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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안부 합의, 협상도 경위 조사도 잘못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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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놓고 5개월간 진행된 태스크포스(TF)의 검토 결과가 27일 공개됐다. 뚜껑을 열어 보니 피해자 중심주의를 소홀히 하는 등 협상 과정에서의 실책들이 발견됐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합의 내용을 알려준 뒤 동의를 얻는 데 얼마나 시간이 든다고 70년도 더 된 문제를 그렇게 급히 매듭지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피해자 동의 없이 합의한 건 큰 실책 #조사 명분으로 외교문서 공개도 잘못 #한·일 관계에 악영향 없게 신경 써야

‘불가역적 해결’이란 표현이 들어가게 된 경위도 어이없다. 당초 우리 외교부가 요구했던 ‘사죄의 불가역성’은 협상 과정에서 ‘해결의 불가역성’으로 둔갑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위안부 TF가 또 다른 문제로 지적한 비공개 부분의 존재 및 고위급 협의를 통한 해결 등은 왜 잘못된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무릇 외교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바람을 이루려면 상대의 거북한 요구도 들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은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국가 간 합의는 양국의 외교 담당 부서에서 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일수록 외교 부처가 처리하기엔 벅차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 간의 협상을 통해 성사됐다고 합의 자체를 비난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정작 큰 문제는 경위 조사란 이름으로 외교상 넘어선 안 될 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비밀에 부쳐야 할 외교문서가 2년 만에 까발려졌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는 물론, 향후 모든 정권의 외교에 큰 짐이 될 게 분명하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나라가 한국 정부를 믿고 비밀스러운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미 위안부 TF의 조사 결과는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앞으로가 문제란 얘기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일로 한·일 관계가 더 얼어붙을 것이란 점이다. 외교 관례를 깨고 비공개 부분까지 공개한 것은 아베 정권으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기존 합의를 뒤집는다면 한·일 관계가 관리 불능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아베 정권은 이미 “한국에 끈질기게 합의 이행을 요구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북핵 위협을 일본과 함께 풀어야 할 우리 입장에선 아베 정권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이번 발표가 양국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상책이다. 당국은 이번 발표를 토대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반영해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무시했다는 뒷말이 없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심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국익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