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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사람을 끌어당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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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08면

교보문고 합정점

교보문고 합정점

‘책을 파는 곳=서점’이라는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자제품 매장부터 백화점·호텔·편집숍까지, 새 단장을 했다 치면 책이 빠지지 않는다. 매장 내 도서관을 만들거나 기존 상품을 책과 함께 진열하는 식이다. 책이 본업인 대형 서점들 역시 영역을 확장 중이다. 빼곡한 서가 대신 여유로운 문화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점·유통 매장 바꾸는 츠타야 스타일

변화의 배경에 일본 서점, 츠타야가 있다.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고객의 취향을 설계해준다는 이곳은 업체들의 벤치마킹 1순위다. 이름하여 ‘츠타야 이펙트(tsutaya effect)’다. 대체 츠타야가 뭐길래, 그리고 이런 변화는 왜 일어나는 걸까. 속사정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살펴봤다.

세탁기 사러 갔다 책을 펴들다

롯데 하이마트 구리역점

롯데 하이마트 구리역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그랜드 워커힐 서울

그랜드 워커힐 서울

부산 아난티 코브

부산 아난티 코브

새단장을 마치고 지난 5일 문을 연 롯데하이마트 구리역점. 세탁기 옆 벽면에 냉장고를 쭉 진열할 법 한데, 대신 4m 높이의 책꽂이가 배치됐다. 『부모 공부』『똑게 육아』『엄마 내공』등 육아 관련 책이 꽂혀 있다. 세탁기를 고르다가 책을 읽으라는 컨셉트일까.

이곳 1322㎡ 규모의 매장에는 가전제품과 책 5000권이 공존한다.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북카페 카페꼼마와 손잡고, 북카페를 ‘숍인숍’ 형태로 들여놨다. 국내 가전 매장이 책을 들인 첫 시도다. 롯데하이마트 신정욱 신규사업팀장은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매장에 가전제품을 빼곡하게 진열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고객 니즈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가전을 사러 왔다 바로 나가는 곳이 아니라, 오며 가며 부담없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매장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유행에 맞춰 공간을 빠르게 재편하는 백화점들이 화두로 삼는 것도 책이다. 롯데백화점만 해도 잠실·청량리·건대스타시티점 등 9개 매장에 대형 서점을 입점시켰다. 특히 부산 본점의 경우 지난해 9월 ‘리틀 엘 라이브러리’라는 서점을 자체적으로 오픈했다. 엄마와 아이를 타깃층 으로 삼아, 아동 서적 외 인테리어용품·화장품·잡화· 파티용품도 함께 진열해 놓았다. 또 미술·색칠놀이·꽃꽂이 등 엄마와 아이가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수업도 신설할 예정이다.

호텔·리조트도 잇따라 책을 앞세운다. 지난해 1월 새롭게 단장한 서울 광장동 그랜드 워커힐 서울은 본관 2층에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소설 및 에세이, 역사과학 등 3000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음료를 주문하면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 형식이다. 호텔이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충만히, 때로는 무료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7월 부산 기장군에 문 연 아난티 코브 리조트 역시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의 서점을 열었다. 기존 서점과 달리 모든 책의 표지를 보이도록 진열함으로써, 서가를 천천히 거닐며 꺼내 보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휴식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서점가, ‘책+α’를 팔다

교보문고 합정점

교보문고 합정점

서점 역시 최근 1~2년 새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2015년 11월 서가 12개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가로 11.5m, 세로 1.5~1.8m의 대형 테이블을 뒀다. 5만년 전 자연재해로 네덜란드 늪지대에 묻혀 있던 1.6톤 규모의 카우리 소나무 테이블이었다.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이 테이블을 놓고서 당시 출판업계와 서점가에서는 설왕설래가 펼쳐졌다. ‘책은 안 사고 읽기만 해서 책만 상할 것’이라는 예측 탓이다. 하지만 요즘은 대형서점마다 매장 내 독서 테이블을 두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교보문고 김상준 신점포개발팀장은 “고객이 사려는 책을 빨리 찾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과거 서점의 서비스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디지털에서 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국내 서점이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문을 연 교보문고 합정점은 책이 주인공인 서점 고유의 성격을 아예 바꿨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하 상가(7907㎡)를 통으로 임대해 서점(2212㎡)을 가운데 두고, 서점과 시너지가 날만한 식음료 업종으로 나머지 상가 매장을 직접 기획ㆍ구성한 것. 서점 안에서도 만년필ㆍ스피커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매대를 서가 사이사이에 두며 서점과 상점의 경계를 흐렸다(661㎡ 규모).

