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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의 짐 자무시 감독이 사랑한 시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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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운전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쓴다.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운전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쓴다. [그린나래미디어]

 최근 짐 자무시(Jim Jamusch) 감독의 영화 '패터슨'(Paterson, 21일 개봉)을 본 관객들이 꼭 한 번 검색해보는 이름이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의 미국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다. 영화 속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언급되는 윌리엄스는 자신의 고향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을 예찬한 5권짜리 서정시집 『패터슨』을 낸 인물이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도시에서 사는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패터슨'이 독특한 시의 매력 속으로 영화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단조로운 반복과 작은 변주가 섞인 일상의 풍경을 한 편의 시처럼 잔잔하게 풀어낸 영화의 힘이다.

 패터슨의 하루는 평범하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23번 버스를 운전하며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도 하고, 점심을 먹으며 틈틈이 시를 쓰고, 퇴근해선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 동네 바에서 맥주 한 잔을 걸치고 들어온다.

 정해진 버스 노선처럼 단조롭고 규칙적인 생활. 그러나 세밀하게 관찰하면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버스 승객들의 대화가 다르고, 매일 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다르다. 그가 자신의 비밀 노트에 매일 틈틈이 쓰는 시도 마찬가지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매일 조금씩 고쳐 쓰는 시, 패터슨에게 시는 반복과 작은 변주가 섞이며 완성되어 가는 삶의 일부다. 자무시 감독은 이 영화를 가리켜 "그냥 평온한 이야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패터슨'의 한장면.  짐 자무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패터슨의 도시 공간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고즈넉하지만더 평온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도시다.

영화 '패터슨'의 한장면. 짐 자무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패터슨의 도시 공간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고즈넉하지만더 평온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도시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문학청년이었고, 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로 유명한 짐 자무시 감독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부터 영감을 받아 '데드 맨'(1995)을 만든 그가 또다시 시를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작가 감독으로 손꼽히는 자무시는컬럼비아대 영문과 출신.  실제로도 젊은 시절 진지하게 시를 썼고 시인들과 교류했다. 시사지 '타임'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무시 감독은 존 애쉬버리, 데이비드 샤피로, 케네스 코치, 프랭크 오하라 등 이른바 '뉴욕 시파'(The New York School)로 불리는 시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뉴욕 시파가 내 (예술의) 대부"라고 말할 정도다.  이들의 시는 도시적인 묘사로 가득하고 위트와 날카로운 섬세함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통을 들고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아내가 싸준 도시락통을 들고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자무시의 시 사랑이 '뉴욕 시파'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시인들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엔 『신곡』을 쓴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를 첫손에 꼽았다. "지금의 힙합에 비견될 정도로 철저히 거리의 언어로 쓰인 그의 시는 번역본으로 읽어도 그 아름다움을 듬뿍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투르 랭보(1854~1891)도 자무시가 사랑하는 시인이다. 17세에 등단해 19세에 절필한 랭보를 "혁명적인 시인이자 예술가"로 꼽으며 "10대의 언어로 쓰인 랭보의 시는 감각에 대한 우리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줄 정도"라고 격찬한다.

 미국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1879~1955)도 '가장 아름다운 철학적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다. 보험회사 간부로 일한 그는 직장인으로서의 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했던 사람이다. 스티븐스 시인의 보험회사 동료들은 스티븐스가 유명한 상을 받을 때까지 그가 시를 쓴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패터슨은 매일 밤 동네의 작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한다. 단조롭고 규칙적인 일상이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패터슨은 매일 밤 동네의 작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한다. 단조롭고 규칙적인 일상이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뉴욕 시파'에 속했던 프랭크 오하라(1926~1966) 역시 자무시 감독이 아끼는 시인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점심시간 등에 틈틈이 시를 썼다고 한다.  자무시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스위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시인인 로베르트 발저(1878~1956)도 여러 직업을 갖고 전전하며 글을 썼다"고 강조한다. 영화 '패터슨'에 등장하는 버스 운전기사이자 시인인 주인공 캐릭터는 이런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무시 감독은  "사실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추상적"이란다. 하지만 영화 '패터슨'에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  20여년 전 패터슨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던 윌리엄스에게 끌리게 된 경험이 영화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소개되는 패터슨의 시로 소개되는 작품들은 론 패짓(73) 시인이 쓴 작품이고, 열 살 소녀가 패터슨에게 들려주는 시 '물이 떨어진다'는 짐 자무시가 직접 쓴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패터슨은 그가 즐겨 찾는 폭포 앞 벤치에서 일본 시인(나가세 마사토시)을 만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의 자취를 찾아 패터슨을 찾았다는 일본 시인은 패터슨에게 "(나는) 시로 숨을 쉰다"고 말한다. 영화 '패터슨'에서 자무시 감독이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같다.

영화 '패터슨'의 한장면. 이곳은 감독이 실제 도시 패터슨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을 보태 완성한 소도시 공간의 소박한 삶을 보여 준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이 그곳에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패터슨'의 한장면. 이곳은 감독이 실제 도시 패터슨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을 보태 완성한 소도시 공간의 소박한 삶을 보여 준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이 그곳에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짐 자무시 감독이 묻는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짐 자무시 감독이 묻는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속 도시 패터슨은 실제 소도시 패터슨이라기보다는 감독이 상상을 보태 그려낸 영화적 공간이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단조롭고 소박하면서도,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곳.  그곳에 사는 시인 패터슨은 아내와 개를 사랑하고, 불필요한 야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남이 모를지언정 자신만의 시를 쓰고 또 고쳐쓴다. 짐 자무시가 그리는 삶이다. 12세 관람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짐 자무시 감독=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갔다가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 뉴욕대 영화과에 들어가 70년대 펑크 정신에 매료돼 실제 밴드 멤버로 활동하기도. '천국보다 낯선'으로 1984년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대표작 '데드 맨' '고스트 독' '커피와 담배' '브로큰 플라워'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등이 있다.

'내가 먹어 버렸어/그 자두/아이스박스/속에 있던 것/
 아마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남겨 둔/것이었을텐데//
 미안해/하지만 맛있었어/얼마나 달고/시원하던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의 시(詩) 'This is to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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