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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천연수영장·별모래 해변에서 나홀로 물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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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에는 사이판 말고도 근사한 섬 티니안과 로타가 있다. 두 섬은 관광 인프라는 열악하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다. 로타 북부의 천연수영장 ‘스위밍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현지인의 모습.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에는 사이판 말고도 근사한 섬 티니안과 로타가 있다. 두 섬은 관광 인프라는 열악하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다. 로타 북부의 천연수영장 ‘스위밍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현지인의 모습.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는 15개 섬으로 이뤄졌다. 사람 사는 섬은 사이판·티니안·로타 3개 뿐이다. 익히 알려진 사이판 말고 두 섬이 궁금했다. 2017년 10월, 사이판 간 김에 두 섬을 다녀왔다. 혼자서 전세 낸 것처럼 한적한 해변, 만화에서나 본 듯한 새들 지저귀는 소리, 미소 가득한 사람들. 관광 인프라가 낙후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발전이 멈춰있어서 비밀한 풍경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아픈 역사 보듬는 자연

티니안·로타를 갈 때 타는 경비행기.

티니안·로타를 갈 때 타는 경비행기.

사이판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티니안 가는 6인승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수하물 뿐 아니라 승객 몸무게까지 잰 뒤 비행기가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자리를 배정했다. 공항 대합실은 한국 시골 버스터미널보다 비좁았다. TV에 나온 풋볼 경기를 보고서야 이곳이 미국 땅이란 게 실감났다.

사이판 이웃섬 티니안·로타 #두 섬 모두 가는 곳마다 한갓진 해변 #2차대전 한국·일본 유적 둘러보고 #렌터카 몰고 정글 누비는 재미까지

15분 만에 티니안에 도착한 뒤 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티니안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타가비치에서 현지인들이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하늘빛이 분홍에서 보라로 옮겨가고 아이들 꺄르륵대는 소리가 음표처럼 하늘에 걸렸다.

티니안 주도로인 브로드웨이. 섬 모양이 뉴욕 맨해튼을 닮았다 해서 길 이름도 뉴욕에서 따왔다.

티니안 주도로인 브로드웨이. 섬 모양이 뉴욕 맨해튼을 닮았다 해서 길 이름도 뉴욕에서 따왔다.

이튿날 아침, 다시 바다로 나갔다. 타가 비치 옆 타촉냐 비치에서 스쿠버다이빙 채비를 했다. 바다에는 강사와 기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심 10m에 이르자 산호 군락이 보였다. 김장용 무만큼 큼직한 해삼이 바닥에 널렸고, 나비고기·벵에돔·흰동가리 등 형형색색 열대어가 노닐었다. 동남아시아 바다만큼 물고기가 많지 않았지만 시야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타촉냐비치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벵에돔·나비고기 등 열대어가 모여들 었다.

타촉냐비치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벵에돔·나비고기 등 열대어가 모여들 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티니안에서 가장 큰 식당인 JC카페로 갔다. 중국식 잡탕과 미국식 닭튀김,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 답게 작은 섬 식당에도 온갖 문화가 뒤섞여 있었다. 동네 이름은 산호세. 17~19세기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한 스페인의 흔적이다. 스페인 이후 섬 주인은 미국, 일본, 다시 미국으로 바뀌었다. 스페인이 섬을 찾기 전까지는 차모로족만 살았다.

출루비치에 가면 죽은 산호가 파도에 닳아 별 모양이 된 모래알갱이를 볼 수 있다.

출루비치에 가면 죽은 산호가 파도에 닳아 별 모양이 된 모래알갱이를 볼 수 있다.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제주도 면적의 5% 밖에 되지 않아서 반나절 밖에 안 걸렸다. 티니안 해변은 모두 색달랐다. 북서쪽 출루비치에는 별처럼 생긴 작은 모래알갱이가 반짝였다. 죽은 산호가 오랜 세월 파도에 갈리고 깎여 별이 됐다. 섬 북동쪽에는 바닷물이 10m 높이로 치솟는 천연분수 ‘블로 홀’이 있다. 갯바위에 지름 50㎝ 구멍이 있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물이 솟구친다.

고래등에서 솟구치는 분수 같은 블로 홀.

고래등에서 솟구치는 분수 같은 블로 홀.

일본과 관련된 유적도 많았다. 섬 남쪽에 자살절벽이 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일본군과 민간인 수천명이 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택한 결정이었다. 민간인 중 상당수는 강제징용된 한국인 이었다. 산호세 마을에 한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섬을 점령한 미군은 1년 뒤인 45년 8월, 태평양전쟁에 마침표를 찍는다. 바로 티니안 공군기지에서 B-29기에 실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사흘 뒤 두 번째 폭탄 ‘팻 맨’을 나가사키(長崎)에 투하했다. 지금은 풀만 무성한 비극의 현장에서 세월의 무상함만 느껴졌다.

