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짐 수레에 싣고 개와 도보여행하는 독일인

중앙일보

입력 2018.01.12 06:00

업데이트 2018.01.12 11:22

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14) 

펑펑 내리던 스위스의 눈이 이탈리아로 들어서자 빗줄기로 바뀌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산마리노.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가장 고귀한 공화국 산마리노'이다. 유럽에서 바티칸과 모나코 다음으로 세 번째로 작은 나라로 면적은 안양시 정도이고, 인구는 강원도 인제군과 비슷하다.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티타노 산 위에 있어 '구름 위 동화의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산마리노 캠핑장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들
중고트럭 개조한 캠핑카 모는 프랑스인도

티타노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마리노. [사진 장채일]

티타노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마리노. [사진 장채일]

그런데 산마리노로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유럽에서는 이름이 같은 도로가 가끔 있어서 주소나 이름만으로 길을 찾다가는 종종 낭패를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산마리노 캠핑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내비게이션에 이름과 주소가 검색되지 않는다.

산마리노로 가는 길  

생각 끝에 산마리노로 일단 가서 캠핑장을 찾기로 하고, 산마리노의 주소 가운데 아무거나 눈에 띄는 것을 지정해놓고 출발했다. 그러나 아무리 코딱지만 한 나라일지라도 주소도 모르고 간다는 게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아 와이파이가 열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다시 한 번 주소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주소가 잡힌다!

“얏호! 이제 마음 놓고 가게 됐네! 기분 좋게 출발~”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내비게이션이 남쪽으로 향하던 길을 벗어나 스위스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길안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고속도로에 들어서 방향을 틀수도 없다. 한참을 가고 나서야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몇 시간은 날아가 버렸다.

드디어 산마리노에 도착했다. 그러나 날은 이미 어둑하다. 어두운 길에서 이리 묻고 저리 물어 캠핑장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기어코 캠핑카 옆구리를 긁히고 말았다. ‘지금까지 조심해서 잘 운전 했는데. 렌트카 회사에선 조그만 흠집에도 수리비를 엄청 물린다던데 어떡하지!’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캠핑카를 인도 받을 때 우리 실수로 차가 망가지거나 할 경우를 대비해 1200유로를 미리 예치해 두었는데 아무런 문제없이 차를 반납해야만 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배정 받은 자리에 차를 세우는데 옆 사이트가 소란하다. ‘보통 유럽 캠핑장에선 해가 지면 다들 자리로 들어가 조용하던데 이 사람들은 좀 특이하네’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나누고 보니 프랑스인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물에 빠져도 입이 물위에 뜬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산마리노 캠핑장에서 만난 프랑스인 은퇴 여행자 피에르씨와 도미니끄씨. [사진 장채일]

산마리노 캠핑장에서 만난 프랑스인 은퇴 여행자 피에르씨와 도미니끄씨. [사진 장채일]

이들 중 피에르씨는 얼마 전 우리나라 TV에서 보았던 집시맨 김영태씨 부부처럼 중고트럭을 직접 개조한 캠핑카를 타고 아내와 함께 몇 년째 여행 중이란다.

피에르씨의 캠핑카 내부를 살펴보니 간편하고 검소하다. 그는 한국에도 꼭 캠핑여행을 오고 싶다며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이날 밤 산마리노의 한적한 캠핑장에서는 밤늦게까지 즐거운 이야기꽃이 피어올랐다.

