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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대미술의 개척자 이병복 선생 별세

중앙일보

입력

29일 타계한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중앙포토]

29일 타계한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중앙포토]

한국 무대 미술의 선구자, 이병복 선생이 29일 별세했다. 90세.
1927년 경북 영천 만석꾼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선생은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연극반 활동을 통해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극단 ‘여인소극장’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피난지인 부산에서 남편 권옥연(1923∼2011) 화백을 만나 53년 결혼했다. 57년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선생은 의상과 조각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 충무로에서 의상실 ‘네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선생이 본격적인 연극인의 삶을 시작한 것은 66년 김정옥 연출가와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하면서였다. 2006년까지 40년 동안 극단 대표로 활동하면서 첫 작품 ‘따라지의 향연’을 비롯한 연극 200여 편의 무대미술과 의상을 책임졌다. 또 69년에는 소극장 운동의 효시로 꼽히는 ‘카페 떼아뜨르’를 개관해 75년 폐관할 때까지 실험적 예술운동을 펼쳤다.
생전의 선생은 스스로를 “뒷광대”라고 불렀지만, 한국 근ㆍ현대 연극사에서 최초로 무대미술과 무대의상의 개념을 정립한 연극계 '대모'다. 한지ㆍ삼베 등 전통 재료를 이용한 한국적 이미지를 무대에 형상화하는 등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했다. 한불문화협이사, 무대미술가협회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화관문화훈장,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동랑연극상,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유민영 연극평론가는 『한국 인물연극사』를 통해 선생을 “사실주의 무대미술을 한 차원 높인 예술무대의 거장”으로 평가했다. 2005년 선생은 공연 및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자료와 의상스케치ㆍ가면ㆍ미니어처 등 무대미술 자료 등 소장자료 2476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예술자료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족은 권유진(첼리스트)ㆍ이나(재불화가)씨 등 1남 1녀다. 빈소는 서울 고대안암병원, 발인은 1월 1일이다. 02-927-4404.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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