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고] "해외 전자자료가 대학도서관 위기의 원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 도서관이 위기에 빠졌다. 연구자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자주 오지도 않고, 열람실 이용자도 줄고 있다. 그래서 위기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각종 논문과 서적을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전자자료로 볼 수 있는 마당에 도서관 방문 감소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현상이다. 위기의 원인은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해외 전자자료 구독료의 지나친 인상 요구, 지금 우리 도서관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종이에 인쇄된 자료를 전자자료가 대체하고 있으니 전자자료 구독료 상승은 얼핏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전자자료의 구독료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대학도서관도 함께 겪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도서관 예산보다 전자자료 구독료가 훨씬 가파르게 상승했고, 급기야 도서관이 일부 자료 구독 중지를 우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은 이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4년제 대학 기준 대학도서관 예산 총액은 2012년 2365억원이었던 것이 2016년에는 2270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전자자료 구독료는 왜 빠르게 증가할까?
해외 대형출판사의 가격인상 요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전자자료 저작권은 현재 몇몇 해외 대형출판사가 집중 보유하고 있다. 시장지배력을 지렛대 삼아 가격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내 주요대학 도서관이 해외 전자자료 구독에 지출한 비중은 2016년 현재 총 예산의 95%를 상회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전자자료 구독은 5%도 되지 않는다. 해외 대형 출판사는 다양한 자료를 묶음판매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어쩔 수 없이 구독해야만 하는 국내 도서관의 취약한 현실이 통계에 잘 나타나고 있다.

대학도서관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정부는 본의 아니게 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연구재단이 고수하는 학술지 등재제도가 대표적 사례다. 학술지를 국외와 국내로 나누고 여러 등급으로 서열화하는 것이 이 제도의 특징이다.

문제는 연구재단이 높게 평가하는 국제학술지 대부분을 대형 출판사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재단의 등재제도와 이를 기계적으로 차용하는 대학의 연구업적평가로 대형 출판사에 대한 종속이 설상가상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형 출판사의 가격인상 요구 이면에는 학술연구자의 무지와 침묵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자료를 볼 때 도서관이 실제 지불한 비용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등록금 일부가 자료구입에 사용되고 있지만 일부 학생들은 자료 이용이 무료라고 착각하기조차 한다. 도서관 입장에서도 정보가 절대 부족하다. 비용을 감안할 때 어떤 자료가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해당 영역에 대한 사서의 전문성이 연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학술연구자의 무관심 때문에 수요를 파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도서관 위기의 해결은 학술연구자의 각성과 목소리에 달려 있다. 우선 대형출판사 제공 자료에 도서관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인지 공개할 필요가 있다. 대형 출판사의 전자자료 묶음판매 가격은 통상 비밀을 계약조건으로 한다. 미국의 경우 대다수 주가 채택한 공개정보법(open record law)이 비밀 엄수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주립대학 도서관의 계약조건을 공개하는 운동이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학술지의 목록을 공개하여 해당 학술지의 구독을 거부하거나, 학자들이 스스로 해당 학술지의 논문심사를 거부하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우리 학술연구자와 도서관도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때다. 도서관 예산 압박의 근원이 되는 전자구독료의 인상의 실체를 공개하고 학생들의 등록금에 전가되는 부담을 알려야 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정부가 아니라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학술연구자가 나서야 한다. 도서관은 연구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이용가치에 상응하는 구독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독점 출판사의 지배력 남용은 이미 먼 외국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학계에 다가온 현실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권재현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조교수‧경제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