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로 글로벌 금융자산 1000조 달러 돌파 … 세계 총생산의 12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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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18면

[그래픽 뉴스] 글로벌 돈의 바다

‘증권분석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세계 금융시장 규모를 10억(billion) 달러 단위에서 추정해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 등 서방 경제가 급팽창(빅뱅)하던 1960년대 이야기다. 그레이엄의 말은 그 시절 주식과 채권 시장 등의 규모가 너무 빠르게 불어나 사달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음을 경계한 것이다. 이후 40여년이 흘렀다. 그레이엄이 요즘 되살아난다면 기절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금융의 바다는 그레이엄 시절 빌리언 단위로 재는 게 어림도 없다.

중앙은행이 푼 종잣돈 12조 달러 #채권시장 강세 보여 215조 달러 #부동산 217조, 주식은 81조 달러 #파생상품도 544조 달러로 팽창 #연준, 월 100억 달러씩 회수 나서 #전문가들은 ‘금융안정’ 국면 기대 #실물 부문 불안 땐 큰 파도 일 수도

실제 국제결제은행(BIS)과 블룸버그 데이터서비스 등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000조 달러(약 107경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엔 금과 은, 외환거래, 주식·채권 시가총액, 파생상품 거래 규모, 부동산 가치 등만이 포함된다. 예술품 등 측정하기 어려운 시장과 본원통화, 좁은 의미의 통화, 넓은 의미의 통화, 부호들의 재산, 중앙은행 자산 등은 제외됐다. 중복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계 자산시장 규모는 일상의 화폐 단위론 가늠조차 사실상 불가능한 규모다. 단지 세계 총생산(국가별 GDP 합계)을 기준으로 그 크기를 추정해볼 순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올해 세계 총생산은 77조9900억 달러 정도다. 돈의 바다는 세계 총생산보다 12.8배 이상이다. 한국 GDP의 657배에 달한다.

세계 금융자산, 한국GDP의 657배

애덤 스미스 등 고전 경제학자들은 실물을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 여겼다. 이들 말대로라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10분의 1도 안 되는 가치의 원천을 딛고 서 있는 셈이다. 엄청난 금융 팽창이다. 고전파의 눈에 곧 파열음을 낼 것으로 보일 수 있을 정도다. 팽창은 19세기 산업화 이후 이어온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팽창은 유사 이래 최대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얘기다. 그 이면에 양적완화(QE)가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등이 2008년 이후 12조3000억 달러 이상을 찍어냈다.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일본은행(BOJ) 등은 채권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국채 등을 사들였다. 미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국채의 30% 이상이 중앙은행 금고로 빨려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 바람에 글로벌 채권시장은 강세를 보였다. 규모가 200조 달러를 넘어섰다.

채권은 모든 금융자산의 주춧돌이다. 이를 기준으로 주식 가치가 계산되고 파생상품 거래가 시작된다. 채권 강세의 또 다른 의미는 저금리다. 값싼 돈(저금리 자금)은 생산과 소비를 자극하기는 했지만, 부동산(217조 달러)과 주식 시장(81조 달러)에 더 큰 보탬이 됐다. 또 파생상품 시장(544조 달러)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파생상품 시장은 금융 부문 가운데 실물경제에서 가장 먼 곳이다. 생산과 소비, 또는 중앙은행의 날개짓이 폭풍으로 증폭되기 십상인 세계다. 실제 2006년 미국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증가했다. 이 작은 움직임이 파생상품 시장에서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등을 파산시켰다.

돈의 흐름 바뀔 때마다 금융위기

지난해 10월 Fed가 양적 축소(QT)에 나섰다. 월 100억 달러 수준이다. 올 1년 동안에도 비슷한 규모의 양적축소가 매월 이어질 전망이다. 또 지난해 12월엔 기준금리를 최고 1.5%까지 올렸다. 뉴욕연방준비은행 등의 창구를 통해 국채 등을 파는 방식으로 달러를 사들여 미 시중은행의 급전 금리가 연 1.5%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선언이다. 본격적인 달러 흡수다. 세계가 긴장했다. 돈의 바다 해류가 바뀔 수 있어서다. 물 흐름이 바뀔 때마다 세계는 금융위기란 홍역을 앓았다. 하지만 아직 해류의 용트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투자전략가들은 “2018년에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시장이 불안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른바 ‘금융 안정(financial moderation) 국면’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금융시장 안정은 어디까지나 세계의 생산과 소비가 지금까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고전파들이 말한 모든 가치의 원천인 실물 부문에서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면 돈의 바다는 울부짖을 수 있다. 그레이엄이 경계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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