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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왜·어떻게 죽었나" 6하원칙 실종된 '5세 준희 사망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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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희(5)양 시신 유기를 공모한 혐의를 받는 친부 내연녀 이모(36)씨가 지난달 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와 법원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고준희(5)양 시신 유기를 공모한 혐의를 받는 친부 내연녀 이모(36)씨가 지난달 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와 법원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고준희(5)양은 지난해 12월 29일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기된 지 8개월 만이다. 준희양의 시신을 산속에 암매장한 범인은 "(지난해) 11월 18일 집에서 아이가 사라졌다"고 경찰을 속여 온 친부 고모(37)씨와 내연녀 이모(36)씨, 이씨의 어머니 김모(62)씨 등 3명이다. 내연녀 이씨는 사체 유기 현장에는 없었지만 준희양이 숨진 사실을 알고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가족 범죄'였던 셈이다.

경찰, 사체유기 혐의 친부·내연녀 母女 구속 #해 바뀌어도 아이 사망 원인·경위 수수께끼 #법조계 "사인 입증할 객관적 증거 없으면 #무기징역 가능한 상해·학대치사죄 어려워" #'대상포진' 준희 치료 안한 건 유기치사죄 #내일 현장검증…조만간 검찰에 사건 송치 #전주지검 "언제 왜 숨졌는지 찾는 게 관건"

경찰은 지난해 말 사체유기 혐의로 고씨 등 3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준희양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고씨 등 3명이 "준희가 죽어서 산에 묻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준희양이 죽게 된 경위에 대해선 서로 진술이 엇갈리거나 아예 '모르쇠'로 일관해서다. 상황을 납득하는 데 꼭 필요한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 빠져 있는 셈이다.

숨진 고준희(5)양을 유기했다고 자백한 친아버지 고모(37)씨가 지난달 30일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전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숨진 고준희(5)양을 유기했다고 자백한 친아버지 고모(37)씨가 지난달 30일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전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현재까지 확인한 사실은 친부 고씨와 내연녀 어머니 김씨가 지난해 4월 27일 오전 2시쯤 전주에서 준희양의 시신을 김씨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고씨의 할아버지 묘가 있는 군산 내초동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암매장했다는 사실이 유일하다. 고씨는 "(사체 유기 전날인) 지난해 4월 26일 아침 (전북 완주군 봉동읍) 집에서 딸(준희)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옮기려고 차에 태웠더니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경찰이 고씨 등이 버리거나 숨겨둔 옛 휴대전화의 '수상한 동선' 등을 추적해 증거로 들이민 뒤에야 자백했다.

이 때문에 고씨 등 3명에 대해 3일 현재까지 확정된 혐의는 '사체유기'밖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진술만으로는 상해치사죄나 학대치사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고씨가 "준희가 무릎 꿇고 앉아 있을 때 발목 부위를 심하게 몇 차례 밟거나 때린 적이 있고, (내연녀) 이씨도 준희를 때렸다"고 털어놨지만, 이것을 곧바로 준희양의 사망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인과 관계나 객관적 증거로 볼 수는 없어서다.

고준희(5)양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김모(62)씨가 지난달 3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고준희(5)양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김모(62)씨가 지난달 3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전주 덕진경찰서를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형법상 자기나 배우자의 부모와 자녀 등 직계 존속에 대한 상해치사죄나 학대치사죄는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씨는 뒤늦게 "준희가 숨진 사실을 사체 유기 전에 알았고, 사체 유기에도 가담했다"고 시인하면서도 준희양에 대한 폭행 사실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준희양의 몸 뒤쪽 갈비뼈 3대가 부러져 있었지만, 정확한 사인은 판단할 수 없다"는 1차 소견서가 나왔다. 준희양이 숨진 지 이미 8개월이 지나 부패가 심하고 생체 조직이 없어 타박상 흔적 등 학대 정황이나 사망 시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사진 전북경찰청]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사진 전북경찰청]

전주지법의 A부장판사는 "처음부터 죽일 생각을 갖고 아이(준희)를 때려서 죽였으면 살인죄지만, 화가 나서 때렸는데 갑자기 아이가 죽어버리면 자기가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에 상해치사죄로 본다"고 설명했다. A부장판사는 "그러나 (언론 보도에 나오는 경찰 수사 상황만 보면) 당사자들은 '폭행이 준희양의 죽음과는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상해가 있었다는 진단서도 없어 상해치사죄나 학대치사죄 적용은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고씨는 아버지로서 준희양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유기치사죄는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고씨와 내연녀 이씨는 지난해 4월 10일 무렵 준희양이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대상포진 증상을 보이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아이가 대상포진에 걸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달 29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준희양의 시신을 지난 4월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준희양의 친부 고모(37)씨와 고씨의 내연녀 이모(36)씨의 어머니 김모(62)씨 등 2명을 긴급 체포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전북경찰청]

'고준희(5)양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달 29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준희양의 시신을 지난 4월 전북 군산의 한 야산에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준희양의 친부 고모(37)씨와 고씨의 내연녀 이모(36)씨의 어머니 김모(62)씨 등 2명을 긴급 체포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전북경찰청]

게다가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까지 앓던 준희양은 친모가 고씨에게 양육을 맡긴 지난해 1월 말 이후 병원에서 갑상선 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준희양은 앞서 고씨에게 발목을 수차례 밟혀 피고름이 나고 종아리가 심하게 부었을 때다. 고씨는 경찰에서 "아동학대범으로 몰릴 것 같아 아픈 딸(준희)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에 따르면 직계 존속에 대한 유기치사죄의 형량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해치사죄나 학대치사죄와 비슷하다.

검찰도 이번 사건을 자기 몸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의사 표현도 서툰 아동에 대한 유기치사나 학대치사 사건으로 보고 경찰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친부 고씨와 같이 산 내연녀 이씨도 사실상의 어머니로서 아이(준희양)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며 "이들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상태에서 아이가 언제, 왜 숨졌는지 찾는 게 이번 수사의 최고 관건"이라고 말했다.

친아버지에 의해 암매장된 고준희(5)양의 장례식이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가운데 빈소가 차려져 있다. 가족들은 고준희 양의 시신을 화장했다. [연합뉴스]

친아버지에 의해 암매장된 고준희(5)양의 장례식이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가운데 빈소가 차려져 있다. 가족들은 고준희 양의 시신을 화장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는 4일 오전 10시 준희양이 살았던 완주군 봉동읍 고씨의 아파트와 시신이 암매장된 군산 야산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수사를 마무리하고 고씨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고씨 등에게 사체유기 외에 아동학대치사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할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마지막까지 준희양의 사망 원인과 경위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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