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0원 택시’ 폭풍 질주…200만명 돌파한 오지 노인들의 발

중앙일보

입력 2018.01.10 14:30

업데이트 2018.01.10 14:32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들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들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화만 하면 택시가 집 앞까지 찾아오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요즘은 이웃들과 읍내 나가는 재미로 삽니다.”

전남, ‘산골 부름택시’ 이용 216만 돌파
시행 3년새 총인구 넘어…"폭발적 반응"
이낙연 총리, 2014년 광역단체 첫 도입
병원·시장 꺼렸던 시골 노인들 ‘발’ 역할

“포퓰리즘” 논란 속 “오지 교통” 급부상
정부, “올해 전국 군 단위 전체로 확대”

지난 6일 오전 전남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석포마을. 언덕길 아래쪽에서 택시 한 대가 올라오자 주민 최난초(75·여)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남편 이길남(76)씨와 병원을 가기 위해 부른 ‘100원 택시’가 마을회관 앞에 도착해서다. 택시에서 내린 운전기사 최연호(63)씨는 직접 차량 뒷문을 열어주며 최씨 부부를 맞았다.

최씨는 요즘 외출을 하는 것이 즐겁다. 전화만 걸면 집 앞까지 오는 택시를 타고 한 달에 2~3번씩 영암읍에 있는 병원이나 마트를 다녀온다.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에게 ‘100원 택시이용권’을 건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에게 ‘100원 택시이용권’을 건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최씨는 100원 택시가 없던 2015년 전까지는 읍내에 가려면 하루 2차례씩 오는 버스를 타러 1㎞ 이상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무릎과 허리가 아파 수술을 한 최씨로선 언덕길인 정류장까지 오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최씨는 “남편도 허리가 아파 한번 외출을 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만 했는데, 이제는 읍내 가는 게 마음 편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시골 오지(奧地) 마을을 도는 ‘100원 택시’가 농어촌 주민들에게 큰 인기다. 면 소재지나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부름 택시’가 노인들의 든든한 ‘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100원 택시는 시골 노인들에게 택시 요금을 100원만 받아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도는 10일 “2014년 전국의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도입한 전남의 100원 택시 이용자가 전국 최초로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사시사철 집 앞까지 오는 택시가 평소 병원 치료나 생필품 구매를 하기 어려웠던 교통 취약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8월 31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행정홍보대전 100원 택시 홍보부스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8월 31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행정홍보대전 100원 택시 홍보부스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100원 택시는 이낙연(65) 국무총리가 전남지사 시절 도입했다. 2014년 보성군과 화순군에서 시범으로 한 뒤 2015년부터 14개 시·군으로 본격 확대했다. 현재는 전남 22개 시·군 중 목포시를 제외한 21곳, 741개 마을에서 운행되고 있다.

100원 택시는 기초자치단체인 충남 아산시나 서천군 등에서 첫 시행 됐으나 광역자치단체가 산하 시·군 전역에 적용한 것은 전남도가 처음이다. 시행 초기 이 제도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버스정류장이나 읍·면 소재지까지 태워다 준다는 점에서 ‘효도 택시’로도 불렸다.

전남 영암군이 발급한 100원 택시 이용권. 100원 택시는 지자체별로 이용 횟수나 요금 차이는 있지만 이동거리에 따른 요금 차액을 지자체가 택시 사업자에게 보전해 주는 방식은 동일하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영암군이 발급한 100원 택시 이용권. 100원 택시는 지자체별로 이용 횟수나 요금 차이는 있지만 이동거리에 따른 요금 차액을 지자체가 택시 사업자에게 보전해 주는 방식은 동일하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전남에서 100원 택시를 이용한 승객이 총 216만7015명에 달했다. 시행 3년 만에 전남도 전체 인구(179만여 명)보다 21%(37만7000여 명)가량 많은 주민이 교통복지형 택시를 이용했다. 현재 전남에서 100원 택시를 탈 수 있는 실제 지원 대상은 2만1622명에 이른다. 전남의 전체 지원 대상자 1명당 평균 200번씩은 이 택시를 탄 셈이다.

100원 택시는 전국 지자체별로 이용 횟수나 요금 차이는 있지만 이동 거리에 따른 요금 차액을 택시사업자에게 보전해 주는 방식은 동일하다. 지자체별로 60세나 65세 이상의 고령자 가운데 소득수준 등을 검토해 가구당 인원수에 따라 이용권을 배부한다. 이용권 1장이면 3~4명이 함께 탈 수도 있어 이웃들과 함께 병원이나 시장·목욕 나들이를 하는 이용자도 많다.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들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들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 때문에 100원 택시는 도입 이후 예산 낭비나 선심성 공약이란 지적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용객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이 제도는 교통취약지역이 상대적으로 많고 고령화 비중이 높은 전남에서 선호도가 높다.

전남의 경우 총 6768개의 마을(행정里) 중 158곳은 버스나 철도·선박 등 대중교통 수단이 전혀 없다. 노선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마을도 462곳에 달하는 가운데 844곳은 하루 1~3회만 노선버스가 다닌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100원 택시가 맞춤형 교통수단으로 빠르게 자리 잡은 이유다.

전남이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유일하게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도 100원 택시 이용률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남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21.4%에 달한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의 시·군별 100원 택시 이용자는 나주시가 56만6642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암군(18만5742명), 화순군(17만3560명), 보성군(16만7155명) 등이 뒤를 이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226곳) 중 고령화 비중(38.1%)이 가장 높은 고흥군은 전체 인구가 6만6000여 명에 불과한데도 총 16만2770명이 이 택시를 탔다. 해남군(11만8651명)과 강진군(11만4971명), 영광군(10만4082명) 등도 이용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정하욱(57)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0원 택시는 농어촌 교통약자들을 위한 이동권 보장과 취약한 농어촌 택시업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크다"며 "주민들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란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지자체별 예산 상황이나 고령화 단계에 맞춰 정확한 수요 예측과 운행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전남 여수시 수정동 여수엑스포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을 마친 뒤 전남도의 100원 택시 부스를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전남 여수시 수정동 여수엑스포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을 마친 뒤 전남도의 100원 택시 부스를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부터 100원 택시는 전국 모든 농촌 지역에서도 확대·운행된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토부가 지역별 지원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각 광역자치단체로부터 100원 택시 사업계획서를 받아 이르면 3월부터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지원 대상 지역은 전국의 군 단위 82곳, 시 단위 78곳 등 총 160곳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14년 이후 매년 전국 10~20개 지자체에만 예산 지원을 하던 것을 올해는 국내 군 지역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라며 "택시 외에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미니버스나 승합차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 농촌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돕겠다"고 말했다.

영암=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부른 뒤 ‘100원 택시 이용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 주민이 5일장이 선 영암읍내로 가기 위해 100원 택시를 부른 뒤 ‘100원 택시 이용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에게 ‘100원 택시이용권’을 건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일 전남 영암군 학산면 석포마을에 사는 이길남(76)씨 부부가 100원 택시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뒤 택시기사에게 ‘100원 택시이용권’을 건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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