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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없는 당신, 잘못 살고 있는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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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프리 다이빙'을 취미로 즐기는 노진호씨. 두 달에 한 번 해외에 나갈만큼 취미에 푹 빠져 있다. [사진 노진호]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프리 다이빙'을 취미로 즐기는 노진호씨. 두 달에 한 번 해외에 나갈만큼 취미에 푹 빠져 있다. [사진 노진호]

'취미가 뭐예요?' 요즘에는 이 질문에 다들 할 말 많다. 으례 독서나 영화감상이라 둘러댔던 이전 세대와 다르다. 삶의 만족을 위해 취미를 내세운 작은 사치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당장 클릭 몇 번이면 경험할 수 있는 취미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여행·외식처럼 취미가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떠올랐다. 제대로 된 취미 하나쯤은 필수로 갖춰야 할 시대다. 새해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면 '취미'라는 두 글자를 1순위로 적어 보자. 이도은·윤경희 기자 dangdol@joongang.co.kr

취미는 선택 아닌 필수

# 대기업에서 영업 지원 업무를 하는 노경민(28)씨는 마술이 취미다. 어릴 적 배운 마술이 대학 동아리로 이어졌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놓지 않았다. 2017년 2월부터는 전문 마술사 도기문씨와 함께 '마제스틱'이란 팀을 꾸려 마술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마술 프로듀싱과 촬영이 그의 역할. 노씨는 "개인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만족감도 크지만 회사 내 분위기 메이커가 되면서 사회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슬기로운 취미생활'이 요즘 대세 #취미 도구 구독 서비스에 독서 모임까지 #욜로·워라밸 등 개인삶 중시하는 시대 반영

노경민씨는 12세부터 배운 마술을 직장인이 돼서도 놓지 않는다. 전문 마술가와 팀을 꾸려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사진 노경민]

노경민씨는 12세부터 배운 마술을 직장인이 돼서도 놓지 않는다. 전문 마술가와 팀을 꾸려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사진 노경민]

# 노진호(28·개인사업)씨의 취미는 프리 다이빙(별도의 호흡 장치 없이 하는 잠수)이다. 1년 반 전에 우연히 접한 뒤 이제는 강사 자격증 코스를 준비할 정도로 빠져 들었다. 국내에서는 여름밖에 할 수 없는지라 두 달에 한 번씩 해외에 나간다. 수입 20%를 취미에 쓰는 이유다. "어차피 다른 취미를 즐기더라도 돈을 쓰기 마련인데 목표가 있으니 아깝지 않다"는 게 노씨의 생각이다.

바야흐로 '취미 권하는 시대'다. 2030에겐 취미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전문 분석업체 링크브릭스 분석만 봐도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2017년 한해동안 해시태그(#) 취미로 올라온 게시물 수는 2016년에 대비 95% 늘었다. 비슷한 의미의 #취미스타그램 #취미생활 이라는 게시물로 마찬가지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김상규 링크브릭스 대표는 "다른 검색어와 비교할 때 찾아보기 힘든 가파른 증가 사례"라며 "○○스타그램이라는 말이 일상화할 정도로 취미가 보편적 키워드가 된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소비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비씨카드와 한국 트렌드 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지친 30대의 라이프스타일’ 모바일 리서치, 2016년 10월)에서 응답자들은 최근 1년간 소비 비중이 증가한 영역으로 ‘취미활동비(35.5%)’를 두번째로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2030 1인 가구의 지출 의지는 ‘여행(41.6%)’, ‘자기개발(36%)’ ‘레저·여가(32.8%)’ ‘건강(32.0%)’ ‘취미(2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2040 전국 500가구 대상. 2013년)

취미 찾아주는 서비스 속속 등장

취미 큐레이션 서비스 '하비인더박스'에서 내놓은 드립커피 키트. 취미를 가져보려는 입문자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필요한 모든 키트를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 [사진 하비인더박스]

