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명량대첩 때 이순신의 배는 12척 아니라 7척?

중앙일보

입력 2017.12.28 04:00

업데이트 2018.01.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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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3) 

“…싸움에서 패했다는 보고가 도성으로 들어가자 이순신을 옥중에서 나오게 해 다시 통제사에 임명했다. 공(公)은 단지 약간의 군관을 거느리고 전라도로 가 패잔병을 수습해 7척의 배와 1000여 명의 군사를 얻어 진도 벽파정 나루 입구에 진을 쳤다. 기세를 탄 적들이 장차 서해를 치려고 갑자기 모든 전력을 이끌고 돛을 올리니 망망대해에 물결은 보이지 않았다. 공은 말소리나 얼굴빛이 동요되지 않았다. 당시에 피난 가려는 사대부의 배 수십 척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다. 공이 그들을 불러 말하기를 ‘적의 기세가 저러하니 당신들도 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오. 차라리 내 부탁을 들어주고 내가 크게 싸우는 것을 구경하시오’라고 하니 모두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침내 그들에게 깃발과 북을 주고 말하기를 ‘당신들이 항구 쪽에서 장사진을 치고, 배에는 각자 깃발을 꽂고 북을 울리면서 싸움을 돕는 것처럼 해 주시오. 그러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고 했다….”

대구 팔공산 자수박물관 정재환 관장
병풍 손질하다 필사본 종이뭉치 발견
임진왜란의 새 진실 밝혀지길 기대

피난가는 사대부 전투에 끌어들인 내용도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관련한 이 기록은 최근 대구에서 새로 발굴된 것이다. 내용은 그동안 『징비록』이나 『난중일기』에 나온 자료와 조금씩 다르다. 이순신에게 남은 배는 12척이 아닌 7척이다. 피난 가려고 대기 중인 사대부를 전투에 끌어들이는 전략도 나온다. 물론 이 자료의 가치 등은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 내용만큼 흥미로운 것은 이 자료가 발굴된 과정이다.

이 자료를 찾아낸 사람은 대구 팔공산 자수박물관 정재환(65) 관장. 그는 대구에서 평생 글씨와 그림 등으로 병풍을 만드는 표구를 해 왔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만든 병풍을 보여 주는 자수박물관 정재환 관장. [사진 송의호]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만든 병풍을 보여 주는 자수박물관 정재환 관장. [사진 송의호]

정 관장은 최근 오래된 병풍을 손질하다가 뒷면에 범상치 않은 글씨로 빼곡히 써 내린 필사본 서책을 뜯어 붙인 종이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한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병풍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방식이다. 제사 등 집안 행사의 필수품인 병풍은 오래 보전해야 할 양반가의 소중한 기물이다. 그래서 병풍을 만들 때는 뒷면에 통상 종이를 3겹 이상 덧대 오래 견디도록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종이가 귀해 병풍에 덧대는 소재로 서책을 뜯어 붙이는 경우가 흔했어요. 붙여진 종이에 쓰인 내용이 가끔 귀한 자료로 밝혀집니다. 이번 자료엔 내용 중에 ‘이순신’ ‘허균’ 등이 나와 한 장씩 조심스레 뜯었지요.”

오래 된 병풍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뒷면에 붙어 있는 필사 자료. ‘임란잡록’(가칭)도 한 장 한 장이 이런 방식으로 배접(褙接)돼 있었다. [사진 송의호]

오래 된 병풍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뒷면에 붙어 있는 필사 자료. ‘임란잡록’(가칭)도 한 장 한 장이 이런 방식으로 배접(褙接)돼 있었다. [사진 송의호]

병풍 속 ‘타임캡슐’ 

그가 뜯어낸 종이는 무려 56장 112쪽이나 됐다. 반듯한 해서체다. 병풍 하나의 뒷면에서 책 한 권 분량이 나온 것이다. 병풍 속에 넣은 역사의 또 하나 ‘타임캡슐’이다. 조상의 기록물이 담긴 대표적인 타임캡슐은 불상 속에 든 이른바 ‘불복장(佛腹藏)’ 유물이다. ‘석보상절’ ‘월인석보’ 등이 상당수 여기서 발굴됐다.

병풍 뒷면에 배접된 종이를 하나씩 떼어내 순서대로 다시 엮은 필사본 '임란잡록'. [사진 송의호]

병풍 뒷면에 배접된 종이를 하나씩 떼어내 순서대로 다시 엮은 필사본 '임란잡록'. [사진 송의호]

정 관장은 곧바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뜯어낸 자료의 국역을 추진했다. 중문학을 전공한 강신웅(75) 경상대 명예교수가 국역을 맡았다.

“뜯긴 책이라 순서를 알아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내용은 조선 선조부터 광해군 시기까지 궁궐 안팎의 주요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적힌 사실이나 가치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합니다. 글을 쓴 사람이 밝혀져 있지 않은데 문장 수준이나 필체로 보아 당대의 상당한 지위에 올랐던 이가 쓴 게 분명해요.”

정재환 관장이 병풍에서 떼어낸 각종 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송의호]

정재환 관장이 병풍에서 떼어낸 각종 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송의호]

‘역사의 퍼즐’이 병풍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쩌면 필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알았던 당대의 기밀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병풍 속에 감추도록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 교수는 이 자료에 ‘임진별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시문 등이 등장해 다시 ‘임진잡록’으로 고쳤다. 병풍 속에서 42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타임캡슐이 그동안 가려진 임진왜란의 진실 등을 새로 밝히는 역사의 햇살을 기다릴지 모른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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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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