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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KTX시대] '동해가 지척', 오산 담현네 가족 당일 나들이

중앙일보

입력

지난 22일 개통한 경강선 KTX로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14분만에 갈 수 있게 됐다. 개통 첫날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 22일 개통한 경강선 KTX로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14분만에 갈 수 있게 됐다. 개통 첫날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서울역~강릉역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KTX) 개통 첫날인 지난 22일 직접 타봤다. 인천 월미도 등 서해가 친숙한 수도권 주민 입장에서 강릉 KTX 시대를 실감해보려는 이유에서다. 아내 이양희(37)와 아들 담현(3)이도 함께 했다.

서울~강원 잇는 경강선 KTX개통 첫날 타봐 #전날 예매 때 대부분 표 매진...인기 실감 #주말 4시간가량 차 끌고 가던 길 절반으로 #서해 선호 수도권 주민, 동해여행 늘어날 듯 # #감자옹심이, 초당순두부, 해산물 등 미식여행 #강릉시내서 택시로 오죽헌, 경포대 이동편해 #전통시장선 닭강정, 아이스크림호떡 등 만나 #숙박업소 울상이지만 지역경제 효과 기대돼 #

이날 오전 9시50분 서울역에 도착했다. 경기도 오산 수청동 집에서 이곳까지는 1호선 전철을 이용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강릉행 KTX(산천 811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승객들이 눈에 띄었다. KTX 차량 외부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의 ‘반디랑 수호랑’이 그려져 있었다. 둘은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 마스코트다.

경강선 KTX개통 첫날인 22일 0시34분 확인한 예매 상황. 대부분 매진이다. 김민욱 기자

경강선 KTX개통 첫날인 22일 0시34분 확인한 예매 상황. 대부분 매진이다. 김민욱 기자

전날 오후 3시쯤 기존 예매표를 취소하고 앞선 출발시각으로 새로 끊다 보니 좌석이 각각 떨어져 있었다. 나란히 앉는 좌석이 매진돼서다. 평일인데도 그만큼 인기다. 10시 1분 정시. 강릉행 KTX는 선로를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승객들은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고, 호두과자를 나눠 먹으며 ‘첫 여정’을 즐겼다.

경강선 KTX노선도. [자료 국토교통부]

경강선 KTX노선도. [자료 국토교통부]

서울역부터 강릉역까지 거리는 222.7㎞. 운행시간은 114분, 운임은 성인기준으로 2만7600원(특실 3만8600원·입석 2만3500원)이다. 올해 초 강릉 경포 해변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오산 집에서 강릉역까지 거리는 222.3㎞다. 경강선 KTX 운행 거리와 비슷하지만, 교통체증에 휴게소에 잠시 들린 시간까지 포함하면 가는 길만 4시간 30분 이상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망적인 어촌 풍경. 김민욱 기자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망적인 어촌 풍경. 김민욱 기자

KTX 개통 전 동해는 그렇게 ‘큰마음’ 먹고 가는 여행지였다. 한 번 가려면 심리·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동시간이 상당하다 보니 못해도 1박 2일 일정이다. 3인 가족 기준으로 왕복 기름값에 고속도로 통행료, 숙박비만 벌써 최소 30만원가량이다. 여기에 식비까지 더하면 50만원이 금세 사라진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인천 월미도나 충남 태안·화성 궁평항 등 서해가 더 친근했다. 하지만 이제 주말과 휴일에도 동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졌다. 오산에서 서울역까지 전철로 76분이 걸리지만,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니 피로감이 다르다. 새해 첫날 서울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강릉 경포 해변에서 일출을 보는 시대다.

경포대 일출모습. KTX개통으로 보다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 [사진 강릉시]

경포대 일출모습. KTX개통으로 보다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 [사진 강릉시]

KTX 객실 내 모니터에서 ‘운행시간 114분’이라는 정보가 나오자 아내는 “신기하네. 신기해”라고 말했다.
기차를 워낙 좋아하는 아들은 연신 “좋아, 좋아”라고 외쳤다.

강원 지역에 신설된 6개 역 주변으로도 볼거리도 풍성하다. 원주 만종역(박경리 문학공원·한지테마파크 등), 횡성역(풍수원성당·우천 한우타운 등), 둔내역(안흥 찐빵마을·청태산 휴양림 등) 등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겨울 바다를 보려 종착역인 강릉행을 택했다. 차창 밖으로 설원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경강선 KTX 강릉역 모습. 경포해변이나 오죽헌 등 관광지가 근거리라 택시를 이용해도 큰 부담 없다. 김민욱 기자

경강선 KTX 강릉역 모습. 경포해변이나 오죽헌 등 관광지가 근거리라 택시를 이용해도 큰 부담 없다. 김민욱 기자

오전 11시58분 강릉역에 도착했다. 강원지역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차한 승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역사 안 대합실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물이 곳곳에 걸려 올림픽이 다가왔음을 실감 나게 했다.

강릉 안에서 이동은 렌터카 대신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개통에 따른 지역 민심도 듣고, 맛집 정보도 얻기 위해서다. 푸른 강릉 바닷가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강릉 시내에 위치한 감자옹심이 요리를 추천받았다. 아내와 아들이 회를 좋아하지 않아 그곳으로 이동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지난달 모 미식 토크를 주제로 한 인기 프로그램에 방영됐다고 한다.


감자옹심이 칼국수(7000원), 감자송편(4000원)을 주문했다. 감자옹심이가 입맛에 혹시 안 맞을지 몰라 순감자옹심이(8000원)는 주문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손으로 반죽한 면과 함께 동글동글한 옹심이가 들어 있었다.

