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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정치에 영향 주면 위법 vs 통상적 심리전 지시했을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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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10면

김관진에게 적용한 정치관여죄, 그 모호함의 역사

지난해 11월 22일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구치소 정문을 벗어나고 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22일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구치소 정문을 벗어나고 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제>
군형법 94조(정치관여)는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연설 또는 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정치적 의견을 공표하거나 기타 정치운동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 군 사이버사령부가 달았던 인터넷 댓글 중 위법한 ‘정치적 의견 공표’에 해당하는 것은?

일제 법 토대로 62년 군형법 제정 #정치관여죄는 일제 때보다 추상적 #2014년 개정, 김관진엔 구법 적용 #60~90년대 양심선언 차단용 변질

<보기>
① “고대녀 김지윤씨에게 고함. 해군이 해적이면 육군은 산적이고 공군은 비적이란 말인가?”(2012년 3월11일, 제주 해군기지 관련)
② “대통령 독도 방문을 왜 반대해. 일본넘들인가?”(2012년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관련)
③ “이번에 국방장관 내정자가 김병관 대장이라던데 1군 사령관 때 평판이 좋으시던데 잘 하시길”(2013년 2월13일, 김병관 장관 임명 관련)
④ “북한이 지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수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다가는 국물도 없다.”(2013년 4월 11일, 개성공단 관련)

법원은 아직 답을 확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①~④’모두가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8일 법원에 김관진(69)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하면서 사이버사가 2011년 11월 18일~2013년 6월 8일 SNS와 포털 사이트 등에 단 댓글 8862개를 범죄사실로 나열했다. 그 전부가 김 전 장관이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 이태하 전 사이버사 심리전단장 등과 공모해 저지른 정치관여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직접 거론되지 않았어도 간접적으로 어떤 세력의 정치적 유·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불법 정치관여라는 게 검찰의 해석이다.

김 전 장관 측 “군형법 94조는 위헌”

지난해 11월 11일 발부했던 구속영장을 같은 달 22일 거둬들이면서 구속적부심 재판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를 따지기에 앞서 유죄 심증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공모 관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을 수도 있고 각 댓글들이 정치관여에 해당하는지 다시 봐야 한다는 취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속적부심에서는 무엇을 두고 다퉜을까.

김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김 전 장관은 정상적인 심리전을 지시했을 뿐 구체적인 댓글 내용을 알고 지시한 게 아니다”는 반론 외에 군형법 94조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표현의 자유 또는 허용된 심리전의 영역은 어디까지고 어디부터 금지된 ‘정치적 의견 공표’인가 ▶‘정치적 의견 공표’라는 표현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될 만큼 명확한가

‘정치관여죄’의 명확성을 둘러싼 논란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1936년 5월24일자 동아일보에는 일본에서 군인의 정치관여 허용범위의 명확성이 논란이 되자 데라우치 히사이치(寺内寿一, 1879~1946년) 육군 대신이 중의원에 나와 한 말이 실려있다. “군정(軍政)을 관장하는 군인이 정치에 관해 건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군정과 관계없는 현역 군인이 정치에 관해 논의하거나 건의하는 것은 불허한다”는 내용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급격히 군국주의로 기울면서 군이 정치 일반에 개입하려 들자 의회세력과 마찰이 커져 생긴 일이다.

당시 일본 육군 형법 103조는 정치관여죄를 “정치에 관한 상서·건백(윗 사람에게 건의하는 일) 기타 청원을 위해 연설하거나 문서로 의견을 공표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1962년 박정희 정부가 군형법을 만들면서 이 내용 약간 바꿔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규정은 더 추상적이 됐다. 댓글은커녕 컴퓨터도 없던 시절 만든 이 조문은 2014년까지 유지됐다.

정치관여죄는 군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지만 댓글 수사 이전까지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하급 장교들을 처벌하는 데 간간이 활용됐다. 1963년 군은 군정 연장 데모에 참가했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고모 소령 등 49명을 정치관여죄로 기소했다가 취소했다. 1989년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 군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명예선언문을 발표했던 이동균 대위 등 5명의 장교에게 이 죄를 적용한 사실을 군이 숨기려다 실패해 야권의 집중 질타를 받기도 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와 관련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던 손대희 중령은 이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때마다 규정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댓글 수사로 20년 만에 논란 재점화

“군형법 94조는 2013년 댓글 수사 이전까지 처벌례가 거의 없어 분명한 해석론이 정립될 수 없었다.”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김흥석 변호사(52)는 정치관여죄의 명확성이 논란이 되는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해 10월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군 검찰이 정치관여죄를 적용한 군인 24명(기소 5명, 기소유예 19명)은 모두 사이버사 댓글 사건 관련자였다.

댓글 수사가 손 중령 사건 이후 약 20년 만에 군형법의 정치관여죄를 살아 움직이게 한 것이다. 2013년 10월 안규백 민주당 의원 등이 사이버사 댓글 활동 의혹을 제기하자 군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결과였다. 군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댓글 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게 국정원법상 정치관여죄(18조)를 적용한 것을 토대로 이 전 심리전단장 등에게 군형법의 정치관여죄를 적용했다.

이 전 단장은 항소심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이상주)는 이를 기각하고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정치적 의견 공표’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 또는 그들의 정책이나 활동 등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견 등의 공표하는 것과 같이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의견을 공표하는 행위로 한정해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위헌이 아니라고 본 이유다. 이 전 단장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이 죄의 운명은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갈리게 됐다.

김 변호사는 “규정이 포괄적이어서 남용 우려가 있지만 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체화한 것이어서 위헌이라 보긴 어려울 것이다. 법을 적용하는 재판부가 어떤 표현이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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