펴보면 공통적인 단어가 눈에 띈다. 가격보다 마음의 만족이나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가심비’다. 지난해 경제성과 실용성을 따진 가성비가 소비시장을 휩쓸었다면 올해는 소비자의 기분과 취향, 안전까지 고려한 가심비로 진화했다.

나 중심 소비 ‘아이코노미’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닥터마틴 파스칼부츠, 라인프렌즈의 인형 '브라운', 평창 겨울 올림픽 굿즈 '평창 핑거하트 장갑', 돌체앤 가바나의 핸드백과 클러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닥터마틴 파스칼부츠, 라인프렌즈의 인형 '브라운', 평창 겨울 올림픽 굿즈 '평창 핑거하트 장갑', 돌체앤 가바나의 핸드백과 클러치.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올해 소비시장을 달굴 키워드로 ‘가심비’를 꼽았다. 소비자가 비싸도 안전한 것, 비싸도 즐거운 것을 추구하며 심리적 위안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객관적인 표준이 아닌 주관적인 만족감을 극대화한 제품은 소비자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한다”며 “약을 먹으면 병이 호전된다고 느끼는 플라시보 효과처럼 정확하거나 일관되지 않아 ‘플라시보 소비’로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2018년 쇼핑 키워드로 ‘나심비’를 선정했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넘어 나의 만족을 위해선 가격과 상관없이 과감히 지갑을 여는 소비 심리를 뜻한다. 문화 마케팅 그룹 위드컬처 산하의 컬처마케팅연구소는 ‘나’를 중심으로 한 소비생활을 뜻하는 ‘아이코노미(I-conomy)’를 올해 소비 트렌드로 전망하고 그 예로 가심비를 꼽았다.

광고회사 HS애드가 최근 트위터·블로그·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120억 건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심비의 언급량이 가성비를 넘어서 중요한 소비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성비만 따지거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행해졌던 소비에서 ‘나’ 중심의 소비로 바뀌면서 소비 형태도 ‘심리적 만족 극대화’와 ‘불필요한 소비의 최소화’로 나뉠 것이란 전망이다. 비싸도 안심이 되는 ‘위안 비용’,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느끼는 ‘탕진잼’, 스트레스를 받아 충동적으로 지출하는 ‘시발비용’ 등이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는 평소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끼다가 한두 가지 품목은 고품질·고가 제품을 선택하는 ‘일점호화(一點豪華)’ 현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애정 표현, 스트레스 해소

지난 8일 라인 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이태원점 앞에서 'BT21' 캐릭터 제품을 사려는 방탄소년단 팬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지난 8일 라인 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이태원점 앞에서 'BT21' 캐릭터 제품을 사려는 방탄소년단 팬들이 줄 지어 서 있다.

가심비 소비 행태의 대표적인 예는 ‘굿즈(goods)’ 소비다. 지난해부터 카카오 프렌즈나 라인 프렌즈, 아이돌 캐릭터를 형상화한 굿즈 열풍이 불고 있다. 사고 보면 쓸모가 없어 ‘예쁜 쓰레기’로 불리던 굿즈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캐릭터를 향한 애정 표현용이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는 가심비와 ‘미닝 아웃(Meaning Out·소비 행위로 자신의 취향과 철학을 알리는 것)’ 현상이 맞물리면서 굿즈 시장 규모가 향후 1000억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지난 8일 문을 연 라인 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이태원점에는 방탄소년탄과 협업한 ‘BT21’ 캐릭터 제품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500여 명이 넘는 팬이 몰려들어 300m 넘는 긴 줄이 이어졌다. 매장 오픈 2분 만에 진열된 1차 제품이 동나 굿즈 열풍을 증명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굿즈 인기도 만만치 않다. ‘평창 롱패딩’ 인기가 ‘평창 핑거하트 장갑’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유행 중인 일명 ‘손가락 하트’ 만들기에 좋은 장갑으로 알려지면서 유명 아이돌, 국가대표 선수까지 SNS에서 인증샷을 공유해 출시 한 달여 만에 1만 개가 팔렸다. 이 장갑을 기획·디자인한 스포츠·문화 전문기업 WAGTI(왁티) 강정훈 대표는 “스마트폰 터치 기능을 갖춘데다 개성 있는 디자인과 평창 굿즈라는 의미가 더해져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리브영과 빙그레가 협업해 출시한 ‘라운드어라운드X바나나맛 우유’ 화장품.

올리브영과 빙그레가 협업해 출시한 ‘라운드어라운드X바나나맛 우유’ 화장품.

올리브영과 빙그레가 협업해 출시한 ‘라운드어라운드X바나나맛 우유’ 화장품.

올리브영과 빙그레가 협업해 출시한 ‘라운드어라운드X바나나맛 우유’ 화장품.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굿즈도 가심비를 높여주는 제품이다. 바나나맛우유 굿즈는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먹던 바나나맛 우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콘셉트로 히트를 쳤다. 올리브영과 빙그레가 협업해 ‘라운드어라운드×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을 선보였는데 출시 3개월 만에 20만 개가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 두 번째 협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바나나와 딸기맛 우유에서 메론과 커피맛 우유로 향을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 행태가 확산되는 배경으로 과도한 경쟁, 저성장 속 깊어지는 박탈감, 자존감 상실, 화학물질 공포 등 암울한 사회 분위기에서 느끼는 불안·공허함을 꼽는다. 불신·불안·불황이라는 ‘3불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분석이다. ‘살충제 달걀’부터 ‘유해 생리대’까지 일상에서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잇따르면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다. 지난해 여성환경연대가 시중 생리대의 유해물질 위험을 발표한 직후 대형 마트에서는 일반 생리대보다 세 배가 비싼 100% 천연 펄프 친환경 생리대 판매량이 급증했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비싼 돈을 지불하더라도 안전성이 입증된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개인의 욕구가 크게 반영된 소비, 당장의 만족도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상품이 주목받는다. 손수연 컬처마케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가심비 소비는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인 동시에 사회적 불안감, 저성장·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생긴 박탈감을 해소하는 수단”이라며 “심리적 만족까지 생각한 감성 마케팅 제품이 올해 인기를 끌 전망”이라고 말했다.

글=한진 기자(jinnylamp@joongang.co.kr)
일러스트=마키토이
사진=각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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