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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단열재 만들면 징역3년·벌금5억…현장에서 잘 적용돼야

중앙일보

입력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상가건물에서 불길과 연기가 옥상 위로 치솟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상가건물에서 불길과 연기가 옥상 위로 치솟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5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유흥가. 한 7층짜리 상가건물 2층 C 노래방에 들어가니 카운터 쪽에 화재 수신기(자동화재탐지설비)가 설치돼 있었다. 룸 안에 설치된 개별 감지기가 화재 때 발생하는 열과 연기를 감지, 화재수신기로 정보를 보내면 ‘경고음’을 낸다. 노래방과 목욕탕, 기숙사 등은 소방시설법 시행령상 특정소방대상물이다. 화재수신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 노래방은 50대 중반의 여주인이 혼자 경영한다. 자칫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불이라도 난다면 화재수신기의 경고음을 듣기가 어렵다. 이 경우 초기 화재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해 인명ㆍ재산피해를 키울 수 있다. 미로 같은 구조의 노래방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속수무책으로 화마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잇단 대형 화재속 소방 관련 법안 줄줄이 국회서 낮잠 #소방차 막는 불법주차 방지 도로교통법개정안 9개월째 국회에 #건물 관리자에 자동으로 경고신호 보내는 법안도 1년째 낮잠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관련법 처리속도 높이겠다" #전문가들 "법 개정뿐 아니라 철저한 실행, 성숙한 시민의식 함께 필요" #행안부·건설교통부 최근 단열재 부실시공 방지 대책 발표

2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충북 제천 복합상가 건물 화재 사고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에서 25일 고인들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충북 제천 복합상가 건물 화재 사고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에서 25일 고인들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목욕탕ㆍ노래방처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 불이 났을 경우 관리자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경고신호’를 보내는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한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안이 1년 넘도록 계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C 노래방 같은 곳은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전화가 가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에 올라간 이후 아직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의 진입을 가로 막고 있던 불법 주차 차량이 옮겨지는 장면이 인근 상가 CCTV에 기록됐다.[연합뉴스]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의 진입을 가로 막고 있던 불법 주차 차량이 옮겨지는 장면이 인근 상가 CCTV에 기록됐다.[연합뉴스]

통신 기능을 갖춰 상대적으로 초기대응에 용이하지만, 일반 자동화재탐지설비(7만~12만원)에 비싸다. 기깃값 45만원에 통신비는 별도다. 의무화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로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신 기능을 갖춘 화재탐지설비는 0.05%의 낮은 설치율(지난해 기준)을 보인다. 일반 자동화재탐지설비는 2012년 말 의무화됐는데 그해 5월 부산 노래방화재로 9명이 숨졌다.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안처럼 최근 몇 년 사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가 이어지면서 소방관련법 개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관련법 개정안 상당수가 낮잠을 자고 있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제천 복합상가건물 화재에서는 불법 주차 등으로 소방로 확보가 제때에 안 돼 인명 피해가 늘었다.

 올 3월 해양수산부 장관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은 화재경보기, 방화수, 소화전 주변 3~5m 이내를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별금지 구역에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해 2배의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이 골자다.

차량이 소방차 진입을 막는 것은 제천만의 일도,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6일 오전 찾은 경기도 오산 세교신도시내 한 1000세대 규모의 아파트단지는 차들이 주차구역 이외 지역에 세워져 있었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나 구조 작업 도중 부득이한 물적 피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소방관을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안 역시 논의가 미뤄졌다. 이 밖에 정부가 광역지자체별로 소방장비 실태조사를 벌인 후 재정을 지원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개정안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국회에 계류 중인 소방안전 관련법 처리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치는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사고현장에서 24일 오후 국과수와 경찰, 소방, 등 합동감식반들이 최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1층 주차창 천장주변을 집 중 감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치는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사고현장에서 24일 오후 국과수와 경찰, 소방, 등 합동감식반들이 최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1층 주차창 천장주변을 집 중 감식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015년 1월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 불에 잘 타는 외장재가 화마를 키운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된 뒤 외단열재 사용기준이 강화됐으나 건축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여전히 화재 사각지대다. 2015년 9월부터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외벽마감재를 준불연재료로 써야 하는 대상을 30층 이상 고층건물에서 6층 이상 건물로 확대했지만, 적용대상은 그해 9월 이후 지어진 신규 건물이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합동으로 ‘건축물 단열재 부실시공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능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단열재에 대한 건축 안전 점검을 확대ㆍ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법을 위반한 제조ㆍ유통업자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신설하고, 벌금도 현행보다 10배 많은 5억원 이하에 처하는 등 처벌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소방 안전을 위한 관련 법 통과뿐 아니라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기운 사단법인 한국안전관리사협회 상임고문은 “사고 때마다 대책을 만들고 법을 개정해 장치들을 만들지만 잘 지키지 않는 게 문제”라며 “결국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집행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시민들의 성숙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백동현 가천대(설비소방학과) 교수는 “법적인 규제도 규제지만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제2의 제천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염태정ㆍ김민욱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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