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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녹음파일도 증거자료로 인정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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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10) 

은퇴한 A는 창업 2년 만에 연 매출 30억원이 넘는 프랜차이즈 기업을 일구었다. 아직까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서울 지역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주요 타깃계층인 20대 소비자의 입맛을 완벽하게 사로잡았고, 가맹점주들의 반응도 뜨겁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매일 전국 각지에서 프랜차이즈 가맹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는 상황이다.

구두합의시에는 반드시 증거자료 남겨야 #계약서가 최선, 이메일·메시지·녹취록도 유효해

프랜차이즈 가맹점.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중앙포토]

프랜차이즈 가맹점. (내용과 관련없는 사진) [중앙포토]

마침 A의 지인 B가 정식으로 A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혀왔다. B는 수년 전 PC방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국적으로 벌여 돈을 크게 벌었는데, 이를 매각한 뒤 프랜차이즈 기업의 이사이자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B는 자신의 역량을 동원해 A의 사업을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확장하고 중국까지 진출한다는 멋진 청사진을 제시했다.

A로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프랜차이즈 사업 경험이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아 성공이 기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인사이트가 있으면서 성공적인 매각 경험을 가진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B는 A의 이러한 니즈를 정확히 간파하고 거절하기 힘든 투자 제안을 한 것.

하지만 협상 초보자가 아닌 A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B에게 이야기했다. “이사님같이 업계에서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 이런 제안을 해주시니 우리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만 몇몇 기업으로부터 현재 투자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2주 정도의 시간을 주시면 종합적으로 고려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의 이 한마디에는 B에 대한 인정,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 확보, 다른 대안이 있다는 암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A는 2주간의 시간 동안 지금까지 투자를 제안했던 세 군데 업체를 꼼꼼히 비교해보았다. 여러 가지로 봤을 때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투자자는 역시 B라는 생각이 들었다.

B와의 미팅. B는 A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투자를 집행한 뒤 2년 내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성장시켜 매각까지 진행하겠다며 구체적인 매각 예상금액까지 언급했다. 이 밖에도 A의 사업에서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며 이의 솔루션까지 제안했다.

구두 합의 파기한 B, 헛물 켠 A

투자계약 미팅. [사진 Freepik]

투자계약 미팅. [사진 Freepik]

미팅 후 A는 확신이 생겼다. ‘B의 투자를 받자. 그게 회사를 위해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다.’ A는 B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자들에게 차례로 연락해 투자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B와의 투자계약 협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B에게 투자계약의 구체적인 조건을 논의하기 위한 미팅을 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B는 현재 말레이시아 출장 중이어서 컨퍼런스콜 방식으로 미팅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렇게 2주 동안 수차례에 걸쳐 컨퍼런스콜을 진행한 결과 앞으로 2달 이내에 5억원, 그 후 6개월 이내에 추가로 5억원을 투자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A는 B에게 구체적인 조건이 모두 정리되었으니 말레이시아 출장이 끝나는 대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말했다. B는 출장이 생각보다 길어 져 10여일 뒤에는 귀국할 것이니 그때 계약을 체결하자고 대답했다. A는 B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10억원의 투자를 받으면 향후 어떤 식으로 회사를 운영할지를 놓고 TFT를 구성해 매일 기획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평소 함께 일하고 싶었던 프랜차이즈 전문가들을 접촉해 입사제의를 했다.

B가 귀국하기로 한 시점이 됐지만, 그로부터 어떤 연락도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해외로밍이라고 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시네요. 메시지 확인하시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평소 B에게 카카오톡을 남기면 즉각 회신이 왔지만, 이번에는 이틀이 넘도록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늦은 밤 카카오톡으로 B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표님,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투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귀국 후 적절한 시점에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투자 제안 파기. [사진 Freepik]

투자 제안 파기. [사진 Freepik]

그야말로 청천벽력! 지인인 변호사에게 급하게 연락했다. 상대방이 계약체결을 하겠다고 확답을 하고 계약조건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증거를 우선 찾아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B가 해외에 있어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컨퍼런스콜로 진행하는 바람에 문서로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메일을 샅샅이 뒤져도 B가 “계약 체결을 하겠다”라는 언급을 하거나 A 자신이 계약 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메일이 없었다. 심지어 카카오톡 메신저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참담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이 흘렀다. ‘최악의 경우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어떻게 해야 하나. 법적 대응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은 다 어떻게 하나. 이건 때문에 다른 투자자들도 다 떠나갔는데.’

협상은 서로 간 이익이 되는 합의점을 찾기 위한 의사소통 과정이다. 그리고 협상의 목표인 합의를 얻게 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계약서나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그럼 과연 위 사례와 같이 상호 간 구두로 합의한 사항도 합의로 인정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구두 합의도 이를 입증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합의의 효력이 있고 상대에게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회의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두 합의를 했다면, 이메일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상대방에게 발송하고 그 내용이 정확한지 확인 및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구두 합의 내용 정리해 이메일로 보냈어야

음성녹음. [중앙포토]

음성녹음. [중앙포토]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은 증거자료로서 효력이 있을까? 녹음 파일도 증거자료로서 인정된다. 실제로 재판을 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후 이를 녹취록의 형태로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본인이 대화 참여자일 경우 녹음 사실에 대해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A가 B와 수차례 컨퍼런스콜을 한 내용을 녹음해두었다가 이를 녹취록의 형태로 만들면 구두 합의의 효력을 적극적으로 주장해볼 여지가 있다. 다만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자신이 대화 당사자로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나아가 만약 A가 조금 더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였다면 계약의 주요 조건에 합의가 된 상태에서 ‘텀쉿(Term-Sheet)’이나 중간합의서 등을 작성, 당사자들의 사인을 받아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은 협상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

협상의 고수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는다. 협상을 실컷 해두고 낭패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협상의 과정과 최종 결과물을 객관적 증거자료로 남겨 두어야 한다. 계약서의 형태면 최선이고, 이것이 힘들다면 이메일·메시지·녹취록의 형태로라도 이를 입증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현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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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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