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준희 8개월 전 유기한 아빠, 아이 옷·생일 미역국 자작극

중앙일보

입력 2017.12.30 01:13

업데이트 2017.12.3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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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친딸인 고준희양의 시신을 지난 4월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고모씨가 29일 오전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친딸인 고준희양의 시신을 지난 4월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고모씨가 29일 오전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가 집에서 사라졌다’는 가족들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전북 전주에서 지난달 18일 실종된 줄 알았던 고준희(5)양은 이미 지난 4월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서 숨졌는지, 살해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준희양의 시신을 버린 건 아버지 고모(36)씨였다.

군산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
시신 옆엔 인형·장난감 놓여져

잡아떼던 친아버지 등 긴급 체포
“이혼소송 중 양육비 문제로 숨겨”
유기치사·학대치사 가능성 커

29일 전주 덕진경찰서에 따르면 준희양은 이날 오전 4시50분쯤 전북 군산시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른 무릎 깊이의 구덩이에 묻혀 있던 준희양의 시신은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시신 옆엔 준희양이 생전에 가지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고씨는 전날(28일) 오후 8시쯤 “지난 4월 27일 새벽 김모(61·여)씨 집에서 준희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군산의 한 야산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김씨는 고씨가 지난해 11월부터 함께 산 내연녀 이모(35)씨의 친모다. 고씨 등은 그동안 “지난 4월부터 김씨가 전주 집에서 준희를 보살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고씨는 경찰에서 “4월 26일 김씨에게 이튿날 준희의 병원 진료를 부탁하며 집에 맡겼다”고 했다. 그런데 야간근무를 마치고 27일 오전 1시쯤 전주시 인후동 김씨 집에 도착하니 준희양은 이미 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준희의 입에서는 토사물이 흘러 나왔고, 기도도 막혀 있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준희양의 시신을 김씨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과거에 가본 적이 있고 선산이기도 한 군산시 내초동 야산에 묻었다. 그는 “이혼소송 중인 전처가 딸(준희)이 죽은 것을 알면 (두 아들) 양육비를 더 달라고 할 것 같아 유기 사실을 숨겼다”고 말했다.

고씨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다. 준희양은 막내딸이다. 고씨의 초등학생 두 아들은 전처가 돌보고 있다. 고씨는 두 아들 양육비로 한 달에 100만원가량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고씨 등이 준희양 시신을 유기하는 데는 3시간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왕복 1시간40분, 시신을 암매장하는 데 걸린 1시간30분을 합친 시간이다. 경찰은 사체유기 혐의로 고씨와 김씨를 긴급 체포했다. 두 사람은 “(내연녀) 이씨는 범행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경찰은 이씨도 시신 유기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입건할 방침이다.

경찰은 고씨 등의 진술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그동안 거짓말탐지기 조사나 법최면 검사를 거부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이어서다. 고씨가 범행을 자백한 것도 경찰이 지난 22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차량 동선을 제시하자 겨우 실토했다고 한다.

고씨는 그동안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증거들을 조작했다. 양육비를 보낸 것처럼 매달 김씨에게 60만~70만원씩 입금하고, 준희양이 입던 옷과 장난감 등을 김씨 집에 갖다 놓았다. 김씨도 이웃들에게 “아이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며 귀가를 서두르거나 준희양 생일인 지난 7월 22일에는 미역국을 끓이기도 했다. 고씨 등 3명은 실종신고 전 모두 휴대전화를 바꿔 의혹을 키웠다.

당초 고씨는 “김씨가 지난달 18일 집을 비운 사이 준희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실종신고도 20일 뒤에야 했다. 경찰은 고씨와 내연녀가 언젠가는 준희양 실종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알리바이 등을 만든 이후 실종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5일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준희양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나 목격자는 없었다. 경찰은 김씨가 8개월간 한 번도 준희양을 데리고 외출하지 않은 점, 3월 이후 병원 진료 기록이 없는 점, 준희양의 칫솔 등에서 DNA가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고씨 등의 진술을 거짓으로 봤다.

경찰은 유기치사나 학대치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고씨 등이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까지 앓던 준희양을 방치하거나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추론이다. 준희양은 지난 2월 23일과 3월 19일 각각 이마와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학대 정황으로 보고 있다.

전주 덕진경찰서 김영근 수사과장은 “준희양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타살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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