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태원, 임종석 회동 몇 주 전 칼둔 UAE 행정청장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랍에미리트의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 [중앙포토]

아랍에미리트의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 [중앙포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초 회동한 사실이 공개된 가운데 최 회장이 앞서 아랍에미리트(UAE)의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과 독대했다고 31일 정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가 전했다. 칼둔 행정청장은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10일 UAE를 특사로 방문했을 때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제와의 만남 자리에 동석했던 인물로 UAE 원자력공사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올 초 방한할 예정이기도 하다.

소식통 “UAE, 10년 프로젝트 제안” #임종석 방문과 SK사업 관련설엔 #청와대·SK 모두 “사실 아니다” #“칼둔 연초 방한 땐 의혹 풀릴 것” #재계, 최 회장 중동 네트워크 주목 #양국 현안 해결 중재 역할 얘기도

이 인사는 “최 회장이 11월 칼둔 청장을 만나 UAE 아부다비의 2030 장기 플랜에 대해 들었고, 정유·가스 개발 사업 및 협력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어 “UAE가 SK에 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의 지분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의 UAE 방문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현지 국부펀드 MDP와 석유회사 MP의 최고경영자(CEO) 등과 면담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칼둔 청장과의 회동 사실은 공개된 바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임종석-최태원 회동’ 사실이 공개된 이후 임 비서실장의 UAE 방문이 SK 사업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와 SK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칼둔, 임 실장 UAE 방문 때 왕세제 동석

아랍에미리트의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붉은 원)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넷째)이 지난해 12월 10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제(가운데)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다. [사진제공=샤리카24시 영상 캡처]

아랍에미리트의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붉은 원)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넷째)이 지난해 12월 10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제(가운데)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다. [사진제공=샤리카24시 영상 캡처]

청와대 관계자는 “최 회장의 요청으로 이달 초 청와대 밖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고 인정하면서도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이 기업 총수들이 면담을 요청하면 애로사항을 듣는 동시에 정부의 경제운용 방침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에선 “칼둔 청장이 내년 초 방한할 것이다. UAE에서 한국에 오면 모든 의혹이 풀릴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SK 측도 “UAE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사업이 없는 만큼 임 실장에게 처리를 부탁할 민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와 SK 모두 사업 관련성을 부인함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 최 회장이 한국과 UAE 간에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 회장의 오랜 ‘중동 네트워크’ 때문이다. 그는 2005년 쿠웨이트국영석유회사(KOC)와 12억 달러(약 1조2800억원) 규모의 건설공사를 수주한 이후 지속해서 중동 왕족들과 친밀한 교류관계를 맺고, 중동시장 확대를 위한 교두보를 만들고 있다. 특히 SK그룹의 화학 계열사들이 중동에서 들여오는 원유 물량이 많다 보니 최 회장은 중동 네트워크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건설·에너지·유통·해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동 사업을 강화하다 보니 최 회장이 직접 나서 현지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며 “일부 왕족이 최 회장을 ‘내 오랜 친구’라고 표현할 만큼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비서실장이 개별 기업의 총수를 비공개로 독대(獨對)한 게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 분야를 관장하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아닌 임 비서실장이 나선 게 의아하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정책실 주변에선 장하성 정책실장이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기업 담당인 정책실장은 만나지 않은 기업 총수를 비서실장이 만났다는 얘기가 된다.

10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임 비서실장과 만난 적도, 만날 시도를 한 적도 없다”며 “경제나 정책과 관련해 굳이 대화해야 한다면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소통하는 것이 옳은 모양새 아니냐”고 했다. 그러곤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문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과 만나고 싶어 하고, 또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의사를 전달받은 적은 있지만 더는 진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비서실장이 왜 기업인 독대하나” 논란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

임 비서실장이 만난 대기업으로 거론되는 A사의 고위 임원도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독대를 요청한 적도, 요청받은 적도 없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괜히 정경유착으로 오해를 받을까 싶어 불필요한 의혹을 살 만한 자리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그룹 비서실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재계 인사와의 만남을 자제해 온 현 정부가 이런 재계의 분위기를 알면서도 SK그룹 오너를 비공식적으로 접촉했다면 뭔가 중대한 일을 논의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와 만났을 때 문 대통령이 ‘기업 얘기를 많이 듣겠다’고 한 것의 후속조치로 비서실장이 총수들을 만난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재벌을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은 청와대와 재계의 비공개 소통 채널이고,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은 반(半)공개 소통 채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정책실장이 있다 하더라도 비서실장의 역할은 모든 분야를 다 총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동안 재계와의 비공식 접촉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20일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고위 경영진의 만찬 간담회는 언론에 미리 알려지자 이틀 전에 일정을 취소했다. 역대 대통령이 거의 항상 참석하던 경제계 신년 인사회(3일)에도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다.

박성훈·허진·하선영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