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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야산서 보자기에 싸인 채 주검으로 발견된 5세 준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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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완전범죄'는 없었다. 전북 전주에서 지난달 18일 집을 나가 실종된 줄 알았던 고준희(5)양은 이미 지난 4월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전주 덕진경찰서에 따르면 준희양은 이날 오전 4시50분쯤 전북 군산시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보자기에 싸인 상태였다. 정확한 사망 원인에 대해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준희양을 산에 버린 건 친부 고모(36)씨였다.

경찰, 전북 군산서 시신으로 발견 #친부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 #내연녀 어머니도 범행 가담 확인 #사망 시점은 4월 27일 새벽 추정 #실종일 등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

고씨는 전날(28일) 오후 8시쯤 경찰에서 "지난 4월 27일 새벽 2시쯤 전북 완주군 봉동읍 자택에서 딸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군산의 한 야산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준희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고씨와 그의 내연녀 이모(35)씨의 어머니 김모(61·여)씨 등 2명을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시신 유기 현장에 함께 있었던 혐의다.

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경찰은 이날 오전 5시30분쯤 고씨를 군산에서 전주 덕진경찰서로 압송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서에 도착한 고씨는 취재진의 물음에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 김영근 수사과장은 "그동안 (준희양의 행적이 입증된) 3월 30일부터 지난 8일까지 모은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친부 고씨의 범행을 밝혀냈다"며 "준희양의 정확한 사망 원인 및 시점, 타살 여부, 고씨의 범행 동기 및 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희양의 시신은 현재 전북경찰청 과학수사대에서 정밀 감식을 하고 있다.

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실종된 고준희(5)양의 시신을 버린 혐의(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친부 고모(36)씨가 29일 오전 5시30분쯤 전주 덕진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준희 기자

준희양 실종 사건은 처음부터 의혹투성이였다. 고씨는 내연녀 이모(35)씨와 함께 지난 8일 전주시 아중지구대에 "딸이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준희양은 이씨의 어머니 김모(61)씨가 전주시 우아동 한 빌라에서 돌봤는데, 김씨가 지난달 18일 집을 비운 사이 사라졌다는 게 고씨 등의 주장이었다. 고씨는 다섯 살배기 딸이 없어졌는데도 20일 뒤에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고씨와 내연녀 이씨가) 서로 크게 싸워 상대방이 준희를 데리고 있는 줄 알았다"는 '실종 아동 보호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단서를 못 찾자 실종 신고를 접수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8일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준희양의 행적을 추정할 만한 폐쇄회로TV(CCTV)나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준희양을 애타게 찾아야 할 고씨 등은 정작 경찰이 요구하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나 법최면 검사를 거부해 의혹을 키웠다. 수사에도 비협조적이었다. 경찰이 "고씨 등은 불리한 질문에는 아예 답변을 회피하거나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며 하소연할 정도였다.

지난달 18일 실종된 고준희양의 친부가 자신이 아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사진 전북경찰청]

지난달 18일 실종된 고준희양의 친부가 자신이 아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사진 전북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완주군의 한 회사에 다니는 고씨는 전처와 이혼 소송 중이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는데 준희양이 막내딸이다. 고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내연녀 이모씨와 이씨가 전남편과 낳은 아들(6)과 셋이 전북 완주군 봉동읍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다른 지역에 살던 친모(고씨 전처)가 지난 1월 준희양과 초등학생인 오빠 2명을 고씨의 아파트 경비실에 일방적으로 놔두고 가버리자 고씨가 준희양을 키우게 됐다. 두 아들은 다시 친모에게 데려다 줬다고 한다.

범행이 드러나기 전까지 고씨는 준희양이 한 살 위인 이씨 아들과 자주 다퉈 지난 4월 말 전주에 사는 이씨 어머니에게 양육을 맡겼다고 주장했다. 실제 고씨는 매달 김씨에게 양육비로 70만원씩 입금했다. 이미 준희양을 혼자 집에 내버려둔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된 김씨의 말과 행동도 수상했다. 김씨는 앞서 경찰 조사에서 "준희양을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집 밖에 데리고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소방대원들이 전주 아중저수지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고 있다. 김준희 기자

소방대원들이 전주 아중저수지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고 있다. 김준희 기자

경찰은 준희양이 지난달 18일 실종 직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씨의 전주시 우아동 집(빌라)에서도 준희양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감식 결과 아동용 칫솔과 치약 등 일부 물품 외에 준희양이 덮었던 이불이나 베개, 방바닥 등 집 내부에서는 준희양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공개한 감식 결과는 "11월 16일 김씨 집에서 딸아이(준희양)를 봤다"는 친부 고씨의 진술과도 정면으로 배치돼 주목을 끌었다.

김씨는 "지난 8월 30일 전주시 인후동 주택에서 우아동 빌라로 이사했다"고 했지만, 당시 김씨의 짐을 옮긴 이삿짐센터 직원은 경찰에서 "여자아이(준희양)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준희양이 맨 처음 지낸 것으로 알려진 김씨의 인후동 월셋집에서도 준희양의 DNA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관이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을 원룸 앞에 붙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경찰관이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을 원룸 앞에 붙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었다.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난 준희양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았다. 친모가 돌보던 때에는 전북대병원에서 2년간 30차례에 걸쳐 갑상선 및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1월 이후에는 병원에서 갑상선 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받은 기록이 없었다.

경찰은 준희양이 지난 2월 23일과 3월 19일 각각 이마와 머리가 찢어져 전주의 한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이때도 고씨는 "딸의 이마에 난 상처는 목욕탕(화장실) 휴지걸이에 부딪혀 생겼고, 머리는 책상 밑에서 놀다 물건에 부딪혀 찢어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시 수술을 맡은 의사의 소견을 빌려 "아동학대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고씨의 사체유기 혐의가 확인된 만큼 재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준희(5)양이 실종 직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주시 우아동 김모(61)씨 빌라. 김준희 기자

고준희(5)양이 실종 직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주시 우아동 김모(61)씨 빌라. 김준희 기자

경찰은 앞서 지난 22일 고씨의 자택 등 4곳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고씨와 내연녀 이씨, 이씨 어머니 김씨가 실종 신고 전인 지난 10월 31일과 지난달 14일 각각 전주의 같은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모두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 "보조금을 준다기에 바꿨다"고 했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증거 인멸'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

고씨 등은 본인들이 '준희가 실종됐다'고 주장한 지난달 18일부터 42일째 되는 날 덜미가 잡혔다. 아직까지 정확한 범행 동기나 경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그동안 경찰에서 한 준희양에 대한 모든 진술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꾸며낸 '추악한 소설'임이 드러났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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