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운의 역사정치] 유승민과 안철수는 유비와 손권이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17.12.30 06:01

업데이트 2018.09.16 23:27

12월 14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세미나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중앙포토]

12월 14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세미나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중앙포토]

유성운의 역사정치⑩

후한(後漢) 건안(建安) 13년(서기 208년) 가을 유비는 수 십여기의 군마에 의지한 채 허겁지겁 강릉성으로 후퇴합니다. 그 뒤는 정예 철기군을 선두로 한 조조의 수십만 대군이 추격하고 있습니다. 말이 후퇴지 도주에 가깝습니다.
형주를 지배했던 유표에게 의탁했지만, 그가 사망하자 모든 상황이 꼬였습니다. 후계자인 둘째 아들 유종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조조에게 화살 한 번 쏘지 않고 항복했습니다.
당시 신야성에 머무르던 유비는 유종으로부터 이 정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조조의 대군이 목전까지 다다랐을 때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유비는 달아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지만 사실 그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진수의 『삼국지』 「선주전」과 「장비전」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선주(先主ㆍ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ㆍ장비ㆍ조운 등 수십 명의 기병을 이끌고 달아났다. 조공(조조)은 그들의 군사와 군수 물자를 대량으로 획득했다.”  

때는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유비군의 어깨 위엔 찬서리가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유비는 “늦기 전에 형주를 차지하라”던 제갈량의 조언을 듣지 않았던 것이 새삼 마음에 남았을 것입니다. 후회를 곱씹으며 달렸겠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자신의 거점으로 생각했던 형주 지역 태반이 조조에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중국 외화드라마 '삼국지'의 한 장면 [중앙포토]

중국 외화드라마 '삼국지'의 한 장면 [중앙포토]

악전고투의 후퇴 과정은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후세까지 전해지는 무용담으로 남게 됩니다. 조운이 고군분투하며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하거나, 장비가 장판파의 다리 앞에서 호통치며 조조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야기 등입니다. 장비가 장판파에서 다리를 끊어 조조군의 추격을 잠시 따돌리긴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유비의 전력이라곤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서서, 간옹, 손건, 미축 등 10여명의 가신단과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 유표의 맏아들 유기 정도였습니다. 원소를 물리치고 하북을 평정한 조조의 수십만 대군과 맞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수준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유비 세력의 천명이 다했다고 여겼을 법한 바로 그 순간, 한 사나이가 유비의 군영으로 찾아오면서 역사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절체절명의 위기는 새로운 시작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연의』의 영향으로 유비 측 제갈량이 먼저 동맹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진수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에 따르면 순서가 다소 다릅니다. 유비 세력과 손잡겠다고 먼저 움직인 것은 손권 측입니다.
형주를 지배했던 유표가 죽자 노숙은 손권을 찾아가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유표는 죽었고 두 아들은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유표의 두 아들에게 가서 조문하고, 유비에게 유표의 부하들을 이끌어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지금 곧장 가지 않으면 조조가 먼저 기회를 잡게 될 것입니다.“ 

본래 형주 세력과 동오 세력은 앙숙과도 같았습니다.
각각 양쯔강 상류와 하류를 점령한 이들은 하북 이남의 패권을 위해 서로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조의 위협이 상황을 바꿔놓았습니다. 노숙은 동오(東吳)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일단 형주 세력과 동맹을 맺어 조조와 세력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그런데 조문을 가는 도중에 상황이 급변합니다. 조조의 군대는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고, 유종은 너무도 쉽게 투항해버렸습니다.
즉, 조조의 군대가 동오의 코앞에 주둔하게 됐습니다. 노숙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된 것입니다.
이대로 동오로 되돌아갈 것인가, 조조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것인가.
남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던 노숙은 당양의 장판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곳에는 조조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유비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제 어찌할 요량입니까?” (노숙)

“옛 친구인 창오태수 오거를 찾아갈까 하오.” (유비)

