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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수준 높은 감성 널리 알리고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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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6면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 캔버스에 유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 캔버스에 유화

‘성 히에로니무스’(1605~1606), 캔버스에 유화

‘성 히에로니무스’(1605~1606), 캔버스에 유화

조만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들를 계획이라면 이 전시를 놓치지 말자. J. 폴 게티 뮤지엄이 2월 18일까지 선보이는 ‘카라바조: 보르게세 미술관 걸작선’이다. 전시는 뮤지엄 측이 카라바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그의 대표작 3점을 대여하면서 성사됐다.

펜디가 ‘카라바조 전’ 후원하는 까닭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가 누구인가. ‘이탈리아의 천재 종교 화가’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고아 출신으로 13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난폭한 성질로 종종 사회적 문란을 일으켰지만, 부유층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매번 위기를 모면했다. 눈에 띄게 과장된 구도를 활용하는 동시에 그림 속 주인공들의 평범한 인간성을 강조하는 화법은 그만의 특징이다. 참수 장면을 그리면서 당대에선 작품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게티 뮤지엄의 회화 부문 선임 큐레이터 다비드 가스파로토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삶에 대한 진실과 드라마의 탁월한 조합, 특유의 명암 배분으로 새로운 회화 양식을 탄생시켰을뿐 아니라 그의 심리적 자연주의는 여러 세대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전시 작품 수는 적지만 서른아홉 길지 않은 인생의 작품 세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1593~1594)은 그가 사실주의적 장면과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로 처음 주목받던 시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꼽힌다. 또 ‘성 히에로니무스’(1605)는 환한 불빛 아래 성서를 읽는 학자로서의 성 히에로니무스를 묘사한 인물화로, 카라바조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의 경우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이목구비를 그려 넣은 그림으로 유명한데, 이는 1606년 사소한 싸움 끝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속죄로 해석되곤 한다.

카라바조 연구소의 첫 행보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뮤지엄의 ‘카라바조: 보르게세 미술관 걸작선’ 전시장 내부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뮤지엄의 ‘카라바조: 보르게세 미술관 걸작선’ 전시장 내부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획전이 아니다. 전시작 외 ‘젊고 병든 바쿠스’ ‘세례자 요한’ ‘성 안나와 성모자’ 등 6점을 수 세기에 걸쳐 소장해 오고 있는 보르게세 미술관의 야심찬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카리바조 연구소’라는 관내 기관을 만들었고, 전시는 이를 위한 첫 단추인 셈이다. 본격적인 작업 전 일단 연구소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행사라는 이야기다.

카라바조 연구소를 좀 더 설명하자면, 이름 그대로 한 예술가에 대한 국제적 연구 플랫폼이다. 안나 콜리바 보르게세 미술관장은 “카라바조의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인문학적·과학적으로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립 목적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연구소 측은 향후 카라바조의 회화를 보유한 전 세계의 모든 박물관·화랑·재단·교회, 개인수집가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료 수집에 나설 예정이다. 또 미술사가부터 복원 전문가, 진단학자, 역사가 등을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참여시킬 예정이다. 이렇게 완성된 데이터베이스는 일반-전문가-연구소 관계자 등 3등급으로 나눠 공개되고,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펜디, 트레비 분수 복원 사업도 도와

보르게세 미술관장 안나 콜리바, 펜디의 액세서리·남성복·아동복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펜디의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왼쪽부터)가 카라바조 작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보르게세 미술관장 안나 콜리바, 펜디의 액세서리·남성복·아동복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펜디의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왼쪽부터)가 카라바조 작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카라바조 연구소가 문 열기까지, 그리고 이번 전시가 성사된 뒤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이탈리아 패션하우스 펜디다. 브랜드 측은 2017년부터 3년간 미술관과 연구소 측과 후원 협약을 맺었다. 매 시즌 컬렉션에 미학적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로마의 수준 높은 문화 감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펜디의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는 전시를 앞두고 “이탈리아의 미술과 아름다움, 그 탁월함과 재능을 발전시키고 후원하는 일에 근본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실 펜디의 문화유산 후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1925년에 로마에서 탄생한 패션하우스답게 로마와의 인연이 깊다. 관광 명소인 트레비 분수 복원 사업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3년 트레비 외 4개의 분수 복원 프로젝트 ‘분수들을 위한 펜디(Fendi for Fountains)’를 발표했고, 2년 만에 도시의 유산을 과거로 되돌려 놨다. 이듬해 분수를 배경으로 벌인 오뜨 쿠튀르 컬렉션은 패션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도시 문화 융성 후원의 일환으로 작가를 후원하고 작품을 로마시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라르고 골도니 거리의 펜디 플래그십 건물 앞에 이탈리아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의 작품을 설치했다, 언뜻 보면 나뭇가지 사이에 큰 돌덩어리를 얹고 있는듯한 가로수 형상의 ‘돌의 잎사귀’다. 이와함께 페노네가 1970년대부터 선보인 15점 등을 펜디 본사에서 전시하면서 로마의 문화 DNA를 지켜가고 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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