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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고 박종철 열사의 고교 후배가 만든 가능성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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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의 포토버킷(11)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가능성연구소’ 서종우 대표 "살맛나는 세상 만들고파" #50~60대 반퇴인생 위한 ‘다시봄대학’ 설립하는 게 꿈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알려 주지 않을래?”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어디든 상관없어.”
“그럼 어느 방향으로 가든 상관없잖아.”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6장 ‘돼지와 후추’ 편에 나오는 앨리스와 체셔캣의 유명한 대화다. 필자가 가끔 과거를 추억하며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아쉬움 섞인 생각을 할 때 떠올리는 동화 속 구절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때 필자가 어느 길로 가고 싶은지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의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더라도 어느 정도 분명히 방향을 정하고 살면 어떨까? 순간순간은 다른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국은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 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자극적인 유혹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가능성 연구소’ 서종우 대표(48)의 다소 돌아온 듯하지만, 방향성이 확실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가능성 연구소 서종우 대표.

가능성 연구소 서종우 대표.

서 대표는 본인을 ‘가능성 디자이너’라고 불러달라며 한가운데가 스마일 모양으로 파여 있어 평범해 보이지 않는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이 재미있지요? 저를 만나면 이 명함처럼 웃게 됩니다”라는 첫인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새롭고 낯선 대상을 만났을 때 긴장· 경계심·피곤함보다는 호기심·궁금함· 반가움을 먼저 느끼는 필자이기에 오늘 인터뷰 역시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웃는 얼굴을 연상시키는 가능성 연구소 명함.

웃는 얼굴을 연상시키는 가능성 연구소 명함.

고 박종철 열사의 고교 후배

서 대표는 “1987년 혜광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필자는 처음에 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네? 그래서요?’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박종철, 김윤석이 고등학교 선배예요. 1987년 1월에 사건이 발생했고, 그해 3월에 입학했죠”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의 실제 모티브를 제공한 고(故) 박종철과 영화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대공수사처 박 처장 역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이 졸업한 고등학교를 1987년에 입학했다니. 그의 학창시절이 평탄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 '1987' 포스터.

영화 '1987' 포스터.

부산 지역 최초로 학생회장 직선제를 학교로부터 끌어내는 등 역시 평범하지 않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서 대표는 당시 진보 학생운동의 중심 격이었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 서 대표는 자연스럽게 문제를 고발하고 바로잡아 좋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즈음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트렸던 IMF 사태의 여파로 직장생활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자주 경험하게 했다. 서 대표는 고민 끝에 서울에 있는 게임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큰 결심을 했다.

사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즐겨들으며 라디오 PD를 꿈꾸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노래·밴드·풍물 등의 활동을 하며 문화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전문가의 문화기획 강좌를 듣기 위해 직접 서울을 오갈 정도의 열정을 보였던 그였다. 게임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서서히 가슴속에 품고 있던 ‘문화기획자’로서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전 국민의 큰 관심 속에 ‘주5일제 근무’가 실시됐다. 마침 ‘주5일제 근무’ 실시에 큰 역할을 했던 김정운 당시 명지대학교 여가경영학과 교수의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국민 사이에 ‘여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서 대표는 앞으로 노동과 여가 관련 정책을 디자인하는 능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상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인간의 노동과 관련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사회학을 전공한 그가, 노동 이외의 것에 관심을 두는 여가학을 공부하기 위해 김정운 교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 대표의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

서 대표의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 교수로부터 문화심리학과 여가학의 기본을 배우며 향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 서 대표는 석사학위를 받은 후 김 교수를 도와 SK, 포스코 같은 대기업에 창의경영 관련 강의를 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후 지방공무원교육원, 지방행정연수원 같은 공무원 교육기관에서 문화관광·녹색성장 등의 정책기획 관련 강연, 컨설팅, 연구로 영역을 넓혀왔다.

다양한 강연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종우 대표.

다양한 강연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종우 대표.

2012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온 서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간직해 오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 개인과 조직이 가진 강점과 가능성을 발굴해 새롭게 진화,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가능성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의 스승인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대표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문제를 연구하고, 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라고 한다.

‘공정·공평·정의·평등’이라는 삶의 중요한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공무원과 시민사회가 협업할 수 있는 자발적 시민단체 ‘공유경제시민허브’도 조직했다. 여기서는 이론적인 연구보다는 실행을 위한 워크숍, 토크쇼 등의 활동을 통해 ‘공유경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시민사회와 함께 넓혀가고 있다. TV와 라디오에도 고정 출연해 부산시의 주요 현안과 함께 우리 사회의 살맛 나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는 등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산KBS 'K-토크'에 시사평론가로 고정 출연중인 서종우 대표.

부산KBS 'K-토크'에 시사평론가로 고정 출연중인 서종우 대표.

‘문화기획자’의  꿈

그에게 앞으로의 궁극적인 꿈에 관해 물어봤다.

고교·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소셜이노베이터(Social Innovator)’로서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마음속에 흐르는 문화기획자로서의 희망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죠. 그 결과 ‘가능성 디자이너’로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현재의 노력이 결실을 본 후에는 50~60대 반퇴 인생 혹은 신중년을 위한 교육기관 ‘다시봄대학’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세상의 지원을 받아야 할 소극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주체임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중간플랫폼 성격의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다시봄대학’은 인생의 봄(spring)이 다시(again) 왔다는 뜻과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본다(see)는 뜻이 함께하는, 배움보다는 활동 지향적인 학교가 될 것입니다.

딸에게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서종우 대표.

딸에게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서종우 대표.

서 대표가 대화 속에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 ‘살맛 나는 세상’이다. 마지막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열 살 난 외동딸이 있어요. 이 아이가 제가 거쳐 온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살맛 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일에 아빠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다고 자랑할 수 있으면 행복하겠죠.”

마침 필자도 열 살 아들, 아홉 살 딸을 두었기 때문에 보다 인상적으로 들렸다. 필자의 아들딸이 함께 살아갈 세상인데 조금 더 살맛 나게 하기 위해 필자도 동참을 약속했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서 대표의 명함을 꺼냈다. 서 대표의 말이 맞았다. 그를 만나면 웃게 된다. 2시간의 만남을 위해 9시간을 왕복했지만 조금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저자 jycyse@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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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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