피에르씨가 자작 캠핑카로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륜구동 트럭 캠핑카로 험지여행을 즐기는 진정한 캠핑 마니아였다. [사진 장채일]

피에르씨가 자작 캠핑카로 그동안 여행했던 나라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륜구동 트럭 캠핑카로 험지여행을 즐기는 진정한 캠핑 마니아였다. [사진 장채일]

피에르씨가 자신이 직접 개조한 트럭 캠핑카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채일]

피에르씨가 자신이 직접 개조한 트럭 캠핑카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는 차체가 높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는 차체가 높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내부. 이 테이블을 젖히면 2인용 침대로 변신한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내부. 이 테이블을 젖히면 2인용 침대로 변신한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주방.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주방.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내부는 꼭 필요한 시설과 장비로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사진 장채일]

트럭 캠핑카의 내부는 꼭 필요한 시설과 장비로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사진 장채일]

피에르씨의 아내. 은퇴한 남편과 함께 트럭 캠핑카로 몇년째 여행 중이다. [사진 장채일]

피에르씨의 아내. 은퇴한 남편과 함께 트럭 캠핑카로 몇년째 여행 중이다. [사진 장채일]

헤어지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는 도미니끄씨. 밤늦은 시간동안 캠핑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 장채일]

헤어지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는 도미니끄씨. 밤늦은 시간동안 캠핑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 장채일]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긁혔던 차체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경미한 흠집이었다. 나중에 수리를 받기로 하고 주변 산책에 나섰다. 캠핑장은 늦가을 이어선지 한산하였다. 그런데 저 멀리 흰 개 두 마리가 우리를 보고 달려온다. 처음 본 사이인데도 반갑다고 몸을 비비고 흙발을 걸치는 등 천방지축인 불테리어 종이었다. 개들을 따라 가니 독일인 마크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2년째 개 두 마리와 도보여행 중이예요. 텐트와 짐들은 저 수레에 싣고 끌고 다니죠. 걷다가 운이 좋으면 차를 얻어 타기도 해요. 필요한 경비는 여행 중 간간히 일거리를 찾아 벌어 쓰고 있어요. 그런데 도보여행이다 보니까 돈이 별로 필요 없어요. 개 두 마리와 제 식비 정도만 벌면 되지요. 맥주 한 병 있으면 더 좋고요.”

산마리노 캠핑장 전경. 겨울이라서인지 한산하기 그지없다. [사진 장채일]

산마리노 캠핑장 전경. 겨울이라서인지 한산하기 그지없다. [사진 장채일]

캠핑장을 산책하다 만난 독일인 도보여행가 마크씨와 그의 불테리어 반려견들. [사진 장채일]

캠핑장을 산책하다 만난 독일인 도보여행가 마크씨와 그의 불테리어 반려견들. [사진 장채일]

마크씨는 2년째 도보여행 중이라고 한다. 필요한 돈은 여행 중 일거리를 찾아 마련한다고 한다. [사진 장채일]

마크씨는 2년째 도보여행 중이라고 한다. 필요한 돈은 여행 중 일거리를 찾아 마련한다고 한다. [사진 장채일]

마크씨의 여행 장비들. 오른쪽에 보이는 바퀴달린 수레에 장비를 싣고 도보로 여행하다가 운 좋으면 차를 얻어 타기도 한단다. [사진 장채일]

마크씨의 여행 장비들. 오른쪽에 보이는 바퀴달린 수레에 장비를 싣고 도보로 여행하다가 운 좋으면 차를 얻어 타기도 한단다. [사진 장채일]

“숲과 공기, 따뜻한 햇빛이면 행복” 

혼자 여행하는게 힘들고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맑고 깨끗한 숲과 공기, 따뜻한 햇빛,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저는 행복하답니다.”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얼마 전에 읽은 채근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차를 굳이 좋은 것만 찾지 않는다면
차 주전자가 마르지 않을 것이고

술도 맛좋은 것만 찾지 않는다면
술통이 비지 않을 것이다.

거문고는 장식을 하지 아니해도 언제나 고운 소리가 나고 단소는 구멍이 없어도 절로 음이 맞느니

비록 복희씨만은 못할지라도
죽림칠현에 필적할 수는 있으리라.
-채근담 후집 133장 

산마리노의 캠핑장에서 자신 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면서 사는 이들을 만났다. 이런 게 여행이 아니던가.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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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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