“오거는 대단히 먼 곳에 있는데다 자기 한 몸 보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장군을 보호해줄 수 있겠습니까. 손 장군(손권)과 연합하여 함께 대업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회계ㆍ단양ㆍ오군ㆍ예장ㆍ여릉ㆍ여강의 6군(郡)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만약 유 장군(유비)과 우리가 연합한다면 대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노숙)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노숙은 이때 유비 옆에 있던 제갈량을 보자마자 “나는 자유(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의 호)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노숙이 얼마나 유비와의 동맹에 적극적이었는지는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변변한 성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던 유비 세력에게서 노숙은 무엇을 발견하고 이같이 과감한 제안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했던 유비로서는 천군만마 같은 제안이었습니다. 즉시 동맹 체결을 위해 제갈량을 사신으로 파견했습니다.

둘로 갈라진 동오(東吳)

하지만 정작 동오 세력은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항조파(降曺派)와 유비와 동맹을 체결하자는 연유파(聯劉派)로 쪼개집니다.
장소를 비롯한 원로 그룹은 ”이미 형주도 빼앗기고 세력이 미약한 유비와 손잡을 필요가 없다“며 반대합니다. 차라리 조조에게 항복하고 동오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제갈량이 설득에 나섰지만 손권으로서는 정치적 운명을 걸어야 하는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원소를 제압하고 하북을 통일한 조조의 세력은 맞설 자가 없었습니다.

“구주백군(九州百郡) 중에서 8할을 차지했고, 위엄이 천하에 떨쳤으며 위세가 사해를 위협했다.”(『삼국지』「유엽전」)

누가 봐도 유비와의 동맹은 '리스크'가 너무 컸습니다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답답한 손권은 파양에 나가 있던 주유를 불러들입니다. 선왕이자 형이었던 손책은 “나라 안의 일은 장소와 상의하고, 나라 밖의 일은 주유와 상의하라”고 유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주유가 균형추가 되자 주전파와 주화파는 모두 ‘주심(周心)’ 잡기에 나섭니다.
『삼국연의』에 따르면 주유는 양 측의 의견을 모두 듣기만 할 뿐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삼국지』 「주유전」에 묘사된 주유의 태도는 명확했습니다.

“조조가 한(漢)나라의 재상이라고 하지만 실은 도적에 불과합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정병 수천을 내려주신다면 하구에 진을 치고 적을 깨뜨리겠습니다.”

균형추가 기울고 있을 때 노숙의 일침이 결정적으로 손권을 폐부를 찌릅니다.

“제가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저는 군수(郡首)나 주목(州牧)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공께서 조조에게 투항하신다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작위라고 해봤자 겨우 후(侯)에나 봉해질 것이고 수레 한 대, 말 한 필, 몇 명의 시중드는 사람 정도를 얻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삼국지』 「노숙전」)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손권은 조조와의 항전, 즉 유비와의 동맹을 선택합니다.

『삼국연의』에서는 “난 맹세코 그 늙은 역적과 병립하지 않으리라”고 외친 뒤 탁자를 칼로 베어 의지를 드러냈다고 묘사됐습니다.
한편 양측을 분리해 차례차례 격파하려 했던 조조 측으로서는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가 펼쳐진 셈입니다.
『삼국지』는 양측의 동맹이 성사된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글을 쓰고 있던 조조는 그만 붓을 땅에 떨어뜨렸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이자 삼국의 판도를 결정한 적벽대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영화 '적벽대전' [중앙포토]

[유성운의 역사정치]
유승민과 안철수는 유비와 손권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정치권을 둘러싼 가장 큰 움직임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움직임입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파는 중도층을 공략할 개혁성향의 신당을 만들어 제3세력으로 나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는 않습니다. 특히 국민의당은 통합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갈등으로 당이 두 동강 났습니다.
호남 지역 의원들이 다수 포함된 통합 반대파 측은 “20석일 때라면 몰라도 11석으로 쪼그라든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여권에 협조해 내각 참여나 호남에서의 정치적 지위 보장 등 '실익'을 얻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깔려 있습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박주선(왼쪽) 박지원 의원 [중앙포토]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박주선(왼쪽) 박지원 의원 [중앙포토]