취미 큐레이션 서비스 '하비인더박스'에서 내놓은 드립커피 키트. 취미를 가져보려는 입문자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필요한 모든 키트를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 [사진 하비인더박스]

수요가 느니 공급도 발을 맞춘다. 이제는 취미가 하나의 산업, 새로운 소비 시장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게 취미 큐레이션 서비스다. 정작 취미를 갖고 싶어도 어떤 게 맞을지, 어디 가면 배울 수 있는지, 돈만 버리는 거 아닌지 고민하는 입문자들을 공략한 아이디어다. '하비박스' '하비인더박스' '하비풀' 등 업체들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키트를 1~6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 천연 가죽 필통 만들기, 네온사인 장식, 테라리움 등 공예부터 마술·드론·프라모델 등 오락형 패키지까지 테마가 다양하다. 초보자가 서너 시간이면 완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게 딱 성취감을 줄 만한 난이도'로 구성하는 게 큐레이션 서비스의 공통점이다. 하비인더박스 조유진 대표는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기 힘들거나 가까운데서 배우기 힘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면서 "부담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보니 재구독이 30%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비박스는 간단한 취미 적성검사 코너를 마련해 적중률을 높인다. 또 큐레이터 시스템을 도입해 취미로 시작해 이젠 달인이 된 사람들을 키트 제작에 참여시킨다. 도현아 대표는 "큐레이터들이 키트 사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구독자들의 질문을 해결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악기, 언어, 운동 등 개인 레슨 강사를 연결해주는 '숨고'의 서비스 항목. [사진 숨고 홈페이지 캡처]

악기, 언어, 운동 등 개인 레슨 강사를 연결해주는 '숨고'의 서비스 항목. [사진 숨고 홈페이지 캡처]

취미와 O2O(온라인 신청 후 오프라인에서 강습)를 결합한 업체도 성업 중이다. 숨고·크몽·탈잉 등 필요한 기술을 주고 받는 이른바 '재능 공유 플랫폼'에서 '레슨' 항목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악기·운동·보컬 등 개인 수업을 원하는 이들이 조건을 지정해 신청하면 된다. '숨고'의 이지혜 마케팅 담당은 "가야금·폴란드어·마라톤·스쿠버다이빙처럼 관심이 있어도 배우기 힘든 과목들을 배울 기회를 만든다"면서 "특기나 취미가 하나의 경쟁력이 되면서 론칭 2년 만에 40만 건이 넘는 수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취미생활은 여럿이 함께

취미를 가진 자, 혹은 취미 서비스가 늘어나는 양적 변화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취미 소비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여럿이 배워야 하거나 팀을 꾸려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도 함께 하는 모임이 대세다. 돈과 시간이 들지만 취향 공동체를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 문화센터처럼 여럿이어도 혼자인 수업, 동호회처럼 커리큘럼이 없는 양쪽의 빈 자리를 채우고 싶어한다.

독서모임 트레바리는 관심사에 맞는 책을 정해 한 달에 한 번 독후감을 써 보고 토론하는 커뮤니티 모임이다. [사진 트레바리]

독서모임 트레바리는 관심사에 맞는 책을 정해 한 달에 한 번 독후감을 써 보고 토론하는 커뮤니티 모임이다. [사진 트레바리]

마케터로 일하는 박솔미(27)씨는 독서를 혼자가 아닌 모임으로 즐긴다. '트레바리'라는 커뮤니티 서비스에 가입, 관심사가 같은 회원들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져온 지 1년이 넘었다. 그간 마케팅부터 영화, 건축미술까지 다양한 독서를 경험했다. 박씨는 "독후감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또 나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재미도 있고 가치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2015년 트레바리를 창업한 윤수영 대표가 포인트로 삼은 것도 정확히 이런 맥락이다. "사람들이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책을 같이 읽으면서 서로의 생각을 소화하는 자리를 필요로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넉 달 4회 모임에 19만~29만원) 80명으로 시작한 회원 수가 2년 만에 1300명으로 늘었다. 재가입 비율도 60%다. 과거 독서란 딱히 시간·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도 혼자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지만 이제는 이조차 다수가 소통하는 사교의 기회로 활용되는 셈이다.