옹심이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데 씹을수록 아삭거렸다. 감자 향이 느껴졌다. 순감자옹심이를 주문하지 않은 것을 곧 후회했다. 감자 송편은 쫀득거림과 어우러진 단팥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 가족 기준으로 맛집은 ‘친구나 가족에게 추천해줄 만한 곳’이냐다. 아들 담현이는 “맛있어?”라는 질문에 엄지를 척하니 세웠다.

따뜻한 음식으로 배도 채웠으니 경포 해변으로 향하기로 했다. 해변까지는 6.5㎞다. 역시 택시를 이용했다. 50대 중반의 택시기사는 목적지를 이야기하니 “KTX를 타고 왔냐, 당일치기 여행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하니 당일 여행으로 숙박업소들의 우려가 상당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해줬다. 오른편이 스피드스케이팅·아이스하키 경기 등이 열리는 ‘올림픽 파크’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온 시민들이 겨울바다를 즐기고 있다. 김민욱 기자

서울에서 KTX를 타고 온 시민들이 겨울바다를 즐기고 있다. 김민욱 기자

잠시 후 경포 해변에 도착했다. 이미 오륜기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이 상당수다. 물어보니 역시나 오전에 서울역·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왔다고 했다. 조형물 뒤로는 푸른 빛의 드넓은 동해가 펼쳐졌다. 먼바다는 진한 푸른색이었다. 가까운 바다는 그에 반해 연했다. 층층의 푸른색이다. 서해와는 전혀 다른 바다다. “쏴아~ 쏴아~” 잔잔하면서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준다. 아이들은 조개 줍기에 푹 빠졌다.

경포 해변에는 걷기 좋은 600여m의 소나무길이 있다. 소나무길 맞은편으로 횟집이 즐비하다. 회를 좋아하는 관광객이라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해도 좋을 듯싶다. 소나무길은 현재 데크 공사 중이다.

강릉시 내 대표 문화유적지이자 관광지인 오죽헌. 김민욱 기자

강릉시 내 대표 문화유적지이자 관광지인 오죽헌. 김민욱 기자

매서운 겨울바람을 타고 경포 해변 인근의 오죽헌(烏竹軒)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죽헌은 조선 중기의 여류예술가인 신사임당(1504∼1551)과 그의 아들인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곳이다.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아 보물 165호로 지정됐다.

오죽헌 옆 율곡기념관에 전시 중인 신사임당의 작품인 수박과 석죽화(사진 오른쪽)과 꽈리와 잠자리. 복제품이다. 김민욱 기자

오죽헌 옆 율곡기념관에 전시 중인 신사임당의 작품인 수박과 석죽화(사진 오른쪽)과 꽈리와 잠자리. 복제품이다. 김민욱 기자

곧게 뻗은 대나무와 함께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 율곡의 유품소장각인 어제각, 율곡의 저서와 신사임당의 작품이 전시 중인 율곡기념관을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 기념품점에는 평창올림픽 공식 기념품도 만날 수 있다. 흔들면 수호랑 위로 눈이 내리는 스노우볼을 샀다.

오죽헌 주변에는 조선말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 허난설헌·허균 생가터도 자리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초당순두부 마을이 먹을거리 장소로 유명하다. 선교장, 초당순두부 등은 다음 당일치기 여행으로 기약하고 오후 7시30분 서울 청량리행 열차를 타야 해 강릉역 주변 전통시장을 택했다.

중앙시장은 과거부터 영동지방 어류와 농작물의 집산지로 통했다고 한다. 매끈한 양미리, 구워 먹기 좋은 알 밴 도루묵, 탕 요리가 일품인 못생긴 도치 등이 인기라도 한다. 우리 가족은 강릉까지 왔으니 마른오징어를 살 심산이었다. 상(上)품 10마리가 3만원~3만5000원이다. 한 마리가 제법 크다. 오징어 말고도 코다리도 인기다.

강릉 중앙시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오징어. 김민욱 기자

강릉 중앙시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오징어. 김민욱 기자

중앙시장 안에는 닭강정·소머리국밥 골목 등이 있다. 닭강정 골목에는 새콤달콤한 닭강정을 구매하려는 관광객들이 이미 긴 줄을 섰다. 소머리국밥 골목 안 솥에서는 김이 펄펄 나 허기진 관광객을 유혹한다. 중앙시장 안 간단한 먹을거리 중에는 아이스크림 호떡도 추천한다. 아이스크림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호떡을 올려준다. 중앙시장 인근 B동네빵집은 상당히 입소문 난 곳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야채빵이 으뜸이다. 강릉 여행 시 여유가 있다면 안목항 커피 거리도 추천한다.

강릉역 야간 경관 모습. 조명이 다음에 또 오라는 듯 유혹한다. 김민욱 기자

강릉역 야간 경관 모습. 조명이 다음에 또 오라는 듯 유혹한다. 김민욱 기자

강릉에서 구입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품. 마스코트 수호랑 위로 눈이 내리는 스노우볼이다. 김민욱 기자

강릉에서 구입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품. 마스코트 수호랑 위로 눈이 내리는 스노우볼이다. 김민욱 기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릉역에서 청량리행 KTX에 몸을 실었다. 객차 안 승객들 손에는 강릉 커피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싱싱한 횟감 안주에 곁들인 술기운에 얼굴이 뻘건 승객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당일치기 강릉 여행이 저물었다.

강릉=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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