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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휩쓴 빈민들의 영웅, 라이베리아 진짜 대통령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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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웨아. [로이터=연합뉴스]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웨아. [로이터=연합뉴스]

아프리카 빈민가 소년에서 유럽 축구 무대의 스타 플레이어로, 다시 가난한 조국의 대통령으로-.

흑인 조지 웨아, 민주적 정권 교체 #95년 아프리카 출신 첫 발롱도르상 #96년엔 방한해 대표팀과 경기도 #브라질 축구 호마리우는 상원의원 #파키스탄 크리켓 영웅은 총리 주자

1990년대 아프리카를 대표한 축구 선수 조지 웨아(51)가 2005, 2011년(부통령 출마)에 이은 세 번째 도전에서 라이베리아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라이베리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현지시간) 웨아가 61.5%의 지지를 얻어 38.5% 확보에 그친 조셉 보아카이(72) 현 부통령을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웨아 당선인은 재선을 포함해 12년의 임기를 마감하는 엘런 존슨설리프(79) 대통령의 뒤를 이어 다음달 공식 취임한다.

웨아는 승리 선언 후 트위터를 통해 “국민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느낀다.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웨아는 1944년 이후 73년 만에 라이베리아의 첫 평화적 정권 교체 주인공이 됐다. 19세기 미국에서 이주해 온 해방 노예들이 주축이 돼 세운 라이베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 독재와 쿠데타를 거듭 겪었다. 두 차례 내전(1989~96, 1999~2003) 동안 인구의 10%에 가까운 25만 명이 살육됐다.

고국이 가장 피폐했던 이 기간 웨아는 유럽 무대를 누볐다. 수도 몬로비아 외곽의 빈민촌에서 태어난 웨아는 국내 리그를 휩쓴 뒤 88년 프랑스 AS모나코로 진출했다. 웨아는 95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Ballon d’Or·황금 공)’를 수상했고, 같은 해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국가대표팀 A매치에 60차례 출전해 20골을 기록했다. AC밀란 시절인 96년 방한해 한국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1996년 AC밀란 소속으로 내한한 웨아가 한국축구대표팀과 친선전을 하는 모습으로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가 중앙일보에 제공했다. [사진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

1996년 AC밀란 소속으로 내한한 웨아가 한국축구대표팀과 친선전을 하는 모습으로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가 중앙일보에 제공했다. [사진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

해외에서 뛰면서도 그는 가난과 분쟁으로 시달리는 고국을 잊지 않았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사재를 털어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03년 은퇴와 함께 정치권에 투신했다. 2014년 이래 수도 몬로비아가 포함된 몽세라도주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해 왔다.

당선인 웨아의 최우선 과제는 빈곤 해결과 일자리 창출이다. 2013∼2015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라이베리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13달러(약 87만원, 2016년 기준)로 최빈국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8일 “국제 외교망이 넓었던 전임자 설리프와 달리 축구 네트워크가 전부인 웨아가 이를 자국 인프라 확충에 활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명성과 부를 동시에 쟁취한 스포츠 스타들은 종종 정치무대로 진출한다.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필리핀의 ‘국민 복서’ 매니 파키아오(39)는 현역 선수이자 상원의원이다. 철권통치 중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파키아오가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던 호마리우 지 소자 파리아(51)는 2010년 하원의원, 201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 밖에 파키스탄의 ‘크리켓 영웅’ 임란 칸(65)은 96년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이라는 야당을 창당해 차기 총리 주자로 부상했다. 60~70년대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인기를 주도한 안토니오 이노키(74)는 89년 정치에 입문해 현재 참의원으로 활약 중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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