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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최저임금의 역습 … 일자리 축소와 물가상승 태풍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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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경제는 살아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무인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무인결제시스템(키오스크) 이 설치되면서 고객들은 더 빠르게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다. 김동호 기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무인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무인결제시스템(키오스크) 이 설치되면서 고객들은 더 빠르게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다. 김동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점포 무인화 바람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인화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지하철 개찰은 무인화된 지 오래고,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도 무인화의 전형적 사례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무인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고용주들에게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주는’ 상황이다. 전년 대비 16.4% 오른 최저임금(7530원)이 그간 주저해오던 무인결제시스템(키오스크) 도입을 자극하면서다. 최저임금 역풍이 몰아치는 현장을 돌아봤다.

무인화ㆍ자동화 흐름 급가속 #카페ㆍ편의점ㆍ독서실로 확산 #아파트경비 휴식 늘거나 감원 #가격인상 도미노 우려 현실화 #시장 무시하고 계속 강행되면 #취약계층 취업난 가중될 듯

새해 첫날 1년에 한두 번 찾는 버거킹을 찾았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라더니 키오스크 도입 전에는 입구까지 늘어섰던 장사진이 오간 데 없고 점포 내부는 한산해보이기까지 했다. 키오스크 석 대가 빠른 속도로 고객 주문과 결제를 처리하고 있어서였다. 고객들은 “키오스크를 이용하니 속도가 빠르고 대기 줄이 길지 않아 편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기본 세트를 직접 주문해봤는데 실제로 간편하고 속도가 빨랐다.

주로 단시간 근로자(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많은 패스트푸드 업계의 움직임은 발빠르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푸드테크(음식+기술)는 인건비도 절감하고 고객 편의성도 높일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버거킹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전국 매장 세 곳 중 한 곳에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맥도날드는 ‘미래형 매장 확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도권에서 무인시스템을 늘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전국 매장 190여곳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롯데리아도 빠르게 무인주문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업체들은 대기시간을 줄여 고객 편의를 높일 수 있어 도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아예 상주 직원을 없애는 바람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청 앞에 문을 연 24시간 무인 독서실은 100명이 이용하는 공간인데도 상주 직원이 없다. 이용자가 키오스크를 통해 이용시간과 좌석을 지정한 뒤 입실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시장성이 부각되자 퇴직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한 명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창업의 핵심 포인트로 부각되면서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도 갈수록 무인화 바람을 타고 있다. 그제 생수 구입을 위해 서울 논현동의 한 편의점에 들어섰는데 쥐 죽은 듯 조용해 어리둥절했다. 최소한의 인력만 배치하는 대신 전자결제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점원이 자리를 잠시 비울 때는 고객이 직접 신용카드나 모바일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해도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되면 전국 3만여 편의점의 무인결제시스템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논현동의 한 셀프 주유소는 1일부터 세차비를 20% 인상했다. 5만원 이상 주유하면 5000원이던 세차비가 단박에 6000원으로 올랐다. 50대 남성은 “6000원이 되니 이제는 만원권 지폐를 깨게 됐다”며 부담스러워했다. 주유소 관계자는 “고객 부담을 모르지 않지만, 최저임금이 올라 법을 지키려면 세차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셀프 주유소. 고객들이 주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김동호 기자

서울 강남의 한 셀프 주유소. 고객들이 주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김동호 기자

결국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전문가들 우려대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질 공산이 더 커졌다. 무엇보다 무인화 바람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취약계층의 고용 안정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직원 한 둘을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등 시간제로 고용하고 있는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일단 추가 고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기존 직원도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0인 미만 사업장 186곳을 조사한 결과 “감원 및 신규채용 축소 등 고용축소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42.7%에 달했다. 고용축소가 어려운 경우 제품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응답이 21.4%에 달했고, 무인화ㆍ자동화를 확대하겠다는 업체도 19.5%를 기록했다. 생산공장의 해외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곳도 6.8%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근로자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임금인상에 대처하겠다”는 업체는 7.1%에 그쳤다. 결국 중소기업 열 곳 중 아홉 곳은 최저임금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인력 감축, 제품가격 인상, 무인화ㆍ자동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을 받는 아파트 경비원도 갈수록 무인출입시스템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최저임금을 이유로 1일부터 세차비를 단번에 최대 20% 인상한 서울 강남의 한 주유소. 김동호 기자

최저임금을 이유로 1일부터 세차비를 단번에 최대 20% 인상한 서울 강남의 한 주유소. 김동호 기자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최저임금 역시 수요ㆍ공급 원리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면 물건을 살 수 없듯이 임금 감당이 어려운 고용주는 대체재(무인화)를 찾거나 구매(고용)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매출을 늘려 수입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지금 같은 저성장 구조에서는 현상 유지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인원 감축이 어려운 곳은 휴식시간을 늘리거나 상여금ㆍ수당을 줄이고 기본급을 늘려 전체 임금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후폭풍이 심각하지만 당분간 최저임금의 역습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뒤늦게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제도개선TF’의 개선안을 제출받기로 했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TF를 통해 ^주요 선진국처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을 포함시키기로 했지만 ^업종ㆍ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데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더구나 상여금 포함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만 15조2000억원 더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국민 혈세 3조원을 동원해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최저임금을 보조해주기로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J노믹스는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2020년까지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더불어 J노믹스의 간판 정책이 됐고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흐름에서는 오히려 실업대란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더구나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외식업체를 필두로 연초부터 제품값 줄인상에 나섰다.

이제라도 J노믹스 운영자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보완책을 건의할 것을 권한다. 해법은 두 가지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고, 산입 범위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그것이 실질 실업률 22%에 달하는 청년실업을 악화시키지 않고 소상공인들의 시름도 놓게 하는 돌파구다. 우물쭈물하다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