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MRI만 찍고 만져보지 않는 의사는 신뢰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7.12.27 08:00

업데이트 2017.12.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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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유재욱의 심야병원(8) 

오늘의 연주곡은 ‘엘가 첼로협주곡’이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비탈리 샤콘느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슬픈 음악은 과연 무얼까? 많은 사람이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꼽는다. 이곡이 이토록 슬픈 이유는 심금을 울리는 선율도 한몫하지만 두 가지 슬픈 이야기가 있다.

환자들, 노화 현상을 잘 안 받아들이려 해
"늙어서 그렇다"보다 "어떤 병에 걸렸다" 원해
40대 중반 이후엔 나이 드는 것 받아들여야

첫 번째 이야기는 작곡자 엘가가 이곡을 발표할 무렵 그의 부인 앨리스는 투병 중이었고,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부인 엘리스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엘가는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후로 작곡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서 은둔생활을 하며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엘가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는데,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작곡한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는 지금도 그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재클린 뒤프레 이야기다. 원래 엘가 첼로협주곡은 대중적으로 그리 인기가 있지 않았는데, 재클린 뒤프레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50년간 무명으로 묻혀있던 엘가의 곡을 재해석해 1965년 새롭게 발표함으로써 이곡을 가장 위대한 첼로 곡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불행하게도 뒤프레는 젊은 나이에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서 요절하고 만다.

이런 슬픈 사연이 깃들어있는 뒤프레의 연주를 반드시 들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곡의 초반부 5마디를 주목해보라. 그녀의 연주에는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슬픔이 담겨 있다.

오늘 생각나는 환자는 충남 서산에서 오신 65세 아주머니다. 들어오시는 모습이 워낙 세련되고 젊어 보여 할머니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데, 벌써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둘이나 있으시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요즘에 제가 온몸이 안 아픈데 없이 아프고 삭신이 쑤셔서 무슨 큰 병인가 하고 왔어요.”

“온몸이 다 아프신가 봐요. 아주머니 생각에 그중에 제일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병원에 가서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면 오히려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한 가지 병을 집중해서 고치도록 훈련받아왔기 때문에 여러 군데가 아프다고 하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안 아픈 데가 없는데 허리하고, 어깨가 제일 불편한 것 같아요.”

“가만히 있을 때도 아프신가요? 아니면 통증을 일으키는 특정 자세나 동작이 있나요?”

“이게 이상한 게...  어떤 때는 아프고 또 어떤 때는 잘 모르겠고. 여기저기 쑤시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심한 정도는 아니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어깨질환. [중앙포토]

어깨질환. [중앙포토]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하세요?”

“운동이랄 것이 뭐가 있겠어요. 그냥 살림하고 손자 봐주고 하는 것이 운동이지.”

“그건 일이지 운동이 아니에요. 운동과 일은 달라요. 자아~ 어깨하고 무릎 상태가 어떤지 한번 만져 볼게요.” 

요즘은 환자를 만져보지 않은 의사들이 많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진단법 중에 가장 정확한 것은 환자를 세심하게 만져보는 것이다. 어디 가서 MRI만 보고 환자는 안 만져보는 의사가 있거든, 그 의사는 신뢰하지 않아도 좋다.

“이학적 검사(손으로 만져 진단)에서는 별로 이상이 없네요. 그럼 초음파로 확인을 좀 해볼게요.” 초음파로 아프다는 어깨와 무릎을 여기저기 살펴봤다. 초음파검사는 방사선 노출의 위험이 없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진단을 내릴 수 있어서 환자분께 설명하기도 편하다.

무릎 퇴행성관절염. [사진 유재욱]

무릎 퇴행성관절염. [사진 유재욱]

"초음파 화면에 요기 보이시죠? 무릎관절 위쪽으로 물이 약간 차 있어요. 물이 이렇게 차 있으면 무릎에 퇴행성변화로 인해서 무릎 퇴행성관절염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석회성 건염. [사진 유재욱]

석회성 건염. [사진 유재욱]

“그리고 어깨를 들여다보면요. 어깨를 회전할 때 사용하는 ‘회전근개’라고 하는 힘줄에 석회가 보이네요. 이런 걸 보통 ‘석회성 건염’이라고 불러요.” 

“어~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에요? 이 나이에 벌써 무릎 퇴행성 관절염하고, 석회성 건염이 생기면 어떻게 한 데…” 

“보통 60대 중반쯤 되신 분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소견이에요. 나이가 먹으면 주름살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듯이 무릎이나 어깨에도 흉터들이 많이 생겨요. 그리고 제가 아까 잘 살펴봤는데 지금 불편하신 증상이 초음파에 보이는 석회나 물이 찬 것 때문은 아닐 수 있어요. 일단은 생활습관을 좋게 하시고, 꾸준히 운동하시면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내가 늙어서 그렇단 말인가요?” 아주머니는 두 눈을 치켜뜨고 발끈하신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늙어서 그렇다”인 것 같다. 자동차도 10년 타면 여기저기 고장 나기 마련인데, 본인은 60년 동안 몸을 혹사해 놓고도 오랫동안 많이 써서 그렇다고 하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늙어서 그렇다’는 소리 대신 오히려 ’어떤 병에 걸렸다‘라고 듣는 것을 더 원하는 것 같다. 질병은 고칠 방법이 있지만, 늙어서 그렇다는 것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의사들은 이에 발맞춰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그럴싸한 진단명으로 둔갑시켜 새로운 병을 생산해낸다.

노화. [중앙포토]

노화. [중앙포토]

유재욱의 한마디
1. 일과 운동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평상시에 일하면서 많이 걷고 무거운 것도 든다고 해서 운동이 필요 없어” 하는 분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일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운동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일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해야 한다.

2. MRI나 초음파에 보인다고 다 병은 아니다
“초음파에 회전근개 힘줄에 석회가 있다.” “MRI를 찍어봤더니 디스크가 검게 변해있다” 이런 검사소견에 너무 겁먹지는 말자.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소견으로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만약 검사상 이상 소견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증상이 없다면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잘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운동 정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3. 나이 드는 것도 현명하게
인간은 25세 때 육체적으로 최전성기를 찍고 세월에 따라 점점 내리막을 걷는다. 40대 중반이면 거의 20년간 내리막을 간 것이니 그때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불편하고, 여기저기 아픈 것이 당연하다. 나이가 먹으면 육체는 노쇠해지는 대신, 머리는 점점 현명해져서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40대 중반이 넘으면 나이 드는 것을 받아들이고 현명한 판단을 해서 어떤 것이 가장 유리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퇴행성질환은 고치기보다는 아끼는 것이 유리하다. 뭘 해서 좋아지기보다는 뭘 안 해야 좋아진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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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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