'버핏 서울'은 남녀가 팀을 이뤄 운동하며 피트니스에 친목의 기능을 더했다. [사진 버핏 서울]

'버핏 서울'은 남녀가 팀을 이뤄 운동하며 피트니스에 친목의 기능을 더했다. [사진 버핏 서울]

혼자하기 좋은 취미로 꼽히는 피트니스도 교류의 장으로 탈바꿈되긴 마찬가지다. 새해마다 운동계획을 세우지만 늘 작심삼일이 됐던 직장인 양나래(29)씨는 운동 커뮤니티에 들며 흥미를 되찾았다. 양씨가 가입한 '버핏 서울'은 25~35세의 직장인 남녀 각각 8명씩을 한 그룹으로 짜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운동 수준과 직업, 운동 동기 등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이 짜여지면 6주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맨몸·소도구 운동을 함께 한다. 평일에도 그룹 대화창을 만들어 소통하며 친분을 쌓다보니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운동도 하고 연애도 하는 일석이조 모임"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양씨는 "운동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평일 미션을 팀 대결로 벌이다보니 혼자서만 안 할 수가 없는 장점이 있다"면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나도 다시 정기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집에서 서너명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홈아틀리에 '앤드로잉'. 주제 선정부터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인스타그램(@anddrawing_)에 올려 공유한다. [사진 앤드로잉]

집에서 서너명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홈아틀리에 '앤드로잉'. 주제 선정부터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인스타그램(@anddrawing_)에 올려 공유한다. [사진 앤드로잉]

딸 아이의 토끼 인형을 그리고 있는 김신애씨. 앤드로잉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혼자 그림 그릴 때보다 즐겁다고 말한다. [사진 앤드로잉]

딸 아이의 토끼 인형을 그리고 있는 김신애씨. 앤드로잉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혼자 그림 그릴 때보다 즐겁다고 말한다. [사진 앤드로잉]

스타일리스트 김신애(33)씨는 서너 명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홈아뜰리에 '앤드로잉'(anddrawing)에서 활동한다. 강사 집에서 서너 명씩 함께 그림을 그리는 소모임이다. "혼자 그리는 것보다 여럿이 모이면 주제를 잡는 것부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훨씬 즐겁다"는 게 김씨가 이곳을 택한 이유다.
취미로 완성하는 라이프스타일

취미가 이처럼 일상에서 주목받게 된 이유가 뭘까. '워라밸(Work-Life-Balance)' '욜로' '가치소비' 같은 2017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키워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워라밸은 최근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가장 주목한 단어였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에 인생 전부를 걸던 산업화 시대의 조직 문화를 거부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변화라는 의미다. 가치소비나 욜로라는 말 역시 '내 삶을 가장 중시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키워드다.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는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시간과 돈을 할애하는 라이프스타일, 여기에 취미는 이를 실현시키는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취미생활이 과거라면 낭비나 사치, 혹은 허세라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인생 2모작이 필요한 세대에겐 취미도 또다른 자기계발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시사잡지 기자인 윤민화(28)씨는 운동 중 다쳐 재활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취미를 넘어서 2016년 초부터 국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고 강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윤씨는 "기사를 쓰는 것만큼 요가를 가르치는 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나중에는 글도 쓰고 요가를 하면서 세계여행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사잡지 기자와 요가 강사를 병행하는 윤민화씨의 수업 모습. '[사진 윤민화]

시사잡지 기자와 요가 강사를 병행하는 윤민화씨의 수업 모습. '[사진 윤민화]

더불어 소셜 미디어가 활발해진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상 속 눈길을 끌만한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야 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취미는 곧 좋은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미 큐레이션에 가입하고 난 뒤 같은 키트를 산 사람들끼리 결과물을 다시 인스타그램이나 업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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