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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가즈아~’에서 ‘존버’까지 … 비트코인 체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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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현상의 세상만사

암호화폐 열풍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인가. 2009년 1월 3일,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은 지 정확하게 9년. 처음엔 소수 컴퓨터광의 장난감쯤으로 치부되던 암호화폐는 이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열풍의 대상이 되었다. 암호화폐가 투기판으로 변하면서 부작용 우려가 커지자 급기야 우리 정부도 잇따라 고강도 규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열풍은 쉽게 식을 기세가 아니다. 소액이나마 암호화폐 투자를 직접 해보기로 한 것은 이 욕망의 공간을 살짝이나마 안에서 보고 싶어서였다.

이름도 낯선 30여 종의 코인들 #전망·특성 분석 사실상 불가능 #올라도 내려도 이유는 모른다 #인터넷에선 믿기 힘든 정보만 #실버세대까지 투자 나서지만 #보안 불안에 온라인 거래 애로

투자라고는 했지만 쑥스럽다. 100만원. 지난해 12월 19일 국내 3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한 군데에 계좌를 개설했다. 12월 들어 갑자기 치솟은 가격으로 ‘암호화폐 거품론’이 한창일 때였다. 홈페이지에서 ID로 쓸 e메일주소와 비밀번호, 은행계좌 등을 등록하고, 실명확인과 ARS 인증을 거치자 거래소 전용 S은행의 가상계좌가 만들어졌다. 스마트뱅킹으로 이 가상계좌에 100만원을 보냄으로써 투자준비 완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계좌를 만든 뒤 ‘투자 전략’을 고민하는 사이 시장은 요동쳤다. 각국 정부가 규제에 나서고, ‘고래’라 불리는 큰손들이 차익 시현에 나섰다는 소식에 2200만원 선을 오르내리던 비트코인 가격은 22일 밤 1600만원대까지 폭락했다. 그러나 토요일인 다음날 새벽부터 가격은 곧바로 회복세. 토요일 아침, PC 화면에서 점멸하는 빨간 숫자를 보고 있노라니 ‘위기 뒤에 온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초조감까지 들 정도였다. 행동 개시. 비트코인 60만원, 이더리움 40만원어치를 매입했다. 각각의 체결 단가는 1937.3만원과 94만원. ‘거래확인’ 버튼을 누르자 나의 현실 화폐 100만원은 비트코인 0.03097093, 이더리움 0.42553191이라는 소수점 이하 8자리의 숫자로 바뀌었다. 생각보다 작은 숫자에 초라한 느낌마저 살짝 들었다. 현재 지구 위에 등장한 암호화폐 종류는 1300여 종. 이 중 국내에서 거래되는 것은 30여 종이다. 리플, 라이트코인, 대시, 모네로, 퀀텀, 제트캐시, 아이오타 등등. 생소한 암호화폐 중 두 종류를 고른 것은 특성과 투자 전망을 파악해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름은 익숙한 ‘대장 코인’이 다른 ‘잡코인’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암호화폐 거래는 일주일 24시간 휴장 없이 돌아간다. 새벽에 깨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다 잠을 설친다는 투자자들의 경험담이 거짓이 아니었다. 초 단위로 요동치는 숫자가 궁금했다. 내가 산 비트코인은 매입 직후 며칠간 1700만원대 후반과 1900만원 후반 사이를 오르내렸다. 투자액은 적지만 숫자 변화에 ‘투자자’로서의 자존심이 따라 움직였다. 문제는 이 숫자가 왜 변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주식시장도 투기적 요소가 있다지만 그래도 참고할 지표는 있다. 크게는 거시 경제지표와 업종 상황,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실적과 성장 가능성을 따진다. ‘실적’과 ‘내재 가치’를 따지기 힘든 암호화폐는 애초부터 이런 참고 지표가 있을 수 없다.

몇 군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져봤다. ‘가즈아~’를 외치며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 혹은 자랑하는 ‘차트 분석’이 보인다. 가상화폐별 호재와 악재를 정리한 글도 있다. 하지만 객관성과 신빙성은 의심스럽다. 오히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중에서 ‘단타 치는 꿀팁’ 같은 글들이 눈에 띈다.

“1분은 단타, 3분은 중기, 1시간은 장기 보유” “특정 거래소에 단독 상장되는 신규 코인은 상장 시간에 딱 맞춰 치고 빠지면 두 배는 먹는다” “15초에 10%나 뛴 적도 있으니 매의 눈과 번개의 손으로 클릭!”

이런 단타 매매의 반대편에는 불안한 버티기가 있다. 단타 꿀팁 밑에 붙은 댓글. “단타 치려다 거래소 서버에 렉(네트워크 장애)이 걸려 (그사이 폭락으로) 반 토막이 났어요. ‘존버 정신’(기를 쓰고 버틴다는 은어)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실버세대까지 열풍이 번졌다는데, 이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28일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운영하는 서울 을지로의 고객센터를 찾았다. 4개의 상담창구와 PC 2개가 놓여 있는 이곳에는 상담을 기다리는 60~70대가 생각보다 많았다. 김해석(가명·63)씨는 “며칠 전 스마트폰 홈페이지가 먹통이 돼 콜센터로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돼 나왔다”며 “한 달 전 비트코인에 수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입출금 지연도 잦고 보안 사건도 자주 난다고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창구 상담원은 “컴퓨터나 모바일에 문제가 생긴 어르신들에게 전화로 설명해 드려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석처럼 여겨지는 장기투자가 암호화폐에서도 답이 될 수 있을까. 대체로 벤처·IT 전문가들과 통화·금융 전문가들의 시각이 엇갈린다. ‘스냅챗’의 최초 투자자였던 제러미 류는 2030년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50만 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은 번성하겠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 규제의 고삐를 죄면 투기 세력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투자 후 며칠간 횡보하던 차트는 26일이 되자 오르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은 2100만원, 이더리움은 100만원이 가까워지자 일단 팔기로 했다. 26일 밤 팔고 나자 수수료를 제하고 5만원 가까운 이익이 남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라며 내심 흡족해하고 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다음날 비트코인은 2200만원, 이더리움은 105만원까지 계속 오르자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소심함을 자책하며 재진입 기회를 노리는데 28일 낮 정부가 가상계좌 거래 중지를 골자로 하는 암호화폐 규제안을 발표했다. 거래소 폐지까지 검토한다는 강력한 방침에 비트코인 가격은 20% 가까이 폭락. 하지만 다음날 또 반등. 며칠 전 새긴 ‘위기 뒤 기회’라는 격언을 되뇌며 다시 매입했다. 하지만 두 번의 행운은 없었다. 그래프는 다음날 다시 가라앉았다. 연말까지만 투자 하기로 했던 계획에 따라 30일 밤 모두 처분했다. 그 와중에도 ‘리플’이라는 화폐가 갑자기 전날의 두 배로 뛰는 등 어지러운 널뛰기는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금융사가 리플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송금 테스트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떠돌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열흘 남짓한 투자 실험을 끝낸 계좌에 표기된 숫자는 1,031,264. 다행히 손실을 보지 않은 것은 이 욕망의 시장에 다른 이들의 욕망이 보태졌기 때문이리라.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혹자는 부질없는 거품과 소동으로 치부하고, 혹자는 IT와 미래 금융이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본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모른다. 그 확인은 각자의 몫이다. 확실한 것은 나는 내 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 기사 제작에는 이유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