자살절벽.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군과 티니안에 살던 민간인 수천 명이 여기서 뛰어내렸다. 민간인 중 상당수는 강제징용된 한국인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쓰던 기지.
미국 공군기지였던 이곳에서 원자폭탄을 실어 일본에 투하했다.
태평양전쟁 때 희생당한 한국인을 기리는 추모비.
열대 새들의 낙원

로타에서 가장 유명한 테테토비치. 사람 붐비는 법이 없다.

로타에서 가장 유명한 테테토비치. 사람 붐비는 법이 없다.

티니안에서 로타로 곧장 가는 비행편은 없었다. 사이판에서 8인승 비행기를 타고 30분을 날았다. 북마리아나제도 최남단 섬 로타는 티니안보다 멀었다. ‘세계에서 가장 친근한 공항’이란 환영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튿날 섬을 떠나며 이 말이 틀리지 않다 생각했다. 인구 2500명 뿐인 섬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친절했다. 필리핀·인도·일본 그리고 로타. 태어난 곳이 어디든 수줍은 듯 맑은 웃음이 모두 비슷했다.

천연수영장 스위밍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현지인.

천연수영장 스위밍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현지인.

로타에서는 렌터카를 이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스위밍 홀. 이름 그대로 바닷가 천연수영장인데 들어가는 길부터 인상적이었다. 야자수 우거진 정글 비포장도로 1㎞를 달리는데 형형색색 새들은 물론 야생 닭까지 푸다닥 날아다녔다. 현지인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스위밍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사이판 청년 마이클은 누나와 함께 로타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로타처럼 고요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드물어요. 사이판은 어디를 가든 외국인 관광객이 북적거리죠.”

로타 네이비스 지역에는 고대 차모로인의 채석장 유적이 있다.

로타 네이비스 지역에는 고대 차모로인의 채석장 유적이 있다.

거대한 현무암 돌덩이는 주택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이었다.

거대한 현무암 돌덩이는 주택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이었다.

차를 몰고 섬 남동쪽으로 이동했다. 네이비스 지역에 고대 차모로족이 채석장이 남아 있는데 최대 35t에 달하는 현무암 덩어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택을 떠받치던 주춧돌인데 여기서 다듬은 돌을 배에 실어 다른 섬으로 옮겼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채석장 남쪽, 새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전망대 트레일을 걸으며 새들의 낙원을 엿봤다. 난생 처음 보는 새가 이방인을 경계하며 바쁘게 날아다녔다. 검은바람까마귀와 괌동박새처럼 로타가 아니면 보기 힘든 새들을 알아채진 못했다. 그러나 흰꼬리열대새가 쪽빛바다 위를 우아하고 날렵하게 나는 모습을 한참 넋놓고 바라봤다.

새 보호구역에서는 지정된 트레일을 걸으며 온갖 새를 구경할 수 있다.

새 보호구역에서는 지정된 트레일을 걸으며 온갖 새를 구경할 수 있다.

우아하게 비상하는 흰꼬리열대새.

우아하게 비상하는 흰꼬리열대새.

로타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테테토비치로 차를 몰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스노클 채비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20~30m 쯤 걸었을까. 거대한 산호밭이 나타났다. 사슴뿔산호 틈틈이 작은 돔과 물고기가 숨어 있었다. 이렇게 백사장 가까운 바닷속에 산호밭이 온전히 남은 곳은 유명한 휴양지에서도 보지 못했다.

테테토비치에서는 20~30m만 걸어가도 얕은 바다 아래에 산호밭이 펼쳐져 있다.

테테토비치에서는 20~30m만 걸어가도 얕은 바다 아래에 산호밭이 펼쳐져 있다.

일몰시간에 맞춰 인근 언덕 송송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는 송송마을과 마을 뒤편에 솟은 웨딩케이크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송송’은 차모로어로 마을을 뜻한다. 웨딩케이크산은 결혼식 때 쓰는 2단 케이크처럼 생겼다. 조금 유치하지만 간명한 이름들. 로타에서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처럼 이 섬의 인상이 그랬다. 수줍고 귀엽고 친근하고.

송송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송송마을과 웨딩케이크산.

송송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송송마을과 웨딩케이크산.

◆여행정보

티니안·로타를 가려면 우선 사이판까지 가야 한다. 5개 항공사가 취항 중인데 낮에 사이판에 도착하는 제주항공을 타면 티니안·로타로 바로 넘어가기 좋다. 스타마리아나에어(starmarianasair.com)가 사이판~티니안 하루 12편, 사이판~로타 하루 3편 운항한다. 티니안에서는 굿투어(goodtinian.com)를 통하면 섬 일주 투어, 스노클링·다이빙 등을 즐길 수 있다. 숙소는 타촉냐해변 바로 앞 오션뷰호텔(tinianhotel.modoo.at)을 추천한다. 로타에서는 로타리조트&골프클럽(rotaresortgolf.com)이 시설과 전망이 좋다. 마리아나관광청 홈페이지(mymarianas.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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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니안·로타(미국)=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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