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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연구용역 사업까지 ‘적폐 청산’ 대상에 포함시킨 고용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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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원석 경제부 기자

장원석 경제부 기자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가 7일 15개 조사과제를 선정했다. 개혁위는 불합리한 행정 개선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출범한 고용부 장관 자문기구다. 더 나은 행정을 하겠다는 취지는 나쁠 게 없다.

작년 출범 개혁위 15개 과제 선정 #전교조 문제, 한국노총 지원 등 #노동계 요구 옮긴 듯한 내용 많아 #“학계까지 줄 세우나” 지적 쏟아져

그런데 시작부터 걱정스럽다. 인적 구성부터 그렇다. 10명의 위원은 고용부 관계자 2명을 제외하곤 친(親)노동계 교수, 변호사, 노무사 등으로 꾸려졌다.

이전까지 고용부 산하 위원회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추천을 받아 구성했다. 이번엔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인사가 안 보인다. 출범 당시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아무리 장관이 꾸리는 자문기구라지만 한쪽으로 치우쳤다”며 “위원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답이 나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적시한 15개 과제를 뜯어봐도 그렇다. 개혁위는 ‘각종 연구용역 사업의 절차적 문제점과 예산 낭비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전 이를 뒷받침할 논거를 마련하려 외부에 용역을 주는 경우가 많다. 관련 분야 학자가 수주해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다. 개혁위의 조사는 ‘누구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나’ ‘연구 내용은 어떤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경영계 인사는 “정부 입맛에 맞는 전문가로 용역 루트를 바꾸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개혁위는 학자로 구성되는 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 선정 방식도 조사대상에 올렸다. ‘학계까지 줄을 세우고, 길들이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노동계의 요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과제도 수두룩하다. 고용부는 2013년 ‘현직 교원만을 조합원으로 인정한다’는 교원노조법을 근거로 해직자가 조합원에 포함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비슷한 이유로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혁위는 이 처분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겠다고 했다.

법외노조 처분은 국제노동기구(ILO) 비준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ILO의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담은 4개를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비준이 이뤄지더라도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적용하기 힘들다. 무슨 근거로 문제를 살피겠다는 건지 명분이 궁금하다.

개혁위는 노동단체 지원사업도 점검할 계획이다. 지원금이 끊긴 한국노총을 염두에 둔 거로 보인다.

매년 정부로부터 30억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아온 한국노총은 2016년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함께 노사정위원회에서 발을 뺀 뒤 지원금을 못 받았다. 지원금 중에는 한국노총 건물의 리모델링 비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선진국 노동단체는 정부나 경영계의 지원을 극도로 경계한다. 노조의 자주성을 해치는 부당노동행위로 본다. 이런 부당노동행위가 한국에서만 예외인 셈인데, 그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했는지 보겠다는 거로 비쳐 어이가 없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 방향도 바뀔 수 있다. 더 잘 해보려 예전 잘못을 들여다보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목표가 편 가르기라면 곤란하다. 한쪽에 치우친 청산은 또 다른 적폐를 쌓을 뿐이다.

장원석 경제부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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