츠타야 전략 “편안하게 오래 머물게 하라”

츠타야 티사이트

츠타야 티사이트

그랜드 워커힐 서울

그랜드 워커힐 서울

일반 매장이든 서점이든 방식은 달라도 배경을 따져 보면 하나다. 기획단계부터 ‘츠타야 스타일’을 생각했단다. 핵심이 뭘까. 일단 오래 그리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구성에 역점을 둔다는 얘기다.

2011년 개점한 도쿄 다이칸야마점 ‘티사이트(T-SITE)’를 보면 이해가 쉽다. 시부야 옆동네 다이칸야마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곳은 4202㎡ 면적의 땅에 2층 높이 3개 서점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어디에서나 멋진 빈티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독서를 즐긴다거나, 본인이 구매한 음반을 최고급 스피커와 오디오 시스템으로 감상해볼 수 있다. 특히 주 타깃층인 60세 이상 구매력 있는 시니어들을 위한 편의 시설에 비중을 뒀다. 3개 건물 주변으로는 레스토랑·갤러리·자전거 전문점, 애견용품점 등을 배치했다. 게다가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영업을 하다보니 그야말로 하루종일 티사이트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이 라이브러리를 마련한 것도 여기에 힌트를 얻었다. SK네트웍스 워커힐의 김지은 팀장은 “츠타야 서점으로 ‘워너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몰리고, 실제로 고객 스스로 고객의 배경이 된다는 마스다 무네아키 츠타야 창업자의 철학은 호텔 업계와 같은 DNA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츠타야 스타일’의 또다른 특징은 큐레이션 시스템이다. 가령 여행 코너가 있다면 예술적 측면에서 마법의 도시 프라하를 안내하자와 같은 주제를 선정하고 책의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체코와 관련된 영화·소설·음악 등등을 한곳에 모아서 진열한다. 책과 관련된 상품을 함께 배치하기도 한다. 킨포크 잡지 옆에 실제 이와 어울리는 그릇과 테이블보를 둔다거나, 이탈리아 문학서 옆에 여행 상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와 함께 컨시어지(Concierge·접객담당자) 제도를 도입했다. 각 장르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큐레이션에 필요한 상품 선정부터 매장 내 고객 응대까지 맡는 것이다. 여행 코너는 20권이상 가이드북을 출간한 여행 저널리스트가, 자동차 코너는 매니어층이 인정한 전문가가 나선다.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퀸마마마켓’에 마련된 서점 ‘파크(park)’도 이와 흡사한 방식이다.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와 디자인·예술서적으로 이름난 포스트포에틱스가 손잡고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에 맞는 책을 큐레이션해 선보인다. 교보문고 합정점은 예술·여행·클래식 등을 ‘예움’이라는 한 카테고리에 모아두고 그 주변으로 아트 용품을 배치하는 식으로 츠타야를 벤치마킹했다.

새로운 책 소비 vs 책의 장식화

소니아리키엘 파리 플래그십

소니아리키엘 파리 플래그십

와비파커 뉴욕 매장

와비파커 뉴욕 매장

부산 아난티 코브

부산 아난티 코브

오프라인 매장이 책을 들이고, 서점이 리뉴얼 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집객(集客) 효과다. 책이라는 매력 요소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또 오래 머물게 하면 소비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논리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서는 패션 매장에서도 책을 보는 게 낯설지 않다. 소니아리키엘 파리 플래그십은 5만권의 장서가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안경 스타트업 업체 와비파커의 뉴욕 매장은 독립출판사 책을 판매한다. 모두 매장을 찾은 고객이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기대치 않은 경험(혹은 구매)을 유도하기 위해 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츠타야가 일본에서 1500개의 점포, 600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이 ‘피플 마그넷’이라는 건 국내에서도 통하고 있다. ‘리틀 엘 라이브러리’의 경우 오픈 이후 전년 동기 대비 방문자 수가 45%나 늘었고, 고객 1인당 소비액 역시 25% 증가했다. 박준홍 선임 바이어는 “브랜드 입점만으로는 체류 시간을 늘리는 한계가 있다”면서 “츠타야처럼 서가만큼이나 넓은 카페와 책 읽는 공간을 확대한 아이디어가 제대로 먹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책을 다양한 장소에서 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면서도 ‘책의 장식화’‘책의 패션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보다 공간·제품 비중이 커지다보면 ‘책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취지는 퇴색하고 책을 이용한 유통만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적 측면에서도 숙제는 남는다. 확실한 기획 없이는 인스타그램 맛집처럼 반짝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것. “전문적 큐레이션과 영업시간 확대 등 츠타야의 고객 중심 서비스를 간과하면 조만간 식상해 질 수 있다”는 게 트렌드 분석업체 ‘트렌드랩 506’ 이정민 대표의 이야기다. ●

글 이도은ㆍ한은화 기자 lee.doeun@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위즈덤하우스·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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