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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어리라고?'…박상기 발언으로 본 가상화폐 인식과 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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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고집하는 것은 암호화폐 거래 자체가 ‘도박’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광풍을 타고 한국 내 거래량이 하루 5조원을 넘길 정도로 시장이 커진 만큼 버블이 붕괴됐을 경우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朴 "암호화폐는 가치없는 돌덩어리" #프리드먼 "돌도 화폐 될 수 있어" #법무부 "거래소가 버블 조장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뗄 수 없어 #가격변동 우연에만 의존하지 않아

그럼에도 '거래소 폐쇄'에 대해선 정책 추진에 있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법무부는 암호화폐 특별법 제정의 목적을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립'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같은 목적만으로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라는 수단이 정당화될 순 없다는 의미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박 장관의 인식은 11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암호화폐를 '돌덩이'에 비유하며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거래 자체에 대해서도 "국고 유출 등이 관점에서 봤을 때도 부작용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박 장관의 주요 발언을 토대로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라는 대책이 나온 이유와 과정, 문제점 등에 대해 짚어봤다.

“가상화폐와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은 별개의 문제다. 가상화폐의 문제점을 교묘하게 호도하기 위해 블록체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적 기술이라는 것은 시장의 일반적 평가다. 일단 세계 주요 IT기업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업체 페이스북이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적극 흡수하겠다고 밝히며 이를 새해 과제로 선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도이체방크가 비트코인 가격 폭등의 배후로 일본판 복부인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를 지목했다. [중앙포토]

도이체방크가 비트코인 가격 폭등의 배후로 일본판 복부인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를 지목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비트코인 투기를 “17세기 튤립 광풍보다 심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9일 “블록체인 기술은 현실이 됐다.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록체인은 관련 데이터를 중앙집권화해 한 군데서 보관하던 것과 달리 여러 명이, 여러 군데 나눠서 저장하는 기술이다. 정보가 한 군데 응축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해킹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블록체인 기술이 현실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 거래다.

박상기 장관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 데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본래 기술적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라고 평가를 내리는 이유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할 핵심적 기술 중 하나고, 현재로선 그 기술이 가장 잘 반영된 형태가 암호화폐”라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블록체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상화폐의 문제점을 숨기려 한다는 인식은 암호화폐를 불법과 합법의 잣대로 해석해 자의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가상증표 정도로 보는 게 정확하지 않나 생각한다.”

암호화폐가 법적으로 통용된 ‘화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 모두 암호화폐를 화폐가 아닌 ‘물품’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폐로 보는 순간 정부가 공식적으로 암호화폐의 교환가치와 내재가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선 공식적으로 ‘가상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장관이 ‘가상 증표’라는 새로운 표현을 꺼낸 것은 암호화폐가 실물경제에선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박 장관은 “가상화폐는 일단 가치에 기반을 둔 거래대상은 아니다”며 암호화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열풍 속 20배 오른 비트코인 가격

암호화폐 열풍 속 20배 오른 비트코인 가격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격 급등락의 원인이나 이런 것들이 상품거래의 가격 급등락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법무부가 암호화폐를 ‘도박’으로 규정했다는 논란은 박 장관의 이 발언에서 시작됐다. 실제 법무부는 지난달 4일 암호화폐 규제를 위한 주무부처로 지정된 이후 줄곧 ‘암호화폐=사회악’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관계부처 회의에선 암호화폐 투기 광풍을 10년 전 바다이야기 사태에 빗대며 거래소 폐쇄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무부의 주장대로 암호화폐를 도박으로 볼 수 있을까. 형법 246조에선 도박을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선 도박의 정의를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이나 활동에 금전이나 가치를 내거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연성(결과의 불확실성)에 의존해 상호 간에 금품이 오가야 도박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수량이 한정된 상태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가 형성된다. 암호화폐의 가치는 보는 시각에 따라 이견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가격 변동의 이유도 ‘우연성’만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암호화폐 거래는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데다 암호화폐 하드포크(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암호화폐가 두 개 이상으로 분리되는 작업) 등 호재와 악재가 존재한다. 실제 암호화폐 시장에선 각종 투자보고서가 나오고 있고 가격 변동의 인과관계에 대한 기술적 분석도 전문화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도박’에 비유하고 거래를 불법화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자체가 ‘밀어붙이기식 입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김치 프리미엄이니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가 비정상적이라는 해외의 평가가 내려진 것 아니냐.” 

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선 그 정도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박 장관이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가 비정상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투자 광풍의 정도가 심하다는 측면에서 봤을 땐 맞는 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암호화폐 광풍에 대해 "한국에서 비트코인 열풍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 투하지점)’가 됐다”고 전했다. 실제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약 20%가 원화로 결제되는 상황이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비트코인을 둘러싼 ‘태풍의 눈’이 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한국이 자기 체급(역량)보다 과한 펀치를 휘두른다(punches above its weight)”고 분석했다. 김치 프리미엄은 이 같은 ‘광풍’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국제가격보다 한국 거래소 내에서의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개인과 개인이 돌덩어리 하나 놓고 좋은 거니까 사라고 해서 거래가 이뤄졌다. 그걸 막을 순 없는 일이다.” 

위 발언은 기자간담회에서 ‘개인 간 암호화폐 거래까지 막겠다는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박 장관의 답변이다. 그는 일단 암호화폐를 ‘돌 덩어리’로 표현했다. 암호화폐가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화폐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과거 저서를 통해 돌덩어리도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저서 '화폐 경제학'에서 '거래하는 사람들 간의 신뢰와 믿음'이 전제될 경우 돌도 화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돌을 화페로 사용했던 남태평양의 야프섬을 예로 들었다.

박 장관은 암호화폐가 사실상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돌덩어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람들 간의 상호 신뢰가 있을 경우 돌덩어리도 얼마든지 화폐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물품이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박 장관은 또 거래소는 폐쇄하되 P2P(개인 간 거래) 거래는 막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길가에 놓인 돌덩어리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품을 굳이 돈을 주고 거래하겠다면 그것까지 막진 않겠다는 의미다. 암호화폐 거래 자체를 범죄로 보는 것은 아니란 의미다. 다만 특별법은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것만 막겠다는 취지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의 가치가 특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들이 이런 거래를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거래소는 아무 이유 없이 수수료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상황은 비합리적”이라며 “사실상 거래소가 암호화폐 버블을 조장하는 상황인 만큼 버블이 붕괴되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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