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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머리·이마 꿰맨 준희양, 사진에선 왜 멀쩡할까

중앙일보

입력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사진 전주 덕진경찰서]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사진 전주 덕진경찰서]

'두뇌싸움'이 치열하다. 누군가는 진실을 감추려 하고, 누군가는 밝히려 해서다.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고준희(5)양 실종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2월과 3월 두 차례 병원서 봉합수술 #친부 "휴지걸이에 부딪혀 찢어졌다" #비슷한 시기 찍었다는 전단 속 사진 #흉터 전혀 안 보여 촬영시점 의구심 #경찰 "피부 재생 빨라 안 보일 수도" #갑상선 장애지만 1년간 약 못 먹어 #전문가 "지능·신체 기능저하" 우려

경찰은 이미 범죄에 의한 실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가족의 주장을 오롯이 믿더라도 다섯 살배기 준희양은 지난달 18일 집에서 사라진 지 28일로서 41일째 행방이 묘연하다.

원룸 앞에 붙은 고준희(5)양 실종 전단. 김준희 기자

원룸 앞에 붙은 고준희(5)양 실종 전단. 김준희 기자

준희양은 지난 4월부터 실종 직전까지 부모가 아닌 남의 집에서 지냈다. 친부 고모(36)씨의 내연녀 이모(35)씨의 어머니 김모(61)씨와 단둘이 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준희양의 행적을 짐작할 만한 폐쇄회로TV(CCTV)나 목격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 3월 30일 '준희양을 봤다'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진술을 준희양에 대한 '마지막 객관적 자료'로 보고 최대 지난 4월부터 실종 일수를 다시 계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준희양을 찾는 실종 전단 속 사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최근 "준희양이 지난 2월 23일, 3월 19일 각각 이마와 머리가 찢어져 전주의 한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전단 속 준희양의 사진에선 꿰맨 자국이나 흉터가 보이지 않아서다. 친부 고씨는 경찰에서 "딸의 이마에 난 상처는 목욕탕(화장실) 휴지걸이에 부딪혀 생겼고, 머리는 책상 밑에서 놀다 물건에 부딪혀 찢어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기 위해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기린봉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기 위해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기린봉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종 직전까지 준희양을 돌봤다고 주장하는 김씨와 친부 고씨조차 지난 3월 이후 아이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전단 사진은 준희양의 가장 최근 모습이다. 경찰은 그동안 "실종 전단에 있는 사진 2장은 내연녀 이씨가 지난 2, 3월께 본인 스마트폰으로 준희양을 찍은 것을 실종 신고 당시 경찰에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친부 고씨와 내연녀 이씨, 이씨 어머니 김씨는 실종 신고 전인 지난 10월 31일과 지난달 14일 각각 전주의 같은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모두 바꿨다. 경찰은 "이씨가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에 있던 준희양 사진 등 자료를 새 휴대전화로 옮겼지만, 정확한 촬영 날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고준희(5)양이 실종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주시 우아동 한 빌라. 김준희 기자

고준희(5)양이 실종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주시 우아동 한 빌라. 김준희 기자

공교롭게도 이씨가 준희양을 찍었다는 2~3월은 준희양이 이른바 창상(創傷·칼 등 예리한 연장에 의해 다친 깊은 상처)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시기와 겹친다. 이때는 준희양이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친부 고씨의 아파트에서 고씨의 내연녀 이씨와 이씨의 아들(6)과 함께 살던 무렵이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전단 사진에서 준희양의 상처를 찾기 힘들다.

이씨가 실제 2~3월에 준희양을 찍었을지 의심이 드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 김영근 수사과장은 "벌어진 상처를 몇 바늘 꿰맨 것이어서 작은 상처가 아니다"면서도 "아이들은 피부 재생이 빠르고, 이마를 먼저 다쳤는지 머리가 먼저 다쳤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사진상으로는 상처가 안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전주시 우아동 아중저수지에서 고무보트를 탄 소방대원들이 고준희(5)양을 찾고 있다. 김준희 기자

지난 18일 전주시 우아동 아중저수지에서 고무보트를 탄 소방대원들이 고준희(5)양을 찾고 있다. 김준희 기자

'학대를 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김 과장은 "준희양을 수술한 의사를 서너 차례 직접 면담했는데 '폭행이나 학대로 인한 상처인지, 스스로 넘어지거나 물건에 부딪혀 생긴 상처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학대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 학대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서 준희양의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까지 앓던 준희양은 지난 1월 이후 병원에서 갑상선 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받은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앞서 고씨와 이혼 소송 중인 친모가 초등학생 오빠 둘과 함께 준희양을 돌볼 때는 전북대병원에서 2년간 모두 30차례에 걸쳐 갑상선 및 재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한 경찰관이 고준희(5)양을 찾는 전단을 원룸 앞에 붙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한 경찰관이 고준희(5)양을 찾는 전단을 원룸 앞에 붙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란 '갑상선에서 갑상선 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체내에 갑상선 호르몬 농도가 저하되거나 결핍된 상태'를 말한다. 갑상선 호르몬은 체온 유지와 신진대사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아동의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경우 정신지체 및 작은 키의 원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는 아동이 갑상선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먹지 못하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등 무기력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약을 1년간 복용하지 못한) 준희양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덕진경찰서 측은 "친모에게 확인했는데 '갑상선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당장) 잘못되지는 않는다'고 하고, 의사를 통해서도 확인한 바 없다"고 밝혔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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