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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中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중앙일보

입력

중국 다롄(大連·대련)항 전경 [사진: 셔터스톡]

중국 다롄(大連·대련)항 전경 [사진: 셔터스톡]

기술유출 문제요? 옛날얘기죠. 중국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기술 이슈가 변합니다. 중국 업체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입니다.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자신감도 좋지만, 그 기술 하나로 수년간 중국 시장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롄(大連?대련)시 한국사무소 유수국(51) 대표 [사진: 차이나랩]

다롄(大連?대련)시 한국사무소 유수국(51) 대표 [사진: 차이나랩]

중국 다롄(大連∙대련)시 한국사무소 유수국(51) 대표가 한 말이다. 기술 유출 문제로 중국 투자를 망설이는 한국 기업을 향한 조언이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소재 사무실에 만난 그는 계속해서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완제품으로만 시장조사에 나서는 게 아닙니다. 중국 기술 시장도 살펴봐야죠. 상담했던 한국 기업 중 기술 시장조사에서 막힌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중국에서 가보니 더 우수한 기술이 있거나 이미 기술 자체가 일반화된 일이 꽤 많았기 때문이죠. 기술이 유출됐다기보다 같은 지향점을 두고 개발에 나선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죠.

기술만 믿고 섣불리 중국 시장에 들어가선 힘들 수 있다는 얘기였다. 중국은 글로벌 기업에 시장을 내주고, 기술 투자를 받는 식으로 20년 만에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쏟아내며 한국 뒤를 바짝 쫓았다. 특히 IT 분야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신기술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 한국 기업이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중국 진출을 보류해야 하는 걸까.

유 대표는 고정관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 시장에 나온 기술보다 분명 앞섰다면, 시장성이 있다”며 “기술 수혜 효과가 비록 수개월 만에 그쳐도 시장이 워낙 커서 거두는 수익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수익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중국 내 시장 지배력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는 중국 시장 진출의 출발점으로 다롄을 추천했다.

다롄시는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으로 가는 관문이라 불린다. [자료: 다롄시 한국사무소]

다롄시는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으로 가는 관문이라 불린다. [자료: 다롄시 한국사무소]

다롄시는 동북 3성으로 가는 관문이라 불린다. 유 대표는 “다롄에서 철도를 활용하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은 물론 유라시아 대륙 시장을 넘볼 수 있다”며 “삼성전자도 자사 가전제품을 다롄을 통해 동북 3성은 물론 내몽고,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수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지역은 일제시대부터 해안으로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중공업 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일본 기업이 닦아둔 인프라를 기반으로 1960년대까지 중국 최대 중공업 기지였다. 이후 중·소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당국의 투자 중심축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주춤하기도 했다.

물론 다롄은 ‘썩어도 준치’였다. 중국 대표 항구도시로 중국 외무해항(外貿海港)과 어업기지로 알려져 있고, 조선·기계·화공·제유·방직·복장가공 등 중국 내 주요 공업 분야가 죄다 몰려있는 곳이다.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 ‘랴오닝함’도 다롄항에서 건조됐을 정도다.

지난 2012년 10월 30일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이 공식 취역 후 첫 항해 임무를 마치고 랴오닝성 다롄(大連)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다롄항에서 건조 당시 장면. [사진: 중앙포토·SCMP]

지난 2012년 10월 30일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이 공식 취역 후 첫 항해 임무를 마치고 랴오닝성 다롄(大連)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다롄항에서 건조 당시 장면. [사진: 중앙포토·SCMP]

지난해부터 큰 변화도 있었다. 중국 국무원은 다롄시가 있는 랴오닝성을 ‘선양-다롄 국가 고급신기술산업개발구’로 조성하는 사업안을 공식 승인했다. 이 때문에 랴오닝성 정부도 몇 개 지역을 장비제조업 중심으로 특화하는 한편, IT 기반의 고급수치제어공작기계, 선박 및 해양장비, 항공장비 등 첨단장비 개발기지로 본격 조성에 나섰다.

2015년 인텔사는 중국 다롄 공장에 6조원을 투자해 신형 메모리칩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왼쪽 사진은 다롄 공장 전경, 오른쪽 사진은 중국에서 생산하기로 한 메모리칩으로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협력해 개발한 ‘3D크로스포인트’기술이 적용된 칩이다. [사진: 인텔 ]

2015년 인텔사는 중국 다롄 공장에 6조원을 투자해 신형 메모리칩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왼쪽 사진은 다롄 공장 전경, 오른쪽 사진은 중국에서 생산하기로 한 메모리칩으로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협력해 개발한 ‘3D크로스포인트’기술이 적용된 칩이다. [사진: 인텔 ]

특히 다롄시는 올해 3월 조성된 60㎢에 달하는 다롄 자유무역시험구에 집중하고 있다. 여의도 면적(2.9㎢)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유 대표는 “지난 10월까지 자유무역신구에 등록한 업체만 5000여 개가 넘는다”며 “일본 미쓰비시 등 장비제조업은 물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미국 인텔사도 55억 달러(약 6조원) 이상을 들여 3D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다”고 했다. 이곳에서 외국 기업이 진행하는 기술개발 프로젝트만 4000여 개가 넘는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다롄 자유무역시험구 입구 [사진: 다롄 한국사무소]

다롄 자유무역시험구 입구 [사진: 다롄 한국사무소]

일제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덕분일까.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거리낌 없는 곳이 바로 다롄이다. 미쓰비시 공장을 비롯해 최근엔 일본 파나소닉의 전기차 배터리 양산 공장도 다롄을 택했다. 유 대표는 “한국 기업이 다롄에 진출하면 글로벌 기업과 다양한 측면에서 교류에 나설 수 있다”며 “무엇보다 다롄은 글로벌 시장에 나가기 전 기술 경쟁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 bed·시험 환경)’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내 미쓰비시 공장 내부 [사진: 닛케이아시안리뷰]

중국 내 미쓰비시 공장 내부 [사진: 닛케이아시안리뷰]

다롄시도 팔을 걷어붙였다. 다음은 유 대표의 설명이다.

새로 회사를 차리거나 공장을 세울 때 증서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말 그대로 ‘올인원 서비스’죠. 원래는 5가지 인허가 증서가 필요한데 1장으로 줄였습니다. 법에서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체계(95개 항목)도 전격 마련했습니다. ‘인터넷업무 처리센터’도 구축돼 24시간 민원접수가 가능합니다.

그는 ‘꽌시(关系·관계)’, 일종의 중국 인맥에 대한 부담도 덜어줬다. 그는 “자유무역시험구를 조성하고 인터넷 업무지원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대부분의 업무처리 과정을 오픈했다”며 “실제 미국·독일 등 서구권 기업들이 꽌시보다 전략적 사업성이나 시장성을 더 따지는 데, 이들이 다롄을 택한 걸 봐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막바지에 사드 문제도 거론했다. 유수국 대표는 본인의 유학 시절 얘기로 답을 대신했다.

제가 학부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마쳤습니다. 당시 중국은 한국과는 수교 이전이었지만, 미래 한국과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고 지한파 양성에 나섰습니다. 북한이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최근 상황도 비슷하게 봅니다. 민감한 이슈는 남아있지만, 중국도 한국과 경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한·중 간 경제협력이 먼저 활발하게 일어나면 한·중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차이나랩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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