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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암호화폐 ‘그라운드 제로’된 한국 … 비트코인 20배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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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거래소 설립 요건 강화 등 ?자율규제안?을 발표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거래소 설립 요건 강화 등 ?자율규제안?을 발표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올해 최고의 재테크 이슈는 암호화폐다. 수많은 암호화폐가 등장해 전세계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다. 투자 열풍은 암호화폐 가격을 끌어 올린 요인이다. 일부 암호화폐 가격은 연초 대비 20배 올랐다. 하지만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여전히 암호화폐가 ‘자산’인지, ‘결제 수단’인지 성격이 애매모호하다. 투자자 보호가 허술해 해킹과 같은 사고가 빈번하다. 국내에서는 이 때문에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도 나왔다. 마치 칼날 위를 걸어가는 듯한 아슬아슬한 암호화페 시장, 올 한 해의 이슈를 정리했다.

2017년 달군 암호화폐 이슈 #급등락 반복하며 꾸준한 상승세 #주부·학생까지 가세 ‘투자 광풍’ #해킹·거래소 파산 투자자들 피해 #시장 규모에 맞는 법·제도 정비를

① 1월 1일 비트코인 가격은 121만원

121만원. 2017년 1월 1일의 비트코인 가격이다.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은 몇몇 투자자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이 난 위험 자산에 속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2월 8일. 1비트코인당 가격은 2400만원을 돌파했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한 온라인 카페엔 “출근해서 비트코인을 산 뒤 점심을 마치고 나니 800만원의 수익이 생겼다”는 식의 ‘일확천금’ 게시글이 넘쳐났다.

암호화폐 열풍 속 20배 오른 비트코인 가격

암호화폐 열풍 속 20배 오른 비트코인 가격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암호화폐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마약거래나 다단계 같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 과열을 우려하며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대책 마련도 지시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서도 “암호화폐 투자로 인한 손실과 각종 사건·사고는 100% 투자자 책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② 일확천금 꿈 안고 ‘암호화폐 좀비’ 속출

금융당국의 경고성 메시지에도 암호화폐 광풍은 계속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은 급등·급락을 반복하면서도 전반적인 상승세를 유지했다.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와 주부들 사이에서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이 급속도로 퍼졌다.

투자자가 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암호화폐에 중독되는 ‘암호화폐 좀비’도 속출했다. 전세계에서 거래되다 보니 주식시장과는 다르게 24시간 휴장 없이 사고팔 수 있는데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탓에 생긴 현상이다. 대표적인 현상은 수시로 암호화폐 거래소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현재 가격을 확인하고 수익·손해를 계산하는 행동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을 통해 11월 한 달간 거래된 규모는 56조원이나 된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9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1.3%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답했다. ‘투자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4.2%(복수응답)는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적은 자본으로 투자가 가능해서’(47.8%),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 할 것 같아서’(30.8%), ‘투자 방법이 쉬워서’(25.4%)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③ 외신들도 ‘이상 투자열기’ 지적

잇따른 사건사고와 이슈

잇따른 사건사고와 이슈

비트코인 투자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에선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7일 "한국에서 비트코인 열풍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 투하지점)’가 됐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6일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1%가 원화로 결제됐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비트코인을 둘러싼 ‘태풍의 눈’이 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자기 체급(역량)보다 과한 펀치를 휘두른다(punches above its weight)”고 분석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주변에서 암호화폐로 큰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생기면서 그에 따라가는 ‘동조현상’이 일어난다. 한편으론 장기 저금리 시대를 거치며 일반 서민 입장에서 투자할 곳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의 ‘투기성’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열풍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시장 모두 신산업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관련 제도와 법체계가 정비되는 속도에 비해 시장이 커지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암호화폐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하루에도 수천억원~수조원이 거래되는데도 거래소의 법적 실체는 통신판매업자다. 금융업이 아니다. 사업자 등록증을 가지고 구청 등에 신고만 하면 영업할 수 있다. 금융업 수준의 보안이나 투자자 보호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30여 개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난립하는 이유다.

④ 곪아온 상처 잇따라 터져

정부와 관련당국의 규제책 미비와 수준 이하의 거래소 보안 실태 등의 복합적인 문제는 결국 ‘거래소 파산’으로 귀결됐다. 암호화폐 광풍이 한창이던 지난 19일 거래소 유빗은 해킹 공격으로 전체 암호화폐 자산의 17%를 빼앗겼다. 이후 암호화폐 및 현금 입·출금을 전면 정지한다는 내용의 긴급 공지문을 올려 파산을 선언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해킹 공격은 지난 1년간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지난 9월엔 코인이즈에서 21억원 규모 암호화폐 탈취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파산한 유빗(당시 야피존)의 경우 지난 4월 해킹으로 55억원 가량의 암호화폐를 도난당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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