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2006.03.13 04:59

업데이트 2006.06.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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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하지만 웃음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 친구 하나라도, 엔도르핀 돌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

운명을 예감해 대중에게 미리 '웃음 철학'을 전수한 것일까. 개그맨 김형곤(48)씨가 10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그대로 유언이 됐다. 그는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란 제목의 글에서 웃음을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서울 자양동의 한 헬스사우나에서 운동 후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동료 연예인들은 "체중 조절에 대한 강박관념, 사업이 어려운 데 따른 스트레스, 과로 등이 원인일 것"으로 분석했다.

고인은 대한민국의 웃음 전도사를 자처해 왔다. 웃음이 넘치는 나라만이 미래가 있다는 지론을 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기도 좋아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란 얘기다. 그는 지난해 펴낸 저서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에선 유머 천국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제언도 했다.

<그래픽 참조>

웃음을 향한 고인의 열정엔 끝이 없었다. 그가 한국 코미디사를 새로 썼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공포의 삼겹살'로 불렸던 그는 1980~90년대 코미디계를 주도했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몸으로 웃기기 급급했던 코미디에 '시사 풍자'란 장르를 도입했다. 풍자 없는 개그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는 백미 중 하나였다.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 등의 유행어는 말장난이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권과 기득권층을 간접적으로 꼬집은, 촌철살인의 유머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웃음은 눈물과 노력의 산물이었다. 고인은 뚱뚱한 몸매와 혀 짧은 발음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했다. 그는 평소 "선배 가수 한 분은 노래 한 곡으로 30년을 버티셨다. 하지만 개그맨은 어제 개그를 오늘 또 하면 지탄받는다"고 말해 왔다. 그는 아이디어를 위해 10개 이상의 신문을 매일 정독했다.

개인적으로는 굴곡도 많았다. 2000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사업도 잇따라 실패했다. 부인과 이혼했고, 아들 도헌(13)군은 혼자 영국으로 유학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겐 웃음이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우선 120㎏에 달하던 몸무게를 30㎏가량 줄였다. 새 인생을 위한 도전이었다. 무대로 돌아와 연극으로, 스탠딩 개그쇼로, 뮤지컬로 대중을 웃겼다. 이달 30일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코미디쇼를 펼칠 예정이었다. 빈소에 온 동료 개그맨들은 "천상 개그맨인 그는 하늘에서도 코미디 무대를 꾸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마음을 아는지 영정 속의 그도 웃고 있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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