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위한 지식·사회·창의 자본 키워야 선진국 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12.31 01:00

업데이트 2017.12.31 01:57

지면보기

564호 11면

[신년기획] 중앙SUNDAY-서울대 행정대학원 공동 <상> 소득 3만 달러 시대, 한국의 갈 길

영국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가 발표한 전 세계 149개국 중 대한민국의 올해 순위는 36위다. 연구소는 매년 경제와 기업가 정신, 교육, 사회적 자본 등 9개 분야의 점수를 매겨 국가별 번영 순위를 매긴다. 올해 한국은 공중보건(15위)과 교육(17위)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회적 자본(149개국 중 93위)과 자연환경(90위)에서 하위권의 점수를 받아 전체 순위가 낮아졌다. 대한민국은 2011년 같은 조사에서 24위를 기록한 뒤 거듭 순위가 낮아지고 있다.

‘공부 안 하는 어른’ 당연시 풍토
혁신성장 지적 자산 급속히 쇠퇴

구성원 간 신뢰 지수 사회적 자본
‘우리’라는 소집단에 막혀 폐쇄적

틀에 박힌 인재 키우기에만 익숙
해외 우수 인력 유치 노력 기울여야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고지가 목전에 있지만 삶은 예전만 못하다는 이가 많다. 소득 성장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부설 한국행정연구소는 그 해결책으로 혁신성장의 3대 요소를 손꼽았다. ▶고도 지식자본(High-Knowledge Capital)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창의자본(Creative Capital) 세 가지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으면서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인 6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과 캐나다·네덜란드·스웨덴 등 경제 강국 3개 나라의 성장 경로를 토대로 한 조언이다.

일본은 고급 문해력 인구 비중 우리보다 3배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중 상당수는 정규 교육을 마친 뒤 독서 같은 지식 습득 노력을 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중 상당수는 정규 교육을 마친 뒤 독서 같은 지식 습득 노력을 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비교 대상 9개 국가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2016년 기준)은 4만2917달러다. 우리는 그 64% 수준인 2만7539달러에 머물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소는 그 차이가 우선 우리에겐 고도 지식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본다. 고도 지식자본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자기계발과 학습의 기본 토대가 된다. 주요 국가별 고도 지식자본은 문해력(literacy)과 수리력(numeracy) 수준(OECD, 2012년 조사)으로도 파악된다. 국가 간 평균점수 측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분석 대상을 상위권으로 좁혀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비교 대상인 9개 국가의 문해력과 수리력 상위권(전체 5등급 중 4등급 이상) 비중은 한국보다 매우 높다. 이들 국가에서 4등급 이상의 문해력을 갖고 있는 인구의 평균 비중은 12.23%로 한국의 7.9%보다 4.3%포인트 더 높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 비중은 21.4%로 우리의 3배가량이다.

이를 나이대별로 비교하면 그 차이는 극명해진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산하 국가문해교육센터에 따르면 국내 만 18세 이상 성인 중 복잡한 일상생활의 문제 해결에 미흡한 문해능력자(3등급 이하)는 전체 인구의 28.6%(1183만여 명)다. OECD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16~24세 사이의 문해력 점수는 주요 선진국의 평균점수(278점)보다 15점가량 높다. 하지만 45~54세의 문해력 점수는 259점으로 주요 선진국(269점)보다 10점가량 낮아진다. 수학·과학적 능력의 토대가 되는 수리력도 비슷한 양상이다. 대한민국의 16~24세 사이 수리력 점수는 281점으로 주요 선진국 평균(268점)보다 13점이나 높지만, 45~54세의 수리력은 251점으로 선진국 평균(264점)보다 13점이나 낮아진다. 반면 일본의 경우 16~24세 때 283점이던 수리력 점수가 45~54세 구간에서는 292점에 달하게 된다. 서울대 지능정보사회정책연구센터 전대성 전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혁신성장을 위한 지적 자산 축적 정도와 학습환경이 선진국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다”며 “무엇보다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성인이 된 이후부터 지식 습득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부 안 하는 어른을 당연시여기는 사회 분위기 탓에 성인기 이후부터 지적 자산의 쇠퇴가 급격히 진행된다는 얘기다.

사회적 자본 수준도 현저하게 적어

지식자본 못지않게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유대감 등을 뜻하는 사회적 자본 수준도 선진국들에 비해 확연히 낮다. 혁신성장을 위해선 이해관계자 간 정치적 조정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가는 일이 필수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이 적을수록 이런 일이 어렵다. 구성원 간 불신이 팽배하면 그만큼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이 적을 때 정치·행정 체제의 효과성이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레가툼 연구소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회적 자본 수준은 전 세계 149개국 중 93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9개 조사 항목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울시를 비롯한 국내 주요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마을공동체 사업 등을 통해 사회적 자본 축적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관계자는 “사회적 자본을 키우려고 해도 아직은 ‘우리’라는 소집단 개념에 막혀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는 폐쇄적으로 대하는 분들이 많다”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처럼 어릴 때부터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쪽으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투자 성과도 낮아

창의자본의 토대가 되는 인적 자산을 키워내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창의자본이란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토대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힘을 뜻한다. 이를 위해 인적 자본 생태계와 과학기술 생태계 전반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간 한국 사회는 대량 생산체제 패러다임에 맞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연구개발비 투자로 대변되는 투입(input) 측면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틀에 박힌 인재를 찍어낸다는 비난도 비등하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투자에도 정작 혁신성장에 필요한 인적 자산을 키워내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프트웨어(SW)나 반도체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도 ‘초급’ 수준의 인재는 넘치지만, 정작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해낼 수 있는 ‘고급’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반복돼 온 지적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국내 학자들의 과학기술논문의 영향력도 경쟁국 학자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논문당 인용건수와 영향력 지수(H-index)에서 한국이 536점(2017년 기준)인 데 반해, 미국은 1965점, 일본은 871점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광호 교수는 “한국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전 세계 최고 수준(2015년 기준 4.22%)이지만, 이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2%만 전문인력

해외 우수 인재 유치 노력의 성과도 일본이나 중국 등 경쟁국에 밑돈다. 법무부 외국인력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205만 명·2016년 기준) 중 4만8000여 명만이 전문인력이고 대다수는 비(非) 전문인력이다. 그나마도 전문인력 중 절반 이상은 3년 미만으로 국내에 머물고, 10년 이상 체류하는 경우는 6%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공격적인 해외 고급 인력 유치 노력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2017년 1월 해외 고급 인력 유치를 위해 영주권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과거 외국인이 영주권을 얻는 데에는 통상 10년 이상의 체류 기간이 필요했지만 외국인 체류 자격을 ‘학술 연구’ ‘전문·기술’ ‘경영·관리’의 세 분야로 나눠 박사 학위 소지 연구자에게 30점, 연봉 3000만 엔(약 3억900만원) 이상의 경영자에게 50점 등의 점수를 부여하고 합산 점수가 80점을 넘는 이는 1년 만에 영주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우수 인재에게는 배우자 취업이나 일정 요건 아래 부모 동행 허가, 입국 및 체류 절차 우선 처리 등의 혜택도 준다. 이를 통해 일본은 외국 인재 확보에 적극적인 국가란 이미지까지 얻었다. 중국도 2017년 초부터 석사급 이상의 우수 외국인 유학생의 중국 내 취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취업비자 제도를 개선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관련기사 

● 뒷걸음 삶의 질, 낮은 정치 안정 … ‘3만 달러 축포’ 이르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