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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부럽기만한 ‘아이씨! 베를린’의 브랜드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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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영근 아이닥안경 대표

김영근 아이닥안경 대표

부모가 아이를 잉태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름짓기’이다. 신중을 거듭해 탄생한 이름에는 아이의 미래를 향한 부모의 축복이 깃든다. 훗날 누군가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고, 누군가의 이름은 존재감 없이 잊히기도 한다. 아이가 부모의 무릎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그 아이만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상품 브랜드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70년에 태어난 한 독일 청년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아이웨어(안경) 디자이너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안경에 베를린 장벽이 주는 교훈을 담겠다고 다짐했다. 96년 27세가 된 청년은 드디어 국제 아이웨어 전시회에서 자신이 꿈꾸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청년은 자신이 입던 셔츠를 디스플레이 도구로 이용했다. 디스플레이 제작비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는 빈약한 자본력을 창의성과 열정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에 유통되는 명품 아이웨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랄프 안데르(Ralph Anderl)와 그가 만든 브랜드, 아이씨!베를린(ic! berlin)의 이야기다.

아이씨!베를린은 ‘나는 본다! 베를린을’이라는 뜻으로 자유와 평화, 평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광고 모델 모두가 직원이거나 사원의 친구다. 제품 모델명에도 이들 친구나 직원의 이름을 각인한다. 이는 유명인이 아닌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아이웨어를 생산하겠다는 랠프 안데르의 철학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의 최고 마케팅 포인트는 창의성과 품질이다. 아이씨!베를린의 모든 생산 라인을 독일에 둔 이유다. 200여 가지 아이웨어 제조 공정 중 아웃소싱하는 공정이 전혀 없다. 원료와 소재는 독일산과 이탈리아산이며, 혼(horn) 프레임은 품질과 생명 윤리가 보장되는 인도산만을 사용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브래드 피트와 같은 유명인을 광고 모델이 아닌 자발적 고객으로 유치했다.

한국 안경 업계는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급성장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 생산라인 대부분을 넘겨주기 전까지는 무역 흑자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바이어들이 중국행을 택하며 지금까지 악화 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에 의존하는 근시안적 수익 창출 전략으로, 내세울 만한 국산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업계는 열악한 환경과 자본력을 이유로 들겠지만 랠프 안드레가 가졌던 철학과 의지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현실에 안주하고 변명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비자는 없다. 우리에게도 베를린의 폐허 앞에서 평화와 자유를 목도한 랠프 안데르의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한 명품 브랜드 이야기가 우리 곁에서도 시작돼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영근 아이닥안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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