반면 안철수 대표가 리더인 통합 찬성파 측은 “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이대로 지방선거를 치르면 참패가 불 보듯 뻔한만큼 통합을 통해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같은 견해차는 양쪽의 이해 관계도 어느 정도 맞물려 있습니다.
대선주자였던 안 대표는 여권에 협조하는 순간 독자 세력의 맹주로서 유지하던 정치적 자산을 대부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호남 의원들은 얻을 게 있어도 안철수 대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숙이 손권에게 했던 간언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지난 21일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손학규 상임고문. 국민의당 통합 찬반 양측은 손학규 고문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1일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손학규 상임고문. 국민의당 통합 찬반 양측은 손학규 고문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양측의 통합 시도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기 맞이한 위기가 촉매제가 됐습니다.
국민의당은 텃밭인 호남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이 뒤지는 상황이고, 바른정당은 2차 탈당 이후 지역 조직들이 자유한국당으로 유턴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에겐 민주당이, 바른정당에겐 한국당이 조조의 대군인 셈입니다.

한편 민주당과 한국당 입장에서 유승민과 안철수의 통합 신당 추진은 참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민주당(121석)과 한국당(116석) 모두 국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인만큼 앞으로 신당과 타협하며 이들의 요구 조건에 적지 않은 양보를 해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오히려 청와대와 민주당으로서는 호남계가 최대 주주인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남아 결정적 순간에 여권의 손을 들어주는 쪽이 이상적입니다. 이는 최근 예산안 통과 때 ‘한국당 패싱’으로 현실화되기도 했습니다.
한국당 역시 바른정당이 ‘원군’을 만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채로 쪼그라들어 소멸하는 시나리오가 이상적입니다. 바른정당이 사라지면 보수의 유일한 대표세력으로 다시 군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 2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출범식에서 공동대표인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과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양당의 정책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출범한 국민통합포럼은 14차 모임까지 이어지면서 양측 통합 논의의 모체가 됐다.

지난 9월 2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출범식에서 공동대표인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과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양당의 정책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출범한 국민통합포럼은 14차 모임까지 이어지면서 양측 통합 논의의 모체가 됐다.

“형주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다시 삼국지로 돌아가 볼까요.
유비ㆍ조조ㆍ손권은 모두 형주(荊州)를 탐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형주는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영역입니다. 이 때문에 형초(荊楚)라고도 불렸습니다. 양쯔강 상류에 자리잡은 이곳은 역사적으로 토양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해 인구가 많았습니다.

삼국시대 각 지역

삼국시대 각 지역

노숙은 손권에게 형주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강물은 북쪽으로 흘러내리고 밖으로는 장강과 한수를 두르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험준한 산이나 구릉이 있고 견고한 성이 있으며 기름진 평야가 만리나 되고 관리와 백성은 부유합니다. 이곳을 차지한다면 제왕의 자본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형주는 서촉(익주)과 동오(양주)의 가운데 있으며 하북과도 맞닿아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이때문에 형주를 지배하지 못하면 누구도 천하통일을 넘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형주만 차지했던 유표가 결국 유비, 손권, 조조와 달리 제업의 꿈에 실패했던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형주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정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주최 ‘통합과 개혁의 정치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안철수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정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주최 ‘통합과 개혁의 정치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안철수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형주라는 지역을 현재의 정치 지형에 적용하지만 중도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선 때마다 중도층을 공략하는 후보가 승리를 거두곤 했습니다.
반대로 중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한 후보가 승리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승민 세력과 안철수 세력이 설계하는 신당의 미래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중도 개혁세력의 규합을 내걸고 통합에 나선 참입니다.

지역을 매개로 하지 않고 '중도'라는 가치를 앞세워 통합에 나서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초유의 실험입니다. 그만큼 양측을 둘러싼 절박한 상황이 '승부수'를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동맹은 과연 '적벽대전'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들을 위한 '동남풍'은 불어올까요.

무술년 정치 지형의 변곡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참입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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