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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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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사회심리학에는 집단사고(Group Thinking, 集團思考)라는 말이 있다. 내부의 응집력이 높은 구성원들이 모인 집단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대한 이의제기보다는 동조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집단사고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단사고의 대상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결정이 잘못됐을 경우 집단사고는 매우 큰 사고(事故)나 정책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당연히 희생자나 예산의 낭비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이 1986년 미국 유인 우주왕복선 챌린지호가 이륙 후 1분이 조금 지나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 사건을 기억한다. 전문가 집단인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참사로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예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년간 보육환경 개선하면 #저출산 해결된다는 집단사고 실패 #이번에도 인구 전문가는 없이 #여성·생활 중심 집단사고 빠지면 #자칫 골든 타임은 허비되고 말 것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출산율이 가장 낮은 대표적인 국가가 돼 버렸다. 아직 공식 집계가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은 1.05 혹은 1.06이 될 터인데, 이는 그동안 많은 인구학자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왔던 수준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는 약 126조원에 달하는 저출산 대응 예산을 집행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상황이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응 정책은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시작됐는데, 예산의 거의 70%가 보육환경 개선에 투입됐다. 저출산 현상의 원인이 젊은이들의 고용과 주택 불안정으로 인한 혼인의 어려움 등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열악한 보육환경을 개선하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저출산 대응 정책이 태동될 때 보편적 복지담론이 정치권과 정부에서 소위 대세였고, 보육은 복지의 영역이었다. 이후에도 복지는 거의 성역과도 같았다.

보육 중심의 저출산 대응 전략을 마련한 것은 2006년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였다. 이 위원회 위원들과 실제 정책을 개발하는 실무위원들도 보육환경이 개선되면 저출산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위원 개인적으로는 다른 의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가 대세인 분위기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집단의 조화를 깨는 일이었다.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저출산 대응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러한 분위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변화가 없었다. 집단사고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돼 온 보육 중심의 저출산 대응전략은 성공의 여지조차 보이지 못하고 실패했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지난달 말, 문재인 정부에서 새롭게 조직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청와대에서 있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과 참여하는 장관들의 수가 준 만큼 민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더 많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위원회가 이제 막 만들어져서인지 이번 회의에서 특별한 내용이 회의 안건으로 다뤄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세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하나는 조직 차원의 특징인데, 위원회에 인구 관련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의 특징으로 이전에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는데 지금은 일과 생활의 균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만족스러운 삶이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등장했다. 인구학자가 위원회에 한 명도 없어도 그만이라고 치자. 여성들의 삶의 질 그리고 가정을 대신한 생활의 등장 모두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도 집단사고가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여 걱정이다. 인구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여성과 생활이 저출산 현상보다 더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여지가 매우 크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옳은 의제들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저출산 정책 기조로 선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이전 위원회에서 보육이 저출산 해결을 위한 모든 것이라고 결정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원들끼리는 이럴 수도 있겠다. “저출산이 왜 문제죠? 어차피 저출산은 해결이 어렵죠. 그러니 여성과 생활을 강조하는 게 나아요”.

위원장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위원회에 집단사고가 등장해 버리면 이 골든 타임은 그냥 허비되고 말 것이다. 국민들은 저출산에 냉소적이어도 된다. 하지만 국가는 집단사고를 통해 저출산에 냉소적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새로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대한 필자의 걱정이 지나친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