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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위, 행정처 판사 PC 강제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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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법원행정처가 현직 판사들의 성향 분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일컫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추가 조사 중인 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에 소속됐던 판사들의 PC 저장매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임종헌 전 차장 등이 사용한 PC #당사자 동의 못 받아 위법 논란 #조사위 “해당되는 문서만 열람”

조사위는 26일 오후 법원 내부망(코트넷)을 통해 “행정처 공용 컴퓨터에 저장된 사법행정과 관련해 작성된 문서의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 PC는 블랙리스트가 저장돼 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저장매체에 대한 조사는 지난 3월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지 9개월여 만이다.

조사 대상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현직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사용했던 PC의 하드디스크다. 조사위는 지난달 15일 활동을 시작하면서 해당 PC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내거나 디스크 이미징(복제)을 실시해 행정처에 보관해 왔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목했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판사들이 사용한 컴퓨터를 조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조사위는 이날 조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조사위는 “사용자의 개인적인 문서와 e메일은 제외되고, 문서가 생성·저장된 시기에 한정하며, 관련 키워드로 검색한 후 해당 문서만 열람하는 방식이다”고 밝혔다. 조사실에는 폐쇄회로TV를 설치하고 보안요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조사위원들은 스마트폰과 휴대용 저장매체(USB) 등을 반입하지 못한다. 사적 정보가 침해될 개연성을 배제했다는 게 조사위의 설명이다.

조사위는 “관련 당사자들의 동의와 참여하에 조사를 진행하고자 위원회 구성 시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서면·대면 방식으로 동의를 구해 왔지만 결국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자유한국당 사법개혁추진단장인 주광덕 의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 강제조사에 대해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이 스스로 범법 행위를 자행하겠다는 것”이라며 “(강제조사를 강행할 경우) 대법원장과 조사위 관계자들을 형사 고발하고 국정조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강제조사에 찬성하는 쪽에서든 반대하던 쪽에서든 고소·고발이 이뤄진다면 법원 행정사무에 검찰이 뛰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공지사항 이외에 현재로선 말할 게 없다. (